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블로그에 쌓여 있는 글들은

조회 수 892 추천 수 0 2008.02.29 16:32:30

내게 고통이자 쾌락이다. 군생활을 하던 어느 날, 나 자신이 글쓰기를 완전히 그만둘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내가 무엇이 되든지간에, 어떤 방식으로든, 또 어떤 형태로든, 나는 미래에도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자 내가 과거에 쓴 글에서 달아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 역시 자연스레 찾아왔다. 그래, 어차피 그런 거라면 다시는 도망치지 말자, 고 다짐했고 그 순간 이 블로그에 대한 구상이 생겨났다. 얼마 전 잠깐 블로그를 닫았을 때조차도 옛날 글들은 비공개로 전환되었을 뿐 모두 저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주일에 한번 정도 백업을 해서 블로그의 모든 데이터를 내 컴퓨터와 USB에 저장해 놓는다. 더 이상 나는 “내 글들이 날아가도 신경쓰지 않아-.”라는 식의 쿨한 척은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가정하기로 했다.


나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8년 전의 그 사건 당시, 내게는 두 개의 선택지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인터넷에 올린 글을 부인하거나, 승인하거나.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나는 ‘아흐리만=한윤형’이라는 사실을 승인하는 길을 택했다.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부모 몰래 밤에 일어나 인터넷을 하고, 독서실 간다고 거짓말하고 피시방 가서 글을 올리던 찌질한 고교생 주제에 말이다. 그때는 잘 몰랐다. 한번 책임을 지게 되면 끝없이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식의 책임이 무엇인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멸시하게 될 거라는 것을. 그때는 충분히 알지 못했다. 지금의 감상을 가지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판단을 내릴까? 알 수 없다.


군대에서 돌아왔을 때, 약간 기뻤다. 이제는 사람들이 그때의 사건보다, 그후 내가 인터넷에 썼던 글을 통해 나를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그르다. 이번에 모 사이트에서 느낀 것이지만, 여전히 어떤 놈들은 8년 전의 그 사건을 가지고 비난을 한다. 그리고 사실 그때의 사건이나 그후의 글이나 나를 얽어매는 과거라는 점에선 큰 차이도 없다. 언제나 내가 궁금한 것은 이런 내가 잘 되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의 정신상태다. ‘매명’이라는 비난은 적어도 무언가를 성취한 인간에게 퍼부어져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나는 이 사회에선 돈이 되지 않는 거대한 욕망에 비틀거리는 가련한 인간일 뿐이다.


여하간 나는, 단순하게 솔직한 인간답게, 내 모든 글을 스스로 모아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난지도의 쓰레기장만큼이나 그득하게 쌓여 있는 이 글들을. 어차피 이 글들을 다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없을 것.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스스로 공개하는 것보다 탁월한 가면이 또 어디 있겠는가? 나는 솔직함을 통해 자신을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에겐 그런 은폐의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은폐가 과연 효과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 내가 들어갈 때마다 비웃는 여느 블로거들처럼, 나 역시 좀 더 자신의 찌질함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섞어주었다면, 그들의 나에 대한 적개심은 조금 더 누그러들었을까? 그들은 나라는 인간의 견고함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 아닌가? 실은 나 역시, 이 사회가 나에게 자살을 명령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 중 하나인데도.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친구들 앞에서는 조증만을 보여준다. 아주 친한 친구쯤 되어야 내가 어떤 식으로 울증에 시달리는지를 조금은 알게 된다. 글쓰기는 혼자서 하는 일이기에 울증에 시달리면서 쓰는 일도 많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그것이 글을 지배하려는 시도에 저항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실제로 만나보면 이 글들보다 훨씬 더 친근한 사람이다. 하지만 정말로는 이 글들보다도 더 우울한게 나다. 예전에 내가 나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감상은 '언제든지 죽어버릴 수 있는 인간'이었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나는, 조증인가, 아니면 울증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P.S 하나의 반전. 내일(3월 1일)은 제 생일이라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1 김규항과 입진보가 만났을 때 일어나는 일들 [36] 하뉴녕 2009-05-11 2197
50 정치적 판단과 참여의 방법론에 대한 서툰 문답 [10] 하뉴녕 2009-04-28 741
49 상상마당 포럼 6회 대중비평 시대의 글쓰기 09. 4. 18 file [3] 하뉴녕 2009-04-25 1225
48 이택광과 칼 폴라니 논쟁, 그리고 독해의 문제 [28] [3] 하뉴녕 2009-04-15 3286
47 “돌출 행동을 수습하는 방법에 대하여” 비평 [69] [4] 하뉴녕 2009-04-09 1201
46 조선일보 문제와 ‘극우 헤게모니’론 [2] 하뉴녕 2009-01-31 1033
45 [찌질한 이벤트] 책 제목을 공모합니다. file [122] 하뉴녕 2009-01-23 1086
44 미네르바 이야기 [30] [1] 하뉴녕 2009-01-20 2303
43 정말로 미네르바 밖에 없는가? [19] [2] 하뉴녕 2008-11-21 1195
42 [교양강좌:글쓰기] “키보드 워리어가 전하는 청춘의 문법” file [4] 하뉴녕 2008-11-10 825
41 [책소개] MBC를 부탁해 file [2] 하뉴녕 2008-08-02 806
40 그래프 오타쿠의 정치평론 [18] 하뉴녕 2008-04-19 1176
39 '단호한 글쓰기'로 진실을 호도하기 [21] [2] 하뉴녕 2008-04-15 852
38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 - 아이추판다 님과 노정태 님에게 답변 [5] [1] 하뉴녕 2008-03-20 2430
37 송병구가 우승해야 한다. [10] [1] 하뉴녕 2008-03-15 2342
36 이번 주 씨네21 원고 외 [45] 하뉴녕 2008-03-03 821
» 블로그에 쌓여 있는 글들은 [20] 하뉴녕 2008-02-29 892
34 지존 키워 진중권의 전투일지 [20] [2] 하뉴녕 2008-02-28 2860
33 [펌] 김택용 vs 김준영 in 백마고지 Review. / 흥야 [3] 하뉴녕 2008-02-21 1090
32 문어체 소년의 인용구 노트 - 8 언젠가는? [1] 하뉴녕 2008-02-21 8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