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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블로그의 시대엔 실컷 뒷담화를 남한테 보이게 까놓고 그 남의 논평은 거부하는 희한한 일들이 종종 생긴다. 기본적으로 나는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블로그 주인장이 댓글이나 트랙백을 통제하는 자기구제의 권리를 인정하는 편이긴 한데, 그와는 별도로 남 씹기 좋아하던 양반들이 그저 남한테 씹혔다는 이유로 댓글이나 트랙백을 삭제하는 걸 보면 아스트랄하긴 하다. 그래서 나는 대개는 비판하는 대상이 내 글을 보도록 조처하는 편이지만, 이 글은 그렇게 소심한 사람들을 향하는 것이므로 트랙백은 보내지 않을 것이다. 논쟁을 키우기보다는 약간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차분하게 내부논의(?)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기도 해서. 


김규항이 일전에 블로고스피어의 목수정 사건에 대해 논평을 했다. 논쟁 자체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시점이고 해서 뭐라고 코멘트는 안 했었는데 시간은 좀 지났지만 간략히 정리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먼저 이글루스의 몇몇 이들이 김규항의 글을 가져가서 활동가들을 키보드로 비판하는 ‘신종 딸각발이’들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걸 보면 좀 난망한 기분이 드는데 “활동가들을 키보드로 비판하는 그 신종 딸깍발이들이 정말로 입만 산 바보들인지 아니면 제 나름대로 활동을 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분별하려고 그렇게 싸잡아서 비판을 하지?”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런 의문이 안 떠오른다면...... 그 희한한 뇌구조가 나는 납득이 안 된다.


가령 이글루스 친구들은 노정태와 허지웅은 실천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치열한 그들을 비난하는 키보드 딸각발이들...... 운운 한다. 그런데 대단히 미안한 얘기지만 노정태와 허지웅의 현실참여 글쓰기의 이력이나 오프라인 활동 등 어떤 잣대를 들이밀어 그 ‘활동’이란 걸 평가해도 둘이 합쳐 내 것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까려는 건 아닌데 거기다 김현진의 것을 더해 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군바리들이 흔히 쓰는 표현을 따르자면, 그네들이 먹은 짬보다 내가 버린 짬이 더 많은 정도다. 이걸 가지고 내가 그들의 발언권을 막는다거나 젠 체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른 잣대로 보면 노정태나 허지웅은 어쨌든 월급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들로 나같은 학생보다 훨씬 더 자리를 잘 잡은 건전한 생활인이다. 내가 말하려는 건 도대체 활동가에 대한 존중 운운하면서 그렇게 짬이 안 되는 활동가(?)들을 들이미는 건 뭐냐는 거다. 이글루스 친구들은 이오공감이 정책결정기구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하고. 김규항조차도 자신의 글을 이렇게 소비하라고 쓴 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물론 나도 뭘 했다고 당당히 말할 만큼 뭘 많이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좁고 답답한 바닥에서 십 여년 머무르면서 비용을 지출해 왔고 그 비용이 내 생활을 심각하게 침해하지 않는 균형점을 찾기 위해 애썼다. 최근에는 사회적 관심이 내 글쓰기에 도움이 되고 그 글쓰기가 내 생활에도 도움이 되는 나름의 재생산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해 낑낑대는 중이다. 당연히 잘 되지 않는다. 돈이 없다. 돈이 안 생긴다. 굳이 따지자면 이런 노력은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의 원고료를 가지고 민주노동당비를 충당하려고 했던 2002년까지 그 기원이 소급된다. (진보정치에서 원고료를 제 때 안줘서 아차하는 사이에 내 당권이 정지된 적이 있다.) 지난 십년간 내가 이런 식으로 비겁하게(?) 활동하고 있으면  열혈 활동가(?)들은 나의 게으름과 한발 빼려는 태도를 나무랐다. 그랬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기껏해야 1-2년 제 몸을 불사른 후 이런 짓은 더 이상 못해 먹겠다며 생활인의 세계로 이탈했다. 그래서 그들이 잘못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엊그제 운동판에 입문하거나 이제 겨우 정치적 관심을 가지게 된 애들이 떽떽거리면서 날 욕하면 나도 당연히 어이를 상실한다는 말 정도는 해주고 싶다. 아니 너희들 그러다가 떠나면 또 설거지는 내가 한다구. 언제까지 너희들이 그렇게 살 것 같아? 특히 인터넷에서 떽떽거리던 애들은 아이디 버리고 잠수타면 그만이다. 십 년전 쯤에 그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종종 후회한다. 너희들은 아직 그 짓 할 기회가 많을 테니 벌써부터 긴장하지는 말고.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키보드로만 나불대는....어쩌구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난 딸깍발이를 좋아해서 ‘신종 딸깍발이’를 욕으로 사용하지는 못하겠다. 내 세계관에서 딸깍발이는 김규항보다 훌륭한 사람들이다.)


