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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민주노동당과 나

조회 수 1613 추천 수 0 2008.02.16 15:01:39

당원번호 25074. 정확히 몇 월 며칠에 입당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홍세화 선생님이 2002년 3월 30일에 입당하시면서 당원번호 25994를 받았다고 하니 그 직전이었을 것이다. 2001년 말 혹은 2002년 초. 그런데 나는 술자리에서 홍세화의 권고로 입당하지 않았던가? 상황설명을 하자면 선생은 진즉 민주노동당에 입당할 결심을 굳히고 있었고, 나같은 청년에게 입당 선동도 하고 있었지만, 몇몇 지식인을 모아 입당선언을 하고 입당을 해달라는 민주노동당의 만류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즉 홍세화에 대한 당의 요구는 이벤트를 하나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는데, 천성적으로 이벤트와 궁합이 맞지 않았던 선생은 부산의 모 대학에서 강연한 후 뒷풀이를 하다가 ‘필’을 받고 그만 나보다 약간 늦은 당원번호를 받으며 학생들과 함께 입당해 버린 것이다. 그다운 일이다. 한편 나는 술자리에서 홍선생님의 권고를 받고 입당 의사를 천명한 그 순간, 만취해서 필름이 끊긴 상태, 즉 의사무능력의 상태에 있었는데, 이 역시 나다운 일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2001년 9월, 전국연합이 “3년의 준비, 10년의 계획”이란 표어로 대변되는 저 유명한 “9월테제”라는 것을 발표했다. 3년 동안 민주노동당을 민족민주정당으로 만들고, 10년 후엔 연방제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계획이 골자인 이 테제 이후 자주파들이 속속 민주노동당에 입당하기 시작했다. 정치적인 후각의 예민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진중권은 2001년 말쯤 민주노동당 당원 게시판에서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소위 ‘주사파 논쟁’을 일으켰다. 마침 그 시기가 소위 ‘용산 지구당 사태’가 일어났던 시기일 텐데, 이 사건에 대한 설명은 조금 있다 하기로 한다. 하여간 내가 그때쯤 입당하게 된 큰 원인은, 비록 나 자신을 좌파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상한 친구들이 좌파정당을 집어삼키는 꼴은 보아 넘기지 못하겠다는 심보 때문이었다.



입당하고 나서 지구당도 배정받기 전에 나는 당당모라는 모임에 가입했다. 이 모임은 공식적으로는 “당의 진로를 고민하는 당원 모임”의 준말이었지만, 사실 구성원들은 흔히 “당을 당답게 만드는 모임”이라고 불렀다. 이 모임은 ‘용산 지구당 사태’를 보고 지금의 나와 나이가 같은, 6년 전 당시 26살 청년이었던 강병한이 만든 모임이었다. 당시의 민주노동당은 당원이 소속 지구당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일군의 자주파들이 모조리 용산 지구당에 몰려 들어 민주적인 방법으로 지구당 위원장을 갈아치우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것이 용산 지구당 사태다. 그때의 피해자가 현재의 분당파 중 한 명인, 전진(당시엔 전진이란 이름의 정파가 없었지만)의 김종철이라고 기억된다. 당당모는 개인의 지구당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고, 무정파 평당원의 권리를 보호하는 몇 가지 정책적 제안을 성명의 형태로 발표하여 당 내외 인사들의 주목을 받았다. 최초의 성명서에는 민주노동당의 여성위원장이었으며, 훗날 커밍아웃 후 민주노동당에 최초로 생긴 성소수자위원회위원장이 되는 최현숙 동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에 민주노동당 탈당 후 신당 혹은 무소속으로 지역구 출마하신다고 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못 되는 것이 안타깝다.



