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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노정태, "돌출 행동을 수습하는 방법에 대하여" : http://basil83.egloos.com/4907034


0. 총평

이따구 글을 쓰고 나서 “마음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니, 안구에 습기가 찬다. 제발 노정태는 블로고스피어에서 당분간 떠나 심신을 돌보고 요양을 했으면 좋겠다. 안드로메다까지 스스로 날라가 있는 놈을 따라가서 줘패는 것도 한 두 번이지...


1. 글쓰기 방법의 문제

노정태식 글쓰기의 가장 큰 문제점을 찾는다면, 그가 언제나 ‘연역논증’을 하려 든다는 것이다. 물론 연역논증을 할 수 있을 땐 해야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려는 글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전공자들이 전공에 관계된 논의를 할 때 자기들 교과서에서 의심없이 받아들여지는 어떤 공리를 들고 글을 쓸 때에나 연역논증은 유효하다. 노정태는 그런 글쓰기를 동경한다. 말하자면 이과생들의 권위 혹은 포쓰에 현혹되어 있는 거다. 그가 자꾸 sonnet에게 시비를 거는 것도 그것과 연관이 있는 듯 싶다.


하지만 노정태는 글을 시작하는 자명한 공리를 어디서 찾아오는가? 그가 하려고 하는 정치평론에 그런 자명한 공리가 있을까? 대개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정태는 자기가 읽은 무언가에서 그걸 찾아온다. 미국 저널리스트 누구가 이렇게 말했는데, 이게 옳다, 여기서부터 시작해보자, 다른 놈들은 다 틀렸다, 뭐 그런 거다. 이번 글도 그렇게 쓰여져 있다. 억지로 끼워맞추느라 글은 길어지고 횡설수설 난리도 아니다.


2. 잘못된 예시 적용

목수정은 노정태의 예시에서 판사를 찾아간 시위군중에 속한다기 보다는 시위군중을 이끌고 간 변호사에 속한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활동을 했고, 그에 응당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이라는 점에선 말이다. 차라리 목수정을 변호사로, 투쟁하는 오페라단을 시위군중으로 비유했다면 얘기가 좀 더 적절했을 것이다. 그래봤자 이 얘기와 별 상관없는 비유이긴 하지만 말이다.


3. 논점 호도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노정태의 행동이 잘못 됐다.”이다. “침묵하는 것이 옳다.”는 아니다. “침묵하는 것이 옳지 않다.”라는 것에 동의한다고 쳐도, 그게 “침묵하지만 않으면 무슨 짓이든 해도 된다.”는 주장을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노정태는 <급진주의자들을 위한 규칙>이란 텍스트에서 “침묵은 옳지 않다.”라는 공리를 이끌어낸 후, “그러므로 침묵하지 않은 내가 옳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그 전제에선 그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의 글의 전반부는 티끌만큼의 가치도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목수정의 문제의 글이 기사화가 되었을 때 목수정이나 진보블로거들이 했어야 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1) 정명훈 사건에 대한 언급을 자제한다. 2) 오페라단 문제를 부각시켜 이 투쟁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홍보한다. 목수정은 정확히 반대로 했다. 노정태는 목수정의 그 짓거리를 가장 한심하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도왔다. 그 상황에선 누구도 그들을 도울 수가 없었다. “소나기를 피해야 한다.”는 내 말은 1)에 대해서 침묵하라는 말이지 2)에 대해서 침묵하란 말은 아니다.


논파는 다 했으니 이 참에 나도 공리(?)를 하나 가져와야겠다. 타임지 에세이스트 로저 로젠블라트는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58>의 세 번째 규칙으로 “나쁜 일은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라.”를 제시한다. 이 챕터에 나오는 예시 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오스카 와일드가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비난(이 아니라 사실지적) 한 이를 고소했다가 피 본 얘기다. 나는 노정태가 급진주의자라고 믿지 않는다. 그러니 유쾌하게 나이 들기 위해 이 규칙을 따르는 편이 현명할 것 같다. 


4. 조폭 논리가 정당의 권위를 지켜주나?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고 언급한 후 노정태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몇 가지 헛소리를 한다. 그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 하지만 무기력하게 당하는 진보신당, 진보신당 당원이 당 이름까지 들먹였는데 아무도 그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그따위 진보신당, 댁 같으면 찍어주고 싶겠는가? 완전 호구 집단으로밖에 안 보이지 않을까? 이것은 '정당정치' 이전의 논리이다. 인간의 집단은 이런 식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내가 국외자였다면, 목수정이 다구리당하도록 방치하는 이따위 정당에는 결코 호감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물론 이 입장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한심해서 말이 안 나온다. 그 입장은 보수적인 것이 아니라 조폭적인 것이다. 그것도 기업형 조폭들은 그런 식으로 일 안 하고, 무협소설에 나오는 협객들이나 관우 죽었다고 60만 대군을 와장창 털어먹는 유비같은 이들이나 저런 식으로 사고한다. 보스를 호구로서 조직원들에게 내어주는 짓거리. 이걸 진보신당이 해야 한단 말인가?
 

