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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8월 27일 저녁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개청춘 시사회를 다녀왔다. 개청춘은 여성영상집단 반이다가 20대의 삶과 목소리를 담기 위해 만들어낸 다큐멘터리다. 희망청 행사에 가다보면 이분들이 영상을 찍는 모습을 종종 뵐 수 있었다. 오며 가며 인사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고 기본적으로 나눈 대화가 거의 없었는지라 눈에 익은 분들이 있었는데 정작 시사회를 가서는 인사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시사회를 하는 줄도 모르다가 EXmio님의 강권으로 따라간 탓에 영화 끝난 후 같이 간 친구와 EXmio님과 셋이서 영화에 대한 잡다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 글의 내용 중엔 그 얘기들이 포함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영화는 재미있었다. 생각보다는, 훨씬, 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고, 관객석의 반응도 매우 좋았다. 5분마다 한 번씩은 웃음이 터지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내용에 대해 말해보자면 아직까지 그것을 평가할 뚜렷한 관점이 떠오르지는 않는데, 영화 상영 이후 관객들이 질문한 내용을 중심으로 복기해 보며 조금 써보도록 하자.


먼저 ‘개청춘’의 장점은 반이다 스스로도 20대 문제에 속해있음을 자각하고 관객에게도 그것을 주지시킨다는 것이다.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왔다는 한 영상제작자의 독백으로부터 이 영상은 시작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반이다가 부각될 거라면 반이다 멤버 3명에 대해서도 좀 더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상영 후에 듣기로) 다큐멘터리를 지탱하는 3명의 인물은 반이다 멤버 중 1인이 어딘가에서 만나서 취재요청을 하게 된 이들인 만큼 그런 점이 더 드러났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래도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의 미묘한 관계들이 드러난 부분은 좋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기업 인사팀에서 일한지 7년이라는(맞나?) 민희가 갑자기 찍는 사람의 방에 찾아와 잠깐 묵게 해달라는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가정불화에 대해 매우 담담하게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어떤 이는 이 장면이 20대 문제와는 구별되는 특수한 문제인데 여기서 나와서 좀 거슬렸다고 질문했다. 하지만 이 장면은 빠질 수 없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 사실 그게 그리 특수한 문제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데다가, 다큐멘터리라는 게 글쓰기처럼 주제에 맞추어 소재를 삭감하는 방식을 취해야 하는지도 의문이고 (원래 영상이란 건 특수를 통해 보편을 보여주는 것이지 스스로 보편인 척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바로 그 ‘고백’ 때문에 반이다가 찍히는 사람과 자신들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고민은 이 영상물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20대 문제에 대해 얘기는 하지만, 스스로도 그 20대 문제에 속해 있는, 그래서 찍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무력한, 그래서 그들과 어떤 식으로 소통해야 할지 고민하는 그 반이다의 시선 말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셋이다. 인식이라는 이름의 스무살 가령의 남성은 고등학교 재학할 때부터 숱하게 알바를 했고 조금 있으면 군대를 가야 하는 처지다. 민희는 앞서 언급했듯 고졸학력으로 대기업에서 7년째 일한 회사원이다. 승희는 방송국에서 몇 년 째 막내 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 일반적인 대학생들의 모습을 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질문한 사람이 있었는데, 반이다는 애초에 ‘일을 하는 20대’라는 컨셉으로 인물을 선정했다고 대답했다. 대학생에 대한 얘기는 꽤 나오는, 혹은 그것만이 주도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20대 담론의 현실이라면, 반이다의 이러한 시도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아니 그 이전에 한 편의 영상물에서 ‘20대 일반’을 모두 다 담아내겠다는 생각이 무리일 것이다. 20대 일반을 담지 않아도 영상은 충분히 20대적일 수가 있다.


안타까운 부분이 있었다면 세 명 중 유일하게 남성인 인식과 관련한 것이었다. 반이다는 승희나 민희와 소통하는 만큼 인식과 소통하는 데에 실패한 듯 했다. 내가 다니는 직장이 자아실현과 관련이 없다는 민희의 고민과, 자료조사나 하는 막내작가가 아니라 자기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라는 승희의 고민 역시 만만하지는 않다. 그러나 알바를 전전해야 하는 인식의 상황이 아무래도 제일 안 좋았던 것 같다. 반이다 역시 인식에게서 무엇을 끌어내야할지 고민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반이다는 인식과 함께 “조난 프리타”라는 영화를 본다. 그런데 이 선택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인식은 반이다와 함께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사람들은 내게서 어떤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걸까?”라는 의문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이 영화를 보지는 않았는데, 영화 속의 일본인 프리터의 모습이 처음부터 끝까지 변화가 없었고, 인식은 거기에서 자신의 삶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난 저렇게 보이면 안 되는데...영상물 처음과 끝이 뭔가 달라야 할 텐데...’ 영화를 본 후 당혹스러워한 인식의 대사는 대략 이랬다. 이 고민은 인식으로 하여금 반이다와의 연락을 끊게 만든다. 다시 연락이 되었을 때, 반이다는 인식에게 ‘약속’에 대한 얘기를 한다. 연락하기로 해놓고 연락을 안 받으면 어떡하느냐고. 사실 찍힌 부분에서만 그랬지 다른 얘기가 더 많았을 수도 있지만, 솔직히 아쉬웠다. 그 맥락에서 ‘약속’이라는 의무의 이행을 요구한 것은, 반이다가 인식과 잘 섞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인식의 출근 길에 하필 정치적인 뉴스들을 삽입한 반이다의 편집은 반이다가 인식의 문제를 뭔가 정치적인 문제로 해석하고 싶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하지만 그 의도는 더 이상의 방식으로 표출되지 못하고 그냥 하나의 소품으로 남았다.