강병한과 나는 안티조선 운동에서 만난 사이였다. 초기의 당당모는 안티조선 운동에서 만난 좌파들 몇몇과 기타 정파 패권에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던 이들의 연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들은 민주노동당의 노선을 좀 더 대중적이고 상식적인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는 견해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싫어하는 쪽에서는 이들을 사민주의자, 개량주의자, 의회주의자 등으로 불렀지만, 그런 흐름은 이념적 지향을 표명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당당모의 맴버들 중에선 민주노동당 내에서 수용되기 어려울 만큼의 래디컬한 환경주의자도 있었다. 이들은 당 내에서 김석준이나 이문옥 같은 정치인에게 친화성을 느끼고 있었는데, 특히 감사원 내부고발자 출신이 이문옥을 설득하여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게 만든 것은 이들이었다. 당시 민주당 경선 이후 노무현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고, 노무현 지지자들의 개혁적 정체성에 어울린다고 보기는 힘든 김민석이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온 참이라서, 이문옥의 지지자들은 노무현 지지자들에게도 이문옥 지지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 와중에 논쟁이 격해져서 안티조선 우리모두 진영이 분열했고, 대략 2002년 4월 즈음에 안티조선의 좌파들은 짐을 꾸리고 진영을 이탈했다. 그들은 노사모를 벤치마킹한 이문옥 팬클럽을 만들었고 그 이름을 ‘깨끗한 손’이라고 했다. 5월에는 이문옥-김민석 논쟁이 저 유명한 진중권-강준만 논쟁으로 격화되었다. 어쨌든 논쟁과 상관없이 깨손 사람들은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로 민주노동당 측에서 내세운 서울 시장 선거 공약안을 검토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일을 했다. 공약을 보아하니 검토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후에도 종종 느낀 것이지만, 민주노동당의 공약 역시 극심한 ‘중앙정치 중독증’에 걸려 있다. 집권이나 하고 나서야 실행할 수 있을 공약을 당의 정체성을 알린다는 미명 하에 지방선거 공약에도 집어넣는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감각이 전무하다고 해야 할까. 우리가 한 일은 가령 “국공립대 통폐합”이라고 써 있는 공약안을 보고 혀를 끌끌 찬 뒤 “이게 어떻게 서울시장 선거 공약이에요? 적어도 서울시가 할 수 있는 서울시립대 관련 공약으로 바꿉시다.”라고 조언하는 일이었다.



지방선거가 참패로 끝난 후 깨손은 부패방지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측과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측이 갈등을 겪어, 비교적 온건한 합의 이혼 끝에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이 진보누리라는 새로운 사이트를 만드는 수고를 했다. 이 사이트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진보누리다. 이후부터 나의 당 활동은 주로 이 사이트와 당원 게시판에서의 글쓰기 활동, 즉 키보드 워리어질로 한정되었다. 2002년 하반기부터 2003년 상반기에 걸쳐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에 미디어비평을 연재하기도 했다. 당시 나와 함께 돌아가면서 미디어비평을 썼던 사람들 중에는, 당시엔 편집국장이었던 프레시안의 박인규 대표도 있었다. 나는 원고료를 받는 계좌와 당비가 빠져 나가는 계좌를 평소에 쓰는 계좌와 별도의 하나로 지정해 놓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당비가 체납되고 있다구요? 그럼 진보정치가 원고료를 안 넣어준 모양이네요.” 2002년에서 2003년에 걸쳐 내가 한 일은 거의 노무현 지지자들과 싸운 일밖에 없었다. 대선 정국에서는 당 상근자들이 이러저러한 글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서 글을 쓴 일도 있었다. 정작 나는 투표권이 없었는데도 그 짓을 했다.



2004년 총선 직전에는, 비록 2002년 지방선거에서 그랬던 것처럼 몸으로 선거운동을 하진 않았지만, 문화위원회에서 문화 관련 공약을 확정하는 회의를 할 때 몇 번 참석을 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총선 이후 곧바로 민주노동당 당직 선거가 시작되었고, 드디어 자주파는 약속했던 “3년의 준비”를 실행시켜 12명의 최고위원 중 8명을 장악했다. 결국 나는 입당할 때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그 국면에서 내가 한 일은, 정책위의장 선거에서 주대환을 지지한 일이었고 결국 주대환은 경기동부연합의 이용대를 꺾고 당선되었지만, 그것조차도 자주파의 분열에 의한 것이었다.