다음으로 김규항의 글 자체의 문제를 찾아보자면, 나는 그의 ‘활동가 우대’론의 전제를 의심한다. 활동가는 현장에 대한 경험이 있으므로 현장을 기반으로 하는 그의 의견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이건 뭐 윤리도 아니고 그냥 개념의 문제다. 마찬가지로 나는 지식인도 이론을 아니까 그 이론에 대해 설명하고 적용하는 차원에서만큼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김규항은 그건 민중과 내가 못 알아 먹는 소리니까 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웃기는 소리라고 생각하지만 이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자. 요즘 잘 팔고 계시는 <예수전>을 텍스트로 삼아 얘기해보면 더 좋을 것 같으니까. (웃음)


문제는 활동가를 우대해야 한다는 말이 성립하려면 활동가에게 뭔가 비범한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활동가에겐 모종의 윤리가 있기 때문에 우대해야 한다는 것일 텐데, 이것을 활동가의 윤리 문제라고 칭해보자. 김규항은 목수정을 비판하는 신종 딸각발이들이 지들은 맥주 마시고 자판 치고 있을 때 타인을 돕기 위해 서명운동을 하러갔던 활동가를 부당하게 폄하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반대로 바로 목수정이 바로 그 활동가의 윤리를 거슬렀다고 보았기 때문에 비판한 것이다. 김규항이 좌파 마초, 혹은 신종 딸각발이들의 것으로 정리한 논거에는 내 것은 없다. 그러니까 나는 김규항이 내가 아닌 다른 이들, 혹은 허수아비를 때렸다고 치부하고 그냥 내 할 말을 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김규항 등이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파악하는 시각이 대개 그런 식의 한쪽 눈 질끈 감기에서 나오는 것 같아 안쓰럽다.


목수정이 오페라단원들을 위해 정명훈에게 서명을 받으러 갔다가 실패했을 때, 그 이후에 오페라단원을 논하지 않고 정명훈의 문제를 널리 이슈화하기로 결심했을 때, 그녀는 오페라단원의 이득보다 자신의 자존심을 위에 둔 것이다. 내가 목수정 등을 활동가의 윤리라는 측면에서 비판한 건 그 때문이다. 물론 알고 보면 목수정이 레디앙에 송고한 글은 목수정의 본의로 공개한 것은 아니었다. 네티즌들은 이 사실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목수정이 그후 침묵했다면 나같은 사람은 “그건 우발적으로 공개된 글이었다. 오페라단 문제에 집중하자.”고 말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목수정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정명훈을 비판한 자신의 글을 공개해놓고 오히려 정명훈에게 사과한 오페라단원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했고, 진보신당 당 차원에서 정명훈과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굳이 정리하자면 활동가가 투쟁 당사자를 비판(?)하면서, 갑자기 다른 활동을 하자고 주장한 거다. (오페라단을 위해 서명운동하러 갔다던 이가 자기 블로그에서 오페라단원을 비판하는 현실은 얼마나 엽기적인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결국 이 문맥을 고려해 봤을 때, 목수정은 더 이상 오페라단원 문제에 대해 일을 하는 활동가가 아니었다고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활동가가 갑자기 활동가가 아닌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면서 활동 자체에 대해 누를 끼치는 사태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비판도 할 수 없단 말인가? 만일 활동가가 그런 것이라면, 우리는 도대체 왜 활동가란 것들을 존중해야 하는가?


네티즌들이 목수정을 비난한 이유가 이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목수정을 옹호하는 것은 별스러운 일이다. 물론 목수정은 자신에게 성폭력적 덧글을 단 네티즌들에 대한 처벌과 비난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 점에 대해 나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 나는 네티즌들이 친일파라고 욕하던 김완섭이 악플러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을 때도 지지했다. 그건 누구든지 언제든지 가질 수 있는, 가져야 하는 권리다. 하지만 누군가 그 권리를 가졌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해서는 안 되는 걸까? 진보신당의 여성 활동가가 이슈가 되었다면 그녀를 향한 비난에 진보혐오나 여성혐오가 베어드는 것은, 비록 바람직하지는 않으나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를 비판할 수 없을까? 이전에도 비유했듯, 과거 노무현이 뭔가 행동을 하면 언제나 조중동은 그를 (어느 정도는) ‘부당하게’ 비난했지만, 오직 그것만으로 노무현이 정당한 행동을 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닌 것이다.


