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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PGR, 고 며칠을 못 참아서...

조회 수 950 추천 수 0 2007.03.22 13:06:23
최초의 직업 철학자로 유명한 임마누엘 칸트는 철학과 교수 (정확히 말하면, "논리학과 형이상학" 교수)가 되기 4년전에 미학과 교수 임용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했다. 역사에 언급된 공식적인 이유는 "칸트는 미학이란 게 학문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 (물론 훗날 <판단력 비판> 때의 칸트는 이때와 생각이 다르다.)이다.

그러나 모든 사건에는 이면이 있는 법, 칸트 연구가들은 이 표면적인 이유 밑에 숨겨진 진짜 이유를 두 가지 정도로 추리한다. 첫째는 당시 미학 교수는 일년에 두번씩 국왕에 대해 축시를 써야 했는데, 칸트가 그것을 너무 싫어했을 거라는 것, 둘째는 당시 대학에 "곧 철학과 교수 자리가 날 거다."라는 소문이 돌았다는 거다.

부자들의 가정교사를 하거나, 부자들의 집에 놀러가서 재담을 떨다가 대충 밥시간이 되면 얻어먹고 나오는 생활을 반복해야 했던, 명랑함을 가장해야 했던 이 궁핍한 철학자가 교수직을 얻고 나서야 학자로서 만개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까 칸트 역시도 4년이나 기다리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냥 미학 교수직을 맡았을 거라는 게 그리 무리한 추측은 아닐 것이다.

한편 대표적인 친일 시인으로 민간에 알려진 서정주의 말을 들어보면, 대충 1939년부터 친일 시를 쏟아내기 시작했던 이 시인은 "5년만 기다리면 해방이 될 줄 알았더라면 나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자기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사실 이 시인이 대표적인 친일파로 욕을 먹는 것은, -그의 문학성이 지금까지 한국 문단에서 과도하게 포장되어 왔다는 비판과는 별개로- 억울한 면이 있다. 이미 문단의 거두로써 일제의 적극적인 포섭에 의해 친일로 돌아섰던 이광수, 최남선 등과는 달리, 서정주의 친일은 '생계형 친일'이었기 때문이다.

시집 한권 내기 위해서는 천황폐하 찬양이나 내선 일체 지지 등 '친일' 성향의 시가 한두편씩 꼭 들어가야 하고, 잡지에 시를 다섯 편쯤 실으면 한편은 또 그런 시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지을 땅 한평 없었던 무지랭이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해' '친일시'를 생산해낼 수밖에 없었다. 달리 돈 벌 재주도 없었고 게다가 워낙에 다작이었던지라 그는 수많인 친일시를 통해 역사에 불멸의 흔적을 남겨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칸트가 4년을 참았던 얘기에서 서정주가 5년을 못 참았던 얘기로 건너가다 보면 (이상의 얘기는 백종현 교수님이 강의 시간에 했던 얘기를 대략 재구성한 것인데) 근래 PGR의 글쓰기 폐쇄 사태로 돌아오지 않을 수가 없다.

PGR은 엠비시 리그 예선전을 파행으로 이끌면서 극한대립으로 치닫던 협회와 방송국 간의 협상이 이렇게 쉽게 타결될 줄 모르고 그런 조치를 단행했을 수도 있다. 지금이야말로 사실 협회와 방송국 간의 협상안이 이스포츠, 혹은 스타리그의 장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두고 팬들끼리 갑론을박해야 할 상황인데, 한번 게시판을 닫아버린 PGR로서는 다시 여는 것이 뻘쭘할 것이다. 그새 며칠이나 지났다고. 게다가 협상이란 게 또 언제든지 한쪽의 결단(?)으로 인해 파행으로 치달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만큼, (그때의 논리구조라면) 열었다 닫았다 열었다 닫았다 할 바에야 차라리 계속 닫고 있는 것이 (이제 와서는)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PGR은 며칠을 못 참아서 앞으로 내내 사이트를 다시 열지 못할 운명이다. 설령 다시 연다 해도 사람들이 과거와 같은 믿음으로 대해주지 않을 것이고.

그러므로 노동8호님의 아래 짤방은 스타리그 전체에도 해당하지만 PGR21에도 해당하는 것일 게다.

http://blog.naver.com/t260g/70015559721

노정태

2007.03.22 15:04:47
*.152.106.126

대체 왜 내 블로그 주소를 넣으면 차단이 되는건지 알 수가 없다만... 아무튼,

칸트가 과외선생 시절 남의 집에서 밥 얻어먹으면서 재담을 떨어야 했던 게 사실이지만, 정교수가 되어서 자기 집과 식탁과 하인을 소유하게 되자 귀족들을 불러서 자기 집에서 밥과 노가리의 시간을 노상 즐겼던 것도 사실이지. 이 일화로부터 우리는 그냥 먹고 노는 것보다 무슨 이유로 어떻게 놀고 먹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아, 리플 한번 달기 더럽게 힘들다...

노정태

2007.03.22 15:05:13
*.152.106.126

가열찬 실험정신으로 두드려 본 결과, blogspot 주소라면 그 무엇을 넣어도 차단당하게 되어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p.s. 위에 리플은 팔콘넷 주소를 넣어본 건데, 비번을 막 때리고 기억을 못하고 있는 거니까 좀 지워줘. ㅡㅡ;;

시만

2007.03.23 02:34:29
*.150.179.78

이런;;;;;; 난 고 서정주 시인이 '마름의 아들'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건가? 아니면 처음엔 '마름의 아들'이었지만 나중에 사정이(급)변한건가?(그리고... 만약에 '마름의 아들'이라면 나중에 가세가 몰락했다 해도 '무지랭이'란 표현은 어폐가 있을 듯도 한데)
무지의 소치가 드러나지만... 설명을 해 주면 고맙겠...;;;

하뉴녕

2007.03.24 20:50:25
*.176.49.134

저도 잘 몰라요. 대충 '들은 대로' 옮겨놨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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