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정치적 설득과 매혹의 문제

조회 수 1099 추천 수 0 2007.03.14 02:57:04
 

http://www.hani.co.kr/section-021128000/2007/03/021128000200703080650002.html


강준만의 고종석론은 재미있고, 적절하다. 나는 저 비평가와 비평된 사람을 모두 높이 평가하고 인간적으로 좋아하기까지 하니 더 할 말이 없어야 할 게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의 전제가 미심쩍다.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께 질문을 하나 드리겠다. 민주노동당(민노당)이 창당 기념일 행사로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여론 형성에서 민노당의 발전과 성장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지식인에게 감사장을 수여한다면, 1순위로 누구를 꼽겠는가?


그것은 정확하게 시장논리의 유비추리다. 정치인과 지식인이 생산자의 위치에 있고, 시민 혹은 대중이 소비자의 위치에 있다. 그러므로 정치인과 지식인에게 필요한 실천적 훈계는 모든 기업인이 체득하고 있는 바, “손님은 왕이다.”는 명제에 굴복하라는 것이다. 물론 내가 보기에도 최소한 정치인에겐 “손님은 왕이다.”는 명제에 굴복하라는 윤리적인 요구가 가능할 듯 싶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인에게 부족한 덕목이며, 정치인들이 그 덕목을 체득한 사회는 한국 사회보다는 훨씬 살기 좋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인에게 “손님은 왕이다.”는 윤리적인 덕목이라기보다는 거부할 수 없는 물리학적 법칙에 가깝다. 이윤추구를 위해 소비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업인이 정치인보다 특별히 더 윤리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강제되지 않은 그들 기업의 노동자에 대한 정당한 대우에 매우 무심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간단히 증명된다.


반면 정치인, 몇몇 정치학자들의 표현을 빌자면 ‘여의도 정치계급’은 기업과 달라서 지지율의 극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다만 상대정파보다 지지율이 높기를 바랄 뿐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전국민의 50%가 정치에 극도로 실망하여 기권을 하더라도, 그것은 ‘여의도 정치계급’에 문제가 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투표하는 50% 국민들 중에서 다수 정파가 되기만 하면 된다. 기권이 늘어나는 걸 걱정하는 이들은 여의도 정치계급이 아니라 한국정치나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반면 정치자금의 문제로 가면 그들 역시 기업처럼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는데, 모두 알다시피 이 부분에서 그들은 손님을 왕처럼 대우하는데 남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시종일관 돈을 낼 수 있는 이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윤리적 명제가 아니라 정치인의 행동을 강제할 수 있는 어떤 체제다. 그리고 그런 체제를 고안하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으로 각성된 시민 이외엔 없다. 하지만 자신을 소비자의 위치로 상정하고, 정치인에게 “나를 왕처럼 대우해 주세요. 그게 당신의 의무에요.”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여의도 정치계급’에게 결코 소비자로 대우받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대의받지 못하는 대중’으로 전락하게 된다.


하물며 한 사람의 시민이 한 사람의 지식인에게 “정중하게 나를 설득해 보세요.”라고 요구하는 것은 더욱 적절하지 않은 일로 보인다. 여기서 그는 ‘설득’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가 요구하는 건 차라리 ‘매혹’에 가까운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원하는 것은 논증이 아니라 (어찌됐건 대개의 지식인은 ‘논증’을 하고 있으니까) 어떤 정서적 공명일 것이기 때문이다. ‘설득’ 앞에 반드시 ‘정중하게’가 위치하는 용법도 무척이나 우습다. 가령 나의 경우는, 나 자신이 결코 정중하지 않은 언사에도 설득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 사실이 이성적 존재자로써의 나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라 생각하며, 덧붙여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를 자랑스러워하는 모종의 허위의식이 있다. 그런 허위의식은 자신을 정치영역의 ‘소비자’로 위치시키는 ‘시민’들에게선 결코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김선일씨 피랍 소식이 처음 전해진 지난달 21일 잘 알려진 논평가가 한 웹사이트에 올린 파병 반대 주장이 대통령에게 무례한 언사를 써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 글을 격렬히 비난한 사람들은 노 대통령 개인에게 (설득된 것이 아니라) 매혹된 세칭 ‘노빠’들로 보였다. 그러나 비난자들은 그 글의 ‘발칙함’을 물고 늘어졌을 뿐, 파병 문제에서 노 대통령과 유시민 의원이 <월간조선>의 조갑제 사장이나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을 비롯한 대미종속적 우익세력과 다를 바 없다는 내용적 핵심을 반박하지 못했다. 당연하다. 그들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고종석, “환멸을 견디는 법”에서)