내가 얘기한 목수정이라는 활동가의 윤리 문제에 대한 논점을 대략이라도 받은 것은 노정태 밖에 없다. 왜냐하면 노정태는 가장 적극적으로, 가장 멍청하게, 목수정이 정명훈과의 싸움을 위해 진보신당을 호출했을 때 우리는 그녀를 도와야 했다고 (혹은 침묵하지는 말았어야 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걸 두고 내가 조폭논리냐고 말하자 그는 조폭은 그런 의리가 없으나 소방관이나 경찰 등은 자신의 동료를 반드시 구하러 간다고 했다. 그 비유를 다시 받아 보자면 이렇다. 소방관이 화재 장소에 갇힌 민간인들을 망각하고 동료 소방관에게 자신을 구해달라고 메시지를 보낼 때, 동료 소방관들은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가?


내 얘기가 다 옳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 논해야 목수정 건에 대해 나와 논의할 논점을 잡은 거라고 말하려는 것이다. 굉장히 재미있는 것은 세상 좌파들은 모두 자신들을 편들어야 하는 것처럼 설치는 이들의 목수정 옹호론이 좌파적이라기보다는 자유주의적이라는 것이다. 나는 제대로 활동도 안 해봤지만 그 대단한 활동을 했던 목수정 등이 갑자기 오페라단원을 비판하는 것이 뜨악하다. 그런 시점에서 목수정을 옹호하려면 그녀를 활동가에서 개인으로 환원하고, 오페라단원들 역시 투쟁 당사자에서 개인으로 환원해서, 오페라단원 개인이 목수정 개인에게 진실하지 못했는데 목수정이 화를 낼 ‘자유’를 지니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이게 활동가 우대론을 말하는 이들의 논법이 될까? 정말 황망하다.


이런 판에 김규항이 끼어들어 목수정을 옹호하는 것은 얼마나 엽기적인가? 그런 입장도 어이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왕년의 김규항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다. “오페라를 보는 민중이 누가 있는가? 민중은 그런 것 따위 신경쓰지 않는다. 지식인이나 신경쓸 뿐이다. 그런 걸 활동이랍시고 하면서 좌파라고 믿는 놈들이 세상에서 제일 나쁘다. 바리새인들아!!! 이 독사의 자식들아!!!!!! 훠어어이이 물렀거라~~~~~!!!!!!!!” 차라리 이렇게 말하면 김규항스럽지. 뻘소리도 일관성 있게 해야 나중에 평가를 받는다. 지금 김규항이 하는 말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너무 팍팍한 잣대인가? 다소 상식적인 얘기로 넘어왔다고 칭찬해 줘야 하나? 하지만 <예수전> 프리뷰를 보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이 얘긴 <예수전> 읽고 하자.)   


다시 ‘활동가 우대’론이라는 논점으로 돌아오자. 얘기를 이렇게 만들면 뭐가 어떻게 되는가? 누가 누가 열심히 했느니 누가 오페라단원들이랑 친하느니 하는 수준으로 문제가 워프한다. 안드로메다로 가버리는 거다. 나도 오페라단을 위해 한 말이 없어서 별로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건 나를 향해 이래저래 떠드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대개 진짜 활동가들은 이런 논의에 끼어들지 않고 눈앞에 산적한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그들을 ‘우대’하고 ‘존중’한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모든 종류의 논쟁을 활동가 우대론으로 끌고 가는 태도에는 단호하게 반대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언제나 운동판에서 문제를 문제가 아닌 것으로, 서열싸움과 짬밥 자랑과 꼰대질로 환원하던 방식이기 때문이다. 새파랗던 어린 시절에는 게시판에서 누가 이딴 소리를 하면 “너희들 지금 나 말 못하게 하려고 지랄하는 거지? 뒤질래??”라고 지랄하면 됐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니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나에게 꼰대질을 하는 시대가 왔다. 이제 나는 그냥 꼰대질하는 이들만 욕하면 되는 게 아니라 외부 사람들에게 진보신당이 그렇게 멍청한 집단은 아니라는 사실을 어필하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하는 거다. 그런 노력을 무시하고 이죽거리는 저 사이비 키보드워리어들을 보는 내 심정은 당연히 착잡하다. 그들은 제 주관의 착각과는 상관없이 온라인 공간을 놀이터나 화장실로 생각하는 거다. 오프라인의 활동가를 우대하기 이전에 자신이 서 있는 온라인 공간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를 고민해 보라고 충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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