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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역사를 만나다?

조회 수 1139 추천 수 0 2006.05.16 16:28:00
카이만, 군인, 꺾인 상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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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역사를 만나다 상세보기
안광복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세계사에서 포착한 철학의 명장면을 소개하는 책. 현재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인 철학의 기능을 재발견하였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와 춘추 전국 시대부터, 프랑스 혁명과 마르크스의 시대를 거쳐, 니체의 초인 사상과 비트겐슈타인의 그림 이론에 이르기까지, 2천여 년에 걸친 철학의 주요 장면을 세계사와 함께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은 철학에 '역사'라는 온기를 불어넣어 생생하게 되


<철학, 역사를 만나다>, 안광복, 웅진 지식하우스(2005) 읽다.


논술이나 고교 글쓰기 교육과 관련해서 발달하게 된 새로운 교양도서 저자군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이들은 학자와도 다르고, 기존의 교양도서 저자들과도 다르다. 중고교생을 교육시킨 경험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그만큼 ‘눈높이 교육’도 철저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교양도서의 미덕을 가장 충족시키는 책은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대중들이 읽기 편하게 쓰여졌지만, 결코 이것이 경제학의 전부라는 얘기는 하지 않고 ‘지식소매상’의 예의로써 참고문헌을 성실히 달아놓는다. 대개 학자들은 참고문헌은 달아놓지만 문체가 어렵거나 서술방식이 너무 체계적이라 대중들의 구체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몇몇 교양도서 이야기꾼들은 자기 이야기만 들으면 뭐든 알 수 있는 것처럼 사기를 친다. 교양도서 저자로서의 유시민은 겸허하게 그 두 가지 단점을 회피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안광복의 책에 달려있는 참고문헌("더 읽어봅시다!"로 되어 있지만)은 완전한 고전이거나 교양도서들이다. 가령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밀의 <자유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고병권, 이진경, 이한우 등의 책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그 자체는 하나의 진전이라 볼 수도 있겠다. 유시민과는 더 이상 비교해서는 안 되는 것이, 이 책은 교양도서를 참고문헌으로 삼는 '교양도서보다 쉬운 교양도서'인 것이다. 중고교생의 철학교육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는 당연하고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그 선택과 상관없이 이 책에 대한 불만도 크다. 이 책은 철학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역사를 끌어들였다고 설명하고 있고, 실제로 이 책의 부제는 ‘세계사에서 포착한 철학의 명장면’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역사와 구별되는 철학적 견해가 나오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 책에서 그리는 철학 사조는 시대적 상식과 현대의 상식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다. 비록 바로 그 철학 사조가 그 시대적 상식을 만들었다는 식으로 주장하고는 있지만 말이다. 플라톤이 스파르타 팬클럽 회장이었다고 말하다가 그래도 민주주의가 더 좋다는 식으로 단락을 맺는다든지, 조선왕조 500년의 힘을 주자학에서 찾는 합당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그래도 주자학은 관념적이라고 말한다든지, 헤겔 철학을 전체주의와 연결해서 이해하는 태도 등은 정말이지 상식, 혹은 사회적 통념, 흔히 그렇게 생각되는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철학은 상식을 정당화할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라도 모든 것을 처음부터 검증하는 가운데에서 그렇게 한다. 이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그러나 철학의 본질적인 특성은, 철학이 논증을 다루며, 그것도 처음부터 다룸으로써 모든 것을 검증하려고 든다는 것이 아닐까. 나의 논증이 언제나 내 평소의 신념을 결론으로 도출해 낸다면, 한번쯤은 내 논증의 성실성에 의문을 제기해 보는 자세가 철학의 자세가 아닐까.