인식의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다큐멘터리의 재미와 생명력을 높이는 부분이 있다. 가령 인식의 친구들은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대니까 이명박 얘기를 하다가, 아 평소에는 이런 얘기 안 하는데, 라는 식으로 반응하는데, 그런 것들이 매우 재미있다. 극 초반부에 나온 일할 곳이 이렇게 많은데 청년실업이란 게 이해가 안 간다는 인식의 대사도 솔직했다. 어느 대학생은 그 점에 대해 반이다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의했지만, 챙겨야 할 건 인식의 말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20대 안에 그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일 터이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반이다가 만들어낸 것은 ‘20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20대의 이야기’였던 것 같다. 질문에 대한 반이다의 답변대로, 평균적인 윗세대가 보면 “아, 20대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구나...”라고 인식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어휴...20대...”라는 편견을 강화시킬 것 같은 그런 이야기였다는 거다. 가장 열심히 사는 인식에게조차, 윗 세대들은 가게 점원을 열심히 하면서 쇼핑몰 사장이 될 방법을 찾아야지 배울 것이 없다고 실망하고 그만두어버리면 어떡하느냐고 말할 게다. 승희에 대해서는 작가가 되기 위해 충분히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테고, 새로운 길을 찾아 야간대학과 회사를 병행하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두는 민희에게는 회사를 그만두어서는 안 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게다. 하지만 그들이 어른들이 원하는 그런 젊은이들이 아니라 자기들 나름의 방식으로 고민하고 좌절하고 그럼에도 희망을 찾으려는 그런 젊은이들이기 때문에 보는 내내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또한 서글펐다.
 

승희는 외주업체로 출근하게 되면서 나름의 결말을 맺는다. (그녀가 다니던 방송국이 최근 PD들에게 작가업무를 떠넘긴 KBS라는 사실을 명백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민희 역시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이 나름의 결말이라고 볼 수 있다. 인식만이 결말을 맺지 못하는데, 가능했다면 그가 고즐모(고통을 즐기는 모임, 인식의 친구들의 모임이다.)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군입대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그래도 하나의 결말은 되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인식은 이 상영회가 열리기 2주 전에야 군입대를 했고, 결과적으로 그는 영상물에 그런 결말을 담지도 못했고 영상물이 처음으로 상영되는 것을 보지도 못했다. 그 점이 다시 한번 아쉬웠다.


어디서 상영하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20대들이 사랑해줘야 할 영화다.


모리

2009.09.05 01:03:43
*.71.94.150

안녕하세요- 반이다의 모리라고 합니다아.
와- 꼼꼼한 리뷰 감사해요- 한 번 보고 이 내용을 다 기억하시다니 대단하시군요! ㅎ 한윤형님과는 아마도 제대로 인사한 적이 없어서 늘 곁눈질로만 뵀던 것 같아요. 다음에 함께 영화 얘기 더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더 좋을 듯 해요. 시사회 와주신 것도, 리뷰 남겨주신 것도 다시 한 번 감사!! 괜찮으심 저희 블로그에도 링크+펌 해 놓을 게요.

하뉴녕

2009.09.05 10:03:37
*.49.65.16

아이고, 들러주셨군요. 감사함다 :)

나비

2009.09.05 20:28:56
*.241.51.42

반이다의 나비입니다.
언젠가 희망청 복도에서 인사를 나누었었죠. 그러고보니 술도 마셨군요;;ㅎㅎ
그 날 정신도 없고, 인사하기도 왠지 쑥스럽고 해서 인사 못드렸어요.
그런데 이렇게 꼼꼼한 후기까지~ 감사합니다. ^-^

<개청춘>은 지금 상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려고 열심히 노력 중이에요ㅎ
상영하게 되면 소문 많이 내주세요ㅎㅎ

zeno

2009.09.06 23:32:43
*.10.11.71

아, 상영하게 되면 알려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위에 두분이 관계자시군요. 여튼, 상영하게 되면 알려주세요. ㅎ 요즘 블로그에 글을 못 쓰는 대신 링크를 남기고 있는데, 이 글에 대한 링크는 제가 영상을 본 뒤로 넘길까 하다가.. 까먹을 거 같아 그냥 지금 해야 겠군요 -_-; 여튼, 윤형님, 관계자는 아니더라도 상영하는 거 알게 되면 좀 블로그에 홍보해주세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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