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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그렇게 친절한 서평이라고 볼 수는 없다. 평소에 '정치적 글쓰기'를 하다보니, 서점 사이트에 가서는 '친절함'의 기력이 그만 소진되어 버렸던 모양이다. 알라딘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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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지음, 하태환 옮김 / 민음사 / 2001년 1월
 

2001년도에 끙끙거리며 한번, 2002년도에 재미있게 또 한번 읽은 기억이 나는 책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의 내용은 흔히 말하는 것만큼 혁명적이거나 새롭지는 않다.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을 사회에 확장해서 기호의 논리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음을 설명했지만, 포스트 구조주의자들이 간파한 것처럼 구조라는 것이 불변인 것은 아니며 실재의 틈입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은 아니다. 물론 시뮬라시옹에서도 실재는 바깥에서 침입한다. 그러나 언제나 '시뮬라크르의 저지전략'에 의해 성공적으로 방어된다는 점에서, 컨텍스트로써의 실재와 텍스트로써의 구조의 관계가 치밀하게 고민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제작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과연 매트릭스가 이 책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인가 가끔 의심한다. 매트릭스1은 차라리 플라톤의 영원한 비유인 '동굴의 비유'로 이해하는 것이 수월할 듯하고, 2의 경우 (3은 보지 않았다.) 실천적인 문맥에서 '변화'를 말하려면 최소한 실재를 통한 변화가능성을 말한 철학자들 -가령 라깡이나 데리다- 을 통해 해석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


오히려 이 책은 정교한 이론서라기 보다는 일종의 유토피아/디스토피아 문학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그럴 경우엔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철학적 관점 중의 하나를 얻게 될 수 있는, 그런 책인 것 같다.




메모: 오래 전에 다른 곳에 썼던 리뷰에는 대충 이렇게 적어놓았다.


"...시뮬라크르의 자전이 폐쇄적일 지라도, 자본이 시뮬라크르라는 파생실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디선가 양분이 공급되어야 한다. 그 문화적 양분은 결국 주변부에서 나오게 될 것이며, 따라서 중심부는 지속적으로 주변부를 공략해야 한다. 주변부는 끊임없이 중심부로 편입되지만, 만약 더 이상 편입될 주변부가 없다면 중심부는 매너리즘의 위기에 빠질 것이다. 또한, 주변부를 너무 오래 주변에 남겨둔다면 그것이 중심부를 뒤엎을 "대안세력"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결국 보이는 것은 폐쇄적인 시뮬라크르의 자전이지만, 있는 것은 끊임없는 주변부에서 중심부로의 양분공급이다. 이 공급회로에 아마 보드리야르가 묘사한 극단에 도전할 수 있는 "틈"이 있을 것이다...."



조언: "시뮬라크르의 자전"만 읽어라. 나머지는 프랑스나 미국의 문화현상의 문맥을 알지 못하면 어차피 이해하기 어렵다. "..자전"을 이해했는데 나머지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면, 당신의 이해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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