이렇게 '상식'으로 철학을 보다보니 몇몇 부분은 아예 틀려버린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의 지식을 정리해서 ‘진리의 나무’를 그렸다. 나무의 맨 밑둥은 자연학, 줄기는 수학과 철학, 그리고 맨 위는 신학으로 되어 있었다. 모든 학문의 목적은 결국 신을 향해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반면 데카르트가 그린 그림은 정반대였다. 뿌리는 형이상학, 줄기는 자연학, 그리고 의학 기계학 도덕학이 맨 위에 있는 커다란 세 개의 가지를 이루었다. 이렇게 바뀐 진리의 나무는, 학문의 목적은 더 이상 ‘천국’이 아니라 몸의 건강, 물질을 이용한 풍요로운 생활과 품위 있는 삶에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p125-126)



나무의 맨 위만 쳐다보자면 한쪽에서 학문의 목적이 신이요, 다른 쪽에서 학문의 목적이 실천적 기술이라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렇기는 한데, 그러면 뿌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한쪽에선 학문의 출발이 경험이요, 한쪽에선 학문의 출발이 신존재증명이지 않는가. 이건 정말이지 아퀴나스가 토대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데카르트주의의 차이를 설명해 주는 도식일 뿐이지, 중세와 근대를 구별짓는 도식으로는 사용될 수가 없다.


신존재증명 없이는 물체존재 증명이 안 되고 따라서 물리학이 출발도 안 되는 데카르트주의를 ‘몸의 건강, 물질을 이용한 풍요로운 생활과 품위 있는 삶’과 엮는 것은 무리한 일이며, 개별자를 먼저 보고 거기서부터 추상화시켜 신을 향해 나아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중세 신학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떤 의미에선, 위에 있는 신만 추상적인 관념(가령 유명론에서 말하는 관념)으로 바꾼다면 아퀴나스의 진리의 나무가 훨씬 더 현대인의 ‘상식적 관점’에 부합한다. 하지만 중세는 신중심, 근대는 인간중심, 뭐 이렇게 도식을 짜고 ‘진리의 나무’를 거기에 맞춰 해석하려다 보니 위와 같은 주장이 나와 버린 것이다.


한편 니체에 관해 설명하는 어느 박스에서는 니체가 인간을 낙타형 인간과 사자형 인간으로 구분하고 이에 대해 각기 다른 처방을 내렸다고 되어 있다. 낙타형 인간에겐 매사를 긍정하라고 하고, 사자형 인간에겐 어린아이처럼 웃으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안광복 본인의 잘못인지 아니면 고병권의 책에 비슷한 오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금시초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낙타-사자-어린아이는 말 그대로 ‘(이상적인) 정신의 세 가지 변화’를 나타내는 거지 그것 자체가 하나의 인간유형은 아니다. 그러니까, 어떤 이가 낙타형 인간이거나 어떤 이가 사자형 인간이라고 부정적으로 파악하고 처방전을 내리는 일은 니체에겐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어떤 녀석이 너무 오랫동안 낙타질만 하고 있다면 그 녀석에겐 사자처럼 의지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벌이라는 권고를 해야 할 것이다. 만일 어떤 녀석이 낙타도 안 거치고 사자질을 하고 있다면 그 녀석에겐 “어린아이처럼 웃으라!”고 처방할 게 아니라 “먼저 낙타부터 해보시지?”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여하간 논술교육 시장이 발달함으로써 그게 인문학 교양도서와 맞물리는 현상은 ‘좋은 것’이긴 하다. 어차피 우리나라에서 교양교육의 필요성으로 가장 크게 와 닿는 것이 논술시험의 존재이니 말이다. 그리고 저자가 이런저런 논술 관련 잡지에 연재하는 에세이는 좋은 것들이 많다는 사실도 안다. 다만 이 책처럼 폭넓은 시공간에서 많은 수의 철학자를 다루는 책을 쓰기엔 저자의 내공이 충분치 않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안광복

2007.01.30 18:29:34
*.68.50.251

...저는 철학 역사를 만나다의 저자 안광복입니다. 우연히 자료를 찾던 중에 들러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서평, 따끔한 지적 새겨 듣겠습니다. 앞으로 집필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부족한 책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뉴녕

2007.01.30 20:28:06
*.148.250.51

부족한 서평을 보고 그렇게 반응해 주시니 제가 더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더 좋은 책 쓰시길 바라고, 꼭 한권 사드리겠다는 약속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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