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자기의 시대를 앞서가는 그 누구이건, 시대는 그를 언젠가는 따라잡는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천재철학자라고 칭할 수 있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문화와 가치>에 이렇게 적었다. 이 ‘낙관적인’(?) 문장의 성립의 비밀은 저 ‘언젠가는’이란 부사의 기약 없음에 있을 것이다. 혹은 ‘앞서가는’이란 부사의 애매함에 있을 것이다. 결코 따라잡히지 않더라, 고 말하면, “넌 앞서 있기는커녕 뒤쳐져 있어”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니. <드라마틱>은 어느 쪽이었을까?
<드라마틱>을 일종의 비평지로 정의한다면, 이 휴간호에 부쳐 한국 사회에서 비평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장황하게 썰을 풀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은 자아도취와 자기연민 사이를 오락가락하기가 십상이니, 패스. 한 사람의 수용자가 몰입의 쾌감을 느낌과 동시에 거리두기에서도 쾌감을 느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항변도 어떤 이들에겐 기각될 것이기에, 생략. 나는 단지 이런 말을 건네고 싶다. 한때는 글쓰기가 무언가를 변화시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내가 했던 짓은 ‘친구 찾기’에 불과했다고. 그리고 한편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은 ‘불과’하다고 폄하할 일은 아니었다는 것. 사람은 아마도 자신과 같이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에야, 비생산적인 우울함에서 탈출할 수 있으리라는 것. 그리하여 이 잡지의 휴간을 아쉬워할 이들에게만 말한다면, (다른 이들에게 얘기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것이 아쉬운 이유는 더 이상의 친구 찾기의 가능성이 봉쇄되었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아마 나는 “기쁜 날은 길지 않더라”로 글을 시작할 수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끝은 ‘희망’으로 맺고 싶었다는 것.
-한윤형 (드라마틱 31호, 2008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