설득과 매혹의 용법은 위에 인용된 글에서 따왔다. 문제는 노빠만의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매혹과 설득을 구별할 수 있는 정신머리를 가진 이가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 진짜 문제다. 개인적으로는 있을 수 있겠지만, 특정한 집단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것이 우리의 민주주의에 있어 중요한 문제다. “왜 고종석과 같은 자세를 갖춘 진보주의자가 없을까?”라는 강준만의 물음은 이에 비하면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민노당 당원이거나 당원은 아니더라도 민노당 색깔을 가진 진보적 지식인들은 평소 글쓰기 활동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민노당 당원들도 잘 알아듣기 어려운 용어로 논문식 글을 쓰는 지식인들이 다수다. 대중적인 글을 쓰는 지식인들도 있지만, 이들은 보수(자유주의 포함) 정당 비판에만 몰두한다. 보수 정당 비판이 곧 민노당 지지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충분히 입증된 것 같은데도, 이들은 왜 민노당을 지지해야 하는지 겸손하고 간곡한 자세로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보수 정당 지지자들에 대한 호통, 야유, 조롱이 주요 메뉴다. 비극은 많은 민노당 당원들이 그걸 말리면서 “손님 쫓아내지 말라”고 고언을 하는 게 아니라, “아이고 속 시원해라” 하면서 즐긴다는 사실이다.


호통, 야유, 조롱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니다. 차분하고 정중한 설득보다는 그게 더 필요할 때도 있고 효과를 낼 때도 있다. 문제는 시종일관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이 하나의 양식으로 굳어져 본말이 전도되는 사태다. 나를 위한 진보인가, 민중을 위한 진보인가?


이 문제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봐야 한다. 왜 좌파지식인들은 민주노동당 지지를 부탁하지 않고 “보수정당 지지자들에 대한 호통, 야유, 조롱”으로 일관하는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민주노동당 지지 부탁하기가 쪽팔리기 때문이다. 한국 보수정치가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대안이 민주노동당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민주노동당 역시 이러저러한 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고, 민주노동당의 발전이 한국 정치 발전을 이끌 수 있을 것인지를 궁금해 하는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주는데 실패했다. (이것은 ‘겸손하고 간곡한 자세’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지식인들은 ‘쉬운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민주노동당이 지금보다 괜찮은 정당이었더라도 많은 좌파지식인들은 그 길을 택했을 것이다. 특정정당을 지지했다간 그 정당이 쪽을 팔 때 자신도 같이 쪽을 팔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기 때문이다.


좌파지식인이라면 1) 대안정당으로써 민주노동당을 선택하거나, 2) 민주노동당이 대안정당에 못 미치는 경우 그 이유를 제시하고 민주노동당을 강하게 비판하는 것이 올바른 현실참여의 방법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들이 겸손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거리두기’ 비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진중권은 그런 거리두기 비평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민주노동당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거나, 민주노동당의 잘못된 면을 과감하게 비판하거나 했다. 다른 모든 좌파지식인의 "보수정당 지지자들에 대한 호통, 야유, 조롱"을 직렬접속해도 그 방면에 있어 과거 진중권의 성취를 넘어섰다고 보기는 어렵다. 강준만의 논법대로라면 진중권이야말로 민주노동당을 망치는 사람이며, 사실 강준만 본인은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믿고 있을 게다. 하지만 내 판단에는 그건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진중권은 과거 민주노동당 홍보에 기여한 바가 컸고, 이제 그가 흥미를 잃어버린 민주노동당에 그를 따라 흥미를 잃어버린 젊은이들도 무척 많다. 전선을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으로 그어놓고, "누가 더 매혹적인가?"의 문제를 따진다면 진중권의 가치를 놓치게 된다. 진중권이 그어놓은 전선이야말로 바로 '매혹의 문제'에 관한 전선이다. 문제는 겸손함이 아니라 거리두기 비평인 것이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책임 윤리가 박약한 편이다. 책임 윤리란 어떤 일을 할 때 나타난 결과뿐만 아니라 예상 가능한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윤리의식을 말한다. 옳은 일이니까 결과에 개의치 않고 무조건 밀어붙인다는 진보주의는 책임 윤리가 없는 모험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선 곧잘 모험주의가 진보주의로 통용되기도 한다. 독재정권 시절에 형성된 습속이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지속된 탓이다.