당의 권위를 숭상하는 보수적인 태도란 이런 것이다. 그럴 리가 없지만 의인화된 정당을 상상해보자. 목수정이 찾아왔다.


“정명훈이 나쁜 놈이에요!! 정명훈을 당이 타격해야 한다구요!!!”


보수적이고 권위를 가진 당이라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정당은 퀵서비스맨이 아닙니다. 스스로 벌인 일은 스스로 해결하세요. 생환하시길 빕니다.”


자신의 오류를 방어하기 위해 진보신당 전체가 움직여야 한다고 믿는 노정태류가 당의 권위를 운운할 자격이나 있을까?


5. 인민재판이 나빠서 나는 옳다?

노정태는 인터넷에서 인민재판을 하는 이들을 마케팅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어차피 진보신당을 찍지도 않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말 자체로는 맞는 말이다. 목수정에 대한 모든 비판이 인민재판은 아니라는 사실에 동의한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그렇다고 그게 노정태가 옳다는 논거는 될 수 없다. 왕년의 노빠들의 반응을 생각해보자.


1) 노무현이 삽질을 한다.

2) 조중동과 상식인들이 비난을 한다.
3) 노빠들은 조중동이 왜곡보도를 했다고 성질을 부린다.


조중동‘도’ 비난을 했다는 것이 노무현의 삽질을 덮을 수는 없다. 노무현쯤 되면 조중동의 왜곡보도는 ‘상수’로 둬야 한다. 마찬가지로 진보신당, 게다가 여성당원쯤 되면 그를 비난할 때 ‘진보혐오’와 ‘여성혐오’의 수사가 겹치는 것 정도는 ‘상수’로 둬야 한다. 합리적으로 먼저 목수정의 잘못을 비판한 뒤에야 그녀에 대한 과잉비난도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나쁜 놈들 핑계대면서 제 잘못을 덮는 건 빠가 많았던 노무현이나 취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같은 노씨지만 노정태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6. 소수자 운동가들을 보호하자고?

“둘째, 목수정이 다구리당하는 것을 수수방관하는 진보신당의 모습은, 앞으로 소수자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충성도를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미안한 말이지만, 소수자 운동은 오래 하면 할 수록 '쿨'해질 수가 없다. 당연한 일이다. 소외된 자신을 끝없이 확인하면서, 자신이 억압의 주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과 맨몸으로 부딪쳐야만 하는 일이 바로 소수자 운동이기 때문이다.

목수정이 이번에 보여준 '비매너'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돌출 행동'을 한 누군가를 당원들이 전혀 챙겨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렇듯 경험적으로 확인되면, 소수자들은 움추려들 수밖에 없다.”


호랑이 풀 뜯어먹는 소리 하고 있다. 목수정이 소수자 운동하다가 이런 일을 냈나? 그리고 만일 훌륭한 소수자 운동가라도, 저런 잘못을 하면 왜 비난하면 안 되는가? 그의 평소의 활동과 그의 구체적인 행동을 결부시켜 얘기해야 할 필요는 없다. 반대로 한 번의 실수에 대해 비판하면서 그의 행적 전체를 부정해야 할 이유도 없다.  

 

목수정 사례를 돌출 행동에 대한 수습이라는 프레임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 스스로가 수습을 거부했다. 레디앙 기사가 뜬 정도의 돌출 행동이 있었고, 차라리 그녀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가만히 있었다면, 우리는 노정태가 언급한 것과 같은 수습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사건 자체가 그녀의 통제를 벗어난 일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과도한 비난이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강변하며, 오페라단 문제에 집중할 것을 요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목수정은 그런 모든 가능성을 분쇄해 버렸다. 기사화가 문제가 아니라 그 후의 행동이 더 큰 문제라고 내가 지난번에 언급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7. 정치인적인 것?

노정태는 목수정을 비판하자는 논리가 ‘정치적인 것’이라 주장되고 있지만, 실은 ‘정치인적인 것’이라 얘기한다. 참 지 맘대로 말도 잘 만든다. 무슨 뜻으로 쓸지는 정해두었을까?


‘정치적인 것’은 요즘 몇몇 철학자들이 밀고 있는 개념으로 아는데, ‘정치’와는 좀 다른 의미라고 들었다. 잘 몰라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개념을 이 문제에 적용하는 것은 그렇게 적절한 일은 아닐 듯 싶다. 게다가 ‘인’자를 하나 더 붙여 족보도 없이 방금 만든 개념(?)으로 다른 이를 비난하는 데에야...


