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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사병의 입장에서 본 파병

조회 수 882 추천 수 0 2007.04.03 02:15:28


이라크 파병반대의 주장이 가장 거세게 울려퍼질 때도 이라크 파병을 원하는 사병들의 수는 엄청나게 많았고, 경쟁율은 언제나 수백대 일이었다. 국군 정훈 교재에서는 그것을 "일부 파병반대 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젊은이들의 애국심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소개했다. 언젠가 TV토론에서 어떤 한나라당, 혹은 열린우리당 (두 정당 다 공히 파병찬성 정당이니 어느 쪽인지 기억이 안 난다.) 의원이 그런 식의 주장을 했다가 노회찬 의원의 역공을 맞고 뻘쭘해 했던 적이 있다. "그건 청년실업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당이 반성해야 할 문젭니다."

하지만 그래도 2003년, 2004년 즈음까진 파병을 원하는 친구들을 그 부모가 말린다는 얘기가 많이 있었다. 내 친구도 한명 파병 신청을 하려고 했는데, 부모님 고집까진 꺾었지만 결국 할머니에게 패배하고 말았단다. 할머니가, 어딘가서 점을 보고 와서, "올해는 위험하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어찌 거기에 '반론'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러던 것이 내가 군생활 할 때쯤 해서는 오히려 부모님들이 "너는 파병갈 방법도 없냐."고 물어본다는 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파병군인의 월급은 대한민국 육군보다 수십배는 많고, 파병가서 하는 일도 별로 없으며, 결코 위험하지도 않더라는 인식이 널리 퍼진 탓이다. 이는 한국군 파병의 특수한 상황과 관련이 있다. 중동으로 파병된 한국군은, 미군이 제공권을 장악한 안전한 지역 안에 눌러앉아 건빵만 까먹는 군대였다. 말하자면 부시의 진영에 깃발 하나 보태준 것인지 실질적인 전투력을 제공한 군대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부시는 파병에 감사하는 연설을 할 때 대한민국의 이름을 빼먹었는지도 모른다. 한국군이 대민지원에 힘쓰고, 그리하여 현지인의 칭송을 받게 된 것도 이런 애매한 상황에 기인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파병 기회가 있었어도 군대 가기 전에 파병반대 주장을 하도 인터넷에 많이 올린 터라 그것을 부여잡지는 않았겠지만, 우리 사단에서 내 주특기를 선발한다는 공고는 내가 병장이 되어서야 나왔다. 그리고 전역이 5개월도 안 남은 사람은 애초에 지원서를 낼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약간은 사정이 다를 것이다. 어찌됐든 한 명의 파병군인이 '전사'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미군과 함께 있다가 그런 봉변을 당했다지만, 사람들은 그 한 명이 내가 될 가능성도 두려워 하는 법이다. 적어도 사병들 본인은 "어차피 고생할 거 갔다오고 목돈 벌자!"라는 생각을 하기 쉬울 테고 지원서도 많이 내겠지만, 이전처럼 부모님들이 흔쾌히 허락하거나 오히려 장려하는 국면이 다시 오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이란 동물은 이렇게 간사하다.


corwin

2007.04.03 10:00:06
*.106.22.131

비슷한 이야기인데...어리석으면서 간사한거겠죠. 맛을 봐야 똥인줄 아는거니까.

venceremos

2007.04.03 10:04:23
*.109.140.80

저도 파병논란 이후에 군에 입대하였는데, 정훈교재의 수준은 참담하다고 밖에는 달리 생각할 방법이 없더군요. 님이 언급하신 '젊은이들의 애국심이 살아있다' 정도는 그나마 나은 얘기었어요. 파병을 옹호해야 하는 사정은 이해하겠는데, 그나마 듣는 사람입장에서 민망하지 않은 수준의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정신교육 시간 내내 간절해지더라구요.
좀 다른 얘기지만, 개인적으로는 철 지난 '육사교장의 편지' 따위를 교재로 삼아 교육하며 감동스러운 표정을 짓는 정훈담당 간부들을 보고있는 것이 가장 큰 고역이었더라는...

뭐 아무튼 저도 전역이 임박했었기 때문에 간사함의 수준에 머무를 수 있었던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스럽군요.

하뉴녕

2007.04.04 03:56:33
*.176.49.134

저에게 정훈교재 내용 중 최고는 이거였어요. "부모님에게 사랑받는 아들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보는 순간 '그걸 왜 네가 간섭해?'라는 질문이 팍 떠오르더군요. 군대의 개념은, 법적 성인인 나와 무슨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 품 안의 아이를 데려와 관리하다가 부모님 품으로 다시 돌려주는 것이더군요. 그래서 저는 군대에서 들려오는 과도한 부모님 찬양이 언제나 불편합니다. 하긴 그래야, '아이들'을 부려먹기가 더 수월하긴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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