이와 같은 강준만의 언급은 그래서 반 정도는 수용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책임 윤리’를 내가 말하는 ‘거리두기 비평'에 대한 반대로 이해하면 된다. 하지만 “옳은 일이니까 결과에 개의치 않고 무조건 밀어붙인다는 진보주의는 책임 윤리가 없는 모험주의”라는 말은 목에 가시처럼 걸린다. 옳은 일이니까 무조건 밀어붙이는 사람이 책임 윤리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밀어붙어놓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을 때 책임 윤리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문장으로 강준만이 의도한 것이 무슨 사태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령 이라크 파병 문제라면 그의 인식은 잘못 되었다. 말하자면 이라크 파병 안 해서 미국이 북한 폭격하면 어쩌냐고 묻는 건데, 도대체 이게 정책적으로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사안인가.  그런 인과관계를 실행시켜 줄 수 있는 존재는 파우스트에 나오는 메피스토펠레스 정도다. “내가 지옥 갈 테니까 사랑하는 여자를 살려주세요.” 이건 메피스토펠레스한테 할 때만 말이 되는 말이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하는 대신 부시와 무슨 밀약인가를 맺었다고 하는데, 지켜진 건 하나도 없다. 그런 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건, “수틀리면 무조건 니 탓이야!”라는 땡깡에 지나지 않는다. 참 한국 ‘현실주의자’들 성질머리 더럽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고종석의 민주노동당 홍보는 좌파 정당에 대한 자유주의 버전의 지지 논거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글은 애초에 자유주의자밖에 쓸 수가 없다. 그러므로 고종석이 쓰는 글을 고종석밖에 쓸 수 없는 것은 한국에 제대로 된 자유주의자가 그 하나이기 때문이다. 자칭 자유주의자들이 쪽팔려 해야 할 일인 것이다. 물론 좌파들이 그런 논리를 결코 개발할 수 없는 것은 아니나, 지금의 좌파들에게 화두는 “어떻게 자유주의자들에게 민주노동당 지지를 설득할 것인가?”가 아니라 “도대체 좌파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야 하는가?”인 것으로 보인다. 서글픈 일이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를 자랑스럽게 홍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린 몇몇 노빠를 제외하고.


이처럼 고종석이 한국 사회에서 특이하고 소중한 글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나, 그렇게 된 데엔 모종의 이유가 있다. 단순히 그 덕목을 ‘겸손하고 간곡한 자세'로 파악하고, 거기에 윤리적 가치를 부여하며, 덧붙여 그것을 다른 지식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며 실천적 효과도 없다. 매혹적인 정치인을 경계해야 할 만큼 이성적이지 못한 사회라면, 지식인들에겐 결코 매혹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개혁당 해산 과정을 돌이켜본 어떤 이는 이런 식으로 사태를 정리했다. “개혁당을 사수하자는 사람들도 논리는 충분했어요. 하지만 열린우리당으로 간 사람들이 개혁당을 사수하자는 사람들보다 훨씬 수준이 더 높았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그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지요. 싫어하는 사람들이 수준이 높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얘기에요.” 유시민의 매력과 사수파의 찌질함이 논의를 종결지었던 사회에서, ‘대중성’이나 ‘겸손’과 같은 단어는 얼마나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하는가?


매혹의 문제를 우리가 명확하게 짚어내지 못하고, 전선을 긋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한때) 매혹적이지만 내용이 없는 정치인"에게 속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식인에게도 매혹을 요구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까. 사실 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지식인이란 건 본래가 그다지 매력이 없는 것들이니까. 이들이 대중에게 매력을 획득하는 길은 매혹적인 정치인에게 투항하는 길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참여정부에서 그러한 지식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노빠들에겐 매혹적인 지식인들의 순위가 확고하게 있을 게다. 그 등수놀이의 심연의 밑바닥엔 최장집 교수가 있을 것이고. 내가 강준만이 벌인 '민주노동당 판 지식인 등수놀이'에 헛웃음이 나는 건 그 때문이다.