입대할 때 나는 탈당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했지만 학생당원이 많았던 민주노동당답게 당권도 일종의 ‘군휴학’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했다. 하지만 2년간 정지시켜놓은 당권을 나는 전역하고서도 찾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정서적으로 이미 탈당상태였다. 2007년 대선에서 생애 첫 대선투표를 권영길에게 했지만, 그건 민주노동당을 욕할 권리를 찾기 위한 행동이었다.



나는 애초부터 심상정 비대위가 아니라 조승수 김석준 등의 탈당파를 더 지지한 사람이었지만, 2008년 2월 3일 저 운명의 당대회가 지나고 나서야 당적을 확실하게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2008년 2월 4일 오후, 나는 소속된 지역위원회 사무실에 가서 탈당계를 제출하러 왔노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근자들 역시 탈당을 하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가능하면 지역위원회의 해산을 결의하거나, 그것이 가능하지 않더라도 성명서 제출 후 집단 탈당을 할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굳이 그런 부탁을 거절해야 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탈당계 대신 탈당위임계를 쓰고 나왔다. 당적을 가진 지 6년, 순수하게 당비를 낸 세월로는 3년의 당활동에 대한 종지부였다.



탈당자 숫자가 얼마 되지 않더라는 민주노동당의 선전을 보면 헛웃음이 난다. 첫째로는 나처럼 탈당위임계를 쓴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탈당자 숫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원의 숫자가 중요했다면, 전국연합의 자주파들이 굳이 민주노동당에 들어와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그들은 민주노동당의 강령 뒤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숨기고 대중을 기만하여 지지를 획득했다. 이 말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정치를 하면 된다. 그런데 그들은 그러기는커녕 나가는 우리들에게 재는 뿌리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당 대회에서 그들은 동료들의 신상정보를 북한 정보국에 넘긴 (손석춘은 최기영이 그 행위를 부인하고 있다며 ‘양심의 자유’를 지켜달라고 말하지만,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난 사안에 대해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주장하는 건 어느나라 논법인지 모르겠다. ‘우리편’이면 거짓말도 믿어야 하나?) 이의 제명은 거부하면서 민주노동당에 종북주의는 없다는 선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우리와 함께 운동을 하려면, 우리가 대중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에 협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를 뿌리지 말아 달라는 말은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나가는 건 좋지만 우리의 거짓말을 폭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정신세계가 지구를 떠나야 할 수준이다. 탈당하는 사람들은 탈당하는 이유를 말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주파가 한 짓거리를 생각해 볼 때, 이번 총선에서 조중동에게 당할 공격도 스스로 방어해야 마땅할 것이다. 심상정 비대위와의 타협 없이도 어느 정도의 지지율 유지와 국회의원 수 확보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그 짓을 했을 테니, 그 선택의 결과가 어찌 될지는 직접 몸으로 체험해야 할 것이다. 그건 탈당파 책임이 아니다.  



이 글은 무언가에 대한 분석도 비평도 아닌 민주노동당 안에서 내가 했던 미약한 일들을 떠올리는 사담이다. 이런 사담을 먼저 쓰지 않고는, 민주노동당의 문제를 반추할 수도 진보신당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주장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두서없이 이 글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궁금이

2008.02.16 19:49:59
*.41.231.47

근데 왜 이 문제가 대선 이후에 나오게 됐나요. 저는 그게 궁금합니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민주노동당이 여전히 3퍼센트 이니 그 책임공방에서 나온 논란아닌가요?

하뉴녕

2008.02.16 20:04:46
*.176.49.134

실패하면 버로우 할 거라고, 혹은 버로우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가 봅니다. 대선 이후를 특별히 노렸다기보다는, 참다 참다 터져 나온 거지요.

그리고 "여전히 3퍼센트"라는 말은 어폐가 있는 것이 2002년 대선하고만 비교해도 3.9%에서 3%로 줄었어요. 2004년의 정당지지율은 그보다 훨씬 높지요. 여전히 답보...가 아니라, 가진 것도 다 까먹은 겁니다.