노정태가 하려는 말은 간단하다. “나는 원칙으로 목수정을 옹호한다. 너희들은 전략론으로 목수정을 비판한다.” 틀렸다. 그런 적 없다. 목수정을 비판한 건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라고 지난 번 글에 써두었다. 그렇다면 거기에 대해 반박을 해도 해야지, 그냥 “너희들은 정치인이구나, 개객기들!!!”하면 이걸 글이 아니라 고함이다. 충고를 한마디 하자면 고함은 블로그에서가 아니라 대로변에서 질러야 속이 좀 풀린다.


8. 또 잘못된 예시 적용

“정말 합창단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하고 홍보 행위를 하고 싶었다면, 목수정으로 인해 이목이 집중되었던 그 때, 목수정을 내버리지 않으면서 그 논의를 진행했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정치적'인 행위이며, 빨갱이 논란의 한가운데에서 평화통일론을 내세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천재성이 드러난 것도 바로 그 정치적 행위를 통해서였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김대중이 잘난 것과 노정태가 못난 것 사이엔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는데.


“작년 국군의 날 강의석이 탱크 앞에 시원하게 벗고 곧휴를 드러내며 과자로 만든 총을 쏘고 '군대?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라는 퍼포먼스를 저질렀을 때, 진보신당 계열 블로거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강의석의 사진을 올려놓으며 '나는 강의석의 퍼포먼스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물론 강의석 본인이 워낙 비호감일 뿐더러, 한국 남성들의 군대 문제에 대한 정서적 저항감도 매우 극심해서, 욕을 아예 안 먹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경우에는 충분히 'damage control'이 되었다. 상대방이 살살 봐줘서가 아니라, 이쪽에서 확실히 세게 나갔기 때문이다.

'강의석의 저러한 행동은 평화 운동에 도움이 안 되고...'같은 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묻혔고, 강의석은 살아났다. 50000쯤 먹을 욕을 24380 정도만 먹고 지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강의석같은 역사와 전통의 비호감이 저지른 극도의 비호감질도 이토록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할진대, 어찌 목수정같은 극히 알려지지도 않았던 사람의 입장에 대한 옹호가 불가능하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는가? 게다가 강의석을 옹호하던 사람들 모두 강의석을 결코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을텐데?“


그건 강의석의 의도나 평소 행실에 대한 구구한 억측은 집어치우더라도, 그의 퍼포먼스 자체가 옳았기 (혹은 틀린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왜 강의석을 옹호하던 이들이 목수정을 옹호하지 않느냐고 노정태는 질타한다. 왜 그는 강의석을 옹호하던 이들이 목수정을 옹호하지 않는지 생각을 안 해보는가? 왜 편하게 앉아서 밥을 먹지 않고 물구나무 서서 밥을 먹는가?


8. 수습, 그리고 잘잘못의 문제

“돌출 행동이 저질러지면 누군가는 수습을 해야 한다. 혹자는 목수정을 고문관에 비유하기도 하더라만, 어차피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고 고문관질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목수정을 옹호하면서도 합창단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며칠 전 정도로 시간을 되돌려보면, 이쯤에서 수습이 필요한 대상은 목수정이나 노정태가 아니었다. 그들에 의해서 ‘병진들의 집단’으로 격하된 진보신당이었다. 그래서 할 일도 많은 내가 애써 설거지를 했다. 다른 이들은 오페라단 문제 자체를 알리는데 힘을 썼다. 그게 수습의 경과다. 노정태는 그 과정에서 일관되게 저항을 했다. 왕따가 되었으니 스스로 ‘내가 하려던 방식의 수습’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깨달은 모양이다. 이제 하나만 더 깨달으면 된다. 자신이 수습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라는 것. 


아직도 "내 말만 들었으면 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됐을 거다!! 근데 왜 내 말을 안 들어!!! 내 말 들어!!!!"라고 우기면 어떻게 하나? 사람은 누구나 가끔 틀린 소리를 한다. 자신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사실만 인정하면 그의 세계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넓어질 것이다.


“지금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일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명확하게 알고 넘어가느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나 또한 이 사태에 개입한 시점이 너무 늦었다. 우리는 모두 틀렸다.”


웃기는 소리다. 노정태는 처음에 “돌출 행동으로 인한 위험을 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고 했다. 맞는 소리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무슨 평생 일 할 필요없는 부르주아의 자식으로 태어나 24시간 진보신당을 위해 일하기로 결의하지 않은 이상, “개입한 시점이 너무 늦”는 상황을 피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틀린 일이 아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틀리지 않았다. 틀린 건 노정태 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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