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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송호근의 미덕과 악덕

조회 수 1912 추천 수 0 2007.01.22 04:19:35
<한국,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송호근, 21세기북스(2005) 읽다.


'이념갈등과 정책빈곤의 진보정치'라는 부제엔 동의한다.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이 '진보정치'를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것은 이름의 문제일 뿐이니까.) 즉, 노무현 정권이 수사적으로는 굉장히 급진적이면서, 실제 정책의 차원에선 빈곤한다는 것, 수사적으로 보수층을 자극했기 때문에 별 것도 아닌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에 막대한 정치력을 소모하게 된다는 것, 그런 상황을 탈피하려고 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지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것, 그 결과 정권의 개혁적 정체성을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수구세력과의 말싸움을 통해서 과시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한국이라는 국가의 미래나 개혁세력의 앞날을 위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등의 사실에 동의한다. 이런 추세가 꼭 국내의 문제로 국한되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중국의 도약과 '동북아 중심국가' "라는 꼭지에서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탄핵 사태나 과거사 청산법에 관련된 그의 미적지근한 칼럼에도 상당부분 동의한다. 그런 입장이 가능하다는 것, 그럼에도 '양비론자'로 몰려 네티즌들의 질타를 받는 그의 처지가 한국사회에 공론이라는 영역이 없음을 보여준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이상의 '동의'는 그의 언어가 아니라 내 언어로 정리한 것이지만, 내용상의 큰 차이는 없다고 믿는다.


다만 탄핵 사태나 과거사 청산법에 대해 열린우리당을 화끈하게 지지하지 않을 때에, 그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을 동시에 비판할 수 있는 그만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열린우리당, 혹은 한나라당의 방식이 '심하다'라며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런 접근도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곤혹스러운 것 앞에서 곤혹스러움을 표시하는 것도 글쓰기의 힘이다. 하지만 나는 주류언론에 자주 글을 기고하는, '외국 학계에도 널리 알려진 한국의 중진사회학자'의 정치평론이 이 수준은 넘어섰으면 좋겠다. 아마도 그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나,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따위의 수사에 감명받을 사람인 것 같다. 대선후보 '노무현의 눈물'에 감동받고, 대선 후엔 더 이상 그런 '눈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간의 얼굴'이라는 애매한 수사를 사용하기보다는 침해받아서는 안 되는 사회구성원의 인권엔 무엇무엇이 있는지를 기술하는 것이 더 '공론'에 가깝다고 믿는 사람이다. 탄핵 사태 때 대통령, 열린우리당, 그 지지자들이 심하게 나아간 부분이 있다고 비판하려면 헌법적 시각에 기대야 하고, 과거사 청산법에 대해 회의를 표명하려면 '민족이 아니라 인권'이라는 이영훈의 시각 정도는 갖춰야 한다. 그가 그런 역량이 없다고 단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 인용된 칼럼은 미진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386세대와 포스트 386세대에 대한, 특히 포스트 386세대에 대한 그의 '세대론'에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그의 책은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압승한 직후, 정권과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이 정도로까지 급락할 줄은 몰랐던, 부동산 정책이 이토록 처참하게 실패할 줄은 몰랐던 상황에서 쓰여졌다. 지금이라면 그는 조금 다른 말을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가령 포스트 386세대가 인권, 환경, 평화, 분배, 차별금지, 자아실현 등을 우선시하는 탈물질주의에 경도되어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당장의 정치적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아야 하는 인식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상황인식에는 정말 동의하기 어렵다.


어쩌면, '그 이전 세대와 비교한다면'이라는 관용어구가 그의 모든 주장을 용서해줄 지도 모른다. 그의 조심스러움은 크나큰 장점이다. 그래서 노무현 정권을 높게 평가하진 않으면서도, '한국 현대사를 돌이켜본다면 노무현만한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것도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하는 그의 자세에 (그 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나는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절대적 기준'이란 것도 있는 것이다. 김선일씨 피살 사건 때 보여준 한국인의 태도는 그들이 '인권'이란 단어에 대해서 아는 것이 철자법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포스트 386세대니, 20대니 하는 사람들도 그 점에서 세계평균보다는 한국평균을 따르고 있음을 증명했다. 그들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마치 화투장을 집어던지듯 가볍게 내던져 버렸다는 사실엔 주목하지 않았고, 테러리스트들에 대해서만 분노했다. 이라크에 특전사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 이들 중엔 20대도 많았을 것이다. 송호근 교수식으로 정의한다면 포스트 386세대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위 세대들은 포탈사이트 리플을 그렇게 열심히 달지는 않으니까.


신기하게도 송호근은 포스트 386세대의 특징이 이렇기 때문에, 한국 정치에 큰 분란이 일어날 것처럼 말한다. 그의 '세대에 대한 우려'가 나에겐 '세대에 대한 극찬'이 되는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의 이념갈등이 심하고, 그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어떠한 정책적인 기제도 없다는 그의 판단, 그것이 한국사회의 큰 문제라는 그의 인식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 원인이 세대의 분화에 있다는 그의 진단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가 보는 세대는 내가 보는 세대와는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에, 나는 그가 논리적 정합성이 떨어진다기보다는 현실파악에 실패한 정치평론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그의 말을 절반만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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