우리는 (비록 그것이 힘든 일일지라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논리’와 ‘대중이 좋아하는 논리’를 구별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노동당처럼 평소엔 소신대로 하다가 꼭 ‘대중’을 고려한다고 말할 땐 노빠들의 프레임을 수용하는 희극을 연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매혹의 문제만큼 매혹적이지 않은 자태로 한국 민주주의의 앞날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도 없다.





P.S 강준만 역시 책임윤리를 가져야 한다. 단지 그가 열린우리당을 지지하지 않고 민주당을 지지했다고 해서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참여정부의 지지자들이 내뱉는 말은 강준만이 만들어준 논리 안에 있다. 비록 강준만이 그 말을 할 때의 현실정합성과 노무현 대통령과 그 일당이 그 말을 할 때의 현실정합성 사이엔 하늘과 땅 차이가 있긴 하지만, 본인이 만들어낸 논리구조를 흉악하게 활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그 역시 피할 수는 없다. 이건 단지 내가 그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그의 논리를 따라 나라를 말아먹은 집단이 등장했으므로, 앞으로 그는 같은 식으로는 정치평론을 할 수가 없을 거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논변을 폐기하거나, 적어도 참여정부의 지지자들의 말과는 구별이 가도록 그 논변을 더욱 심화시켜야 한다.  


노정태

2007.03.14 17:05:11
*.152.106.143

게다가 고종석이 과연 대중에게 매혹적인 아우라를 뿜어내는 필자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거든. '번역투'라느니 '서양 냄새'라느니 '결국 옳은 소리만 한다', '그러면서도 전라도 티는 꼭 낸다'는 식의 비평을 하는 특정 정치적 성향의 지지자들을 적잖이 봐와서 그런지 몰라도, 강준만의 이 논평은 네가 지적한 강준만 자신의 프레임을 통해 고종석에 대한 자신의 팬심을 드러낸 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하뉴녕

2007.03.14 17:10:44
*.176.49.134

학계에서 너무 평가가 박해서 그런지 몰라도, '자신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과도한 애정을 쏟아붇는' 버릇이 강준만 교수에게도 있기는 하지. 글 내용 일부 고쳤다. 네가 오묘한 타이밍에 댓글을 달았구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1 [펌] 진보누리 대 아나클랜 / 이상한 모자 [13] 하뉴녕 2008-02-20 2677
30 민주노동당과 나 [15] 하뉴녕 2008-02-16 1613
29 [시사in] 내 인생의 책 :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36] 하뉴녕 2008-02-11 1004
28 레비나스라는 지젝주의자와의 덧글 논쟁 [18] 하뉴녕 2008-02-05 1119
27 헛소리에 관하여 (1) - 철학적 헛소리 [11] 하뉴녕 2008-01-22 947
26 시간을 달리고 싶은 소년 [3] 하뉴녕 2008-01-16 851
25 컴퓨터가 깔끔하다-. [6] 하뉴녕 2008-01-16 788
24 손석춘의 NL 운동권에 대한 감상적 시선에 대하여 [9] 하뉴녕 2008-01-07 981
23 [펌] 박정석 프로리그 80승 실패 포모스 반응 하뉴녕 2007-12-24 8052
22 냉소주의 [9] 하뉴녕 2007-09-13 1309
21 [펌] 선빵의 사실관계, 그리고 <디 워>의 마케팅에 대해서 한 말씀... / tango님 [91] [2] 하뉴녕 2007-09-06 1581
20 PGR, 고 며칠을 못 참아서... [4] 하뉴녕 2007-03-22 950
19 "팬심으로 대동단결"은 없다. 하뉴녕 2007-03-20 825
18 피지알 유감 [6] 하뉴녕 2007-03-18 960
» 정치적 설득과 매혹의 문제 [2] 하뉴녕 2007-03-14 1099
16 인용에서 인문학으로 : 어려운 여정 [6] 하뉴녕 2007-02-13 948
15 송호근의 미덕과 악덕 하뉴녕 2007-01-22 1912
14 철학, 역사를 만나다? [2] 하뉴녕 2006-05-16 1139
13 조우커의 정치비평 [2] 하뉴녕 2006-02-21 1861
12 시뮬라시옹 : 한계가 뚜렷한, 그러나 의의는 있는 하뉴녕 2005-01-10 1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