김수민

2008.02.16 21:12:42
*.229.81.147

걍 글의 한 작은 부분에 대한 사소한 여담이지만... 서울시립대는 이름과는 다르게 국립이여.. 서울시에서 카바 가능한 부분도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하뉴녕

2008.02.16 21:29:36
*.176.49.134

그런가...ㅎㅎ 나도 찾아본 적은 없다. 뭐, 당시의 토론(?)이 그런 식이었다는 하나의 예시지. ㅋㅋ

여울바람

2008.02.16 22:16:21
*.143.20.143

음..
민주노동당의 사정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알게 되는군요..
씁쓸한..

하뉴녕

2008.02.16 22:44:46
*.176.49.134

사실 이 글은 '사정'이라기엔 너무 소소한, 저와 관계있는 일들만 적은 것에 불과합니다. --;;

닷오-르

2008.02.17 00:09:20
*.138.192.56

별 상관은 없지만 메인의 관련글이 NL 솔리드 V넥 니트라니 좀 무섭군요

하뉴녕

2008.02.17 00:24:25
*.176.49.134

ㅎㅎㅎ 하나 사세요~ (적립금은 주인장에게...후다닥!)

andante

2008.02.17 09:27:57
*.85.224.211

역시 뻘댓글입니당.저 위의 광고가(옥션) 궁금한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가 다음에 블로그가 있는데,윗부분에 광고가 있잖아요,제게 들어올 때마다 그것을 클릭하라는 압력을ㅋ...저 옥션광고도 그런 기능(?)을 하는지요?

하뉴녕

2008.02.17 13:08:47
*.176.49.134

클릭하면 저한테 50원쯤 떨어집니다. -0-;; 구입하면 얼마가 떨어지는지는 경험해보지 못해서 모르겠구요;; 뭐 하여간 그렇습니다. 이왕 시간들여 운영하는 거 푼돈이라도 회수하면 좋겠다 싶어 올블로그 광고도 달아놓고 구글 광고도 달아놓고 하는 거죠. 별 소득은 없습니다만...

이상한 모자

2008.02.17 13:23:43
*.198.97.16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심회 사건에 대한 논점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최기영은 2004년 쯤(맞나)에 다음과 같은 짓을 했지.

1) 방송사에서 '노회찬을 출연시켜달라' 고 온 공문을 받음.
2) '노회찬'을 '김창현'으로 바꿈.
3) 김창현의 TV출연.
4) 방송사의 항의.
5) ... 뽀록남.
6) 노회찬이 담당자인 최기영을 당기위에 제소.
7) 최기영은 자기가 안 했다고 끝까지 우김.
8) 최기영이 안 했을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당기위가 최기영을 3개월 정직에 처함.
9) 3개월 후 최기영이 노회찬에게 사과.

하뉴녕

2008.02.17 13:33:15
*.176.49.134

ㅍㅎㅎㅎㅎㅎㅎ ;;; 이거 완전 개근데? 하긴 뭐, 민주노동당 자체가 그랬지만 -0-;;

svinna

2008.02.17 16:58:40
*.121.150.188

참. 민주노동당은 당가가 참으로 멋진 당이었어요.
지금도 기분좋으면 불러요.
지금은...뭐. 없어진 당이지만.
빨리 당이 그냥 해체되서 제 당원기록도 쓰레기통에 가버렸음 좋겠어요. 따로 탈당하기도 귀찮고... 당비안낸지도 4년 넘고.

하뉴녕

2008.02.17 17:18:40
*.176.49.134

당가가...멋지긴 했죠 -0-;;;

lust

2008.02.17 23:33:19
*.126.102.187

당에 가입한 이유가 '당활동을 통해 무언가(진보적인 일?)를 해보자!'가 아니라 '이상한 친구들이 당을 장악하는 걸 두고 볼 수가 없다'였군요. 그게 약간 의외이긴 하지만, '당활동을 통해 무언가 해보자!'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은 걸 보면 때때로는 저런 동기도 의미가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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