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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현실주의, 레토릭이 될 것인가?

조회 수 857 추천 수 0 2003.06.10 01:42:00
진보누리의 세라핌씨는 내가 쓴 모든 가면 중에서도 가장 자뻑이 심한 케릭터였다. 유령이라서 그랬겠지만. 다섯번째 문단에 글의 논지와 쓸데없는 '아는 척'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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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씨가 노무현 정권이 "현실적 개혁주의 정권"이네 어쩌네 떠들었다. 여기에 대해 어떤 분들은 "바로 그게 보수야!"라는 목소리로 반응했다. 물론 "바로 그게 보수!"라는 말은 맞지만, 강준만의 허황됨을 증명하기 위해선 좀더 근본적인 반론이 필요하다. 즉, 바로 그가 말하는 "현실"이 도대체 "현실"에 가깝냐는 것.


이를 위해 세라핌은 한국 사회에서 폭넓게 쓰이는 "현실주의"라는 단어에 대해 차근차근 교정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오늘 강준만을 박살낼 예정은 아니다. 세라핌의 팬 여러분들께 양해를 구한다.) 오늘의 타깃은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해 가장 설득력있는 찬성 의견을 제시해 주신 한겨레 왜냐면 구요한 씨에 대한 비평이다.


구요한 씨는 이렇게 말한다.


일부 종교인들과 환경단체가 새만금 사업의 반대를 주장하며 삼보일배 수행을 했다. ‘인간 생명이 중요하듯 살아있는 모든 생명도 중요하다’는 이들의 주장에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우리 모두 ‘생명은 생명을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원죄’를 안고 있다. 모두가 종교인이나 환경운동가가 될 수 없듯 21세기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생태적 삶만을 강요할 수도 없다.


매우 옳은 말이다. 우리모두 '생명은 생명을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원죄'를 안고 있다. 그것은 석기 시대 인류 예술의 테마이기도 하다. 곰의 두개골 뼈는, 곰의 갈비뼈를 입에 물고 있는 상태로 발견된다. 우연 같은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이 생명을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원죄를 표현한 원시인들의 예술작품이다. 그들은 거기에서 죄책감을 느끼기에, 자신이 사냥한 동물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그런데 구요한 씨는 이 옳은 말을 통해 무엇을 주장할 셈인가?


환경단체 주장에 귀기울이고 사업 추진 과정에 환경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업의 성공적 추진이라는 차원뿐만 아니라 개발과 환경의 조화, 그리고 지속 가능한 생명 공존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따라서 새만금 사업에 대한 찬반 논의 또한 사랑과 이해, 존중의 자세로 상대의 주장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열린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상반된 견해를 갖는 사람들이 서로 동참하고 협력하여 새만금 지역이 지역경제를 살리고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친환경적 방향으로 개발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인간 중심의 ‘개발’이냐, 생태 중심의 ‘환경’이냐는 다툼과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조화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다. 그러니까 생태냐, 개발이냐 이분법으로 접근하지 말고, 새만금 개발에 생태적 요소를 도입하면서 발전적인 개발을 하자는 얘기다. 논리 자체로야 틀린게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이 "현실주의"에 숨겨진 추악한 면을 봐야하는 것이다.


보라. 그는 생태와 개발 사이에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 하다. 그렇다면, 어째서 "새만금 사업은 생태와 개발 사이에 균형을 이룬 사업인가?"라는 질문은 던져서는 안 되는가? 그는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질문을 벗어나, 부차적인 문제로 다가간다. 만약 새만금 사업이 전혀 생태적이지 않은 "개발" 사업이란 평가를 내릴 수 있다면, 그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생태와 개발 사이의 균형"을 고려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어떤 오늘날의 환경 운동가가, 나이브한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굶어죽으면서 생명들을 보호하자고 주장하겠는가? "생명은 생명을 먹고 살수 밖에 없는 원죄"에 대해 경험적으로 깨닫지 못한 사람들도 있는가? 그러한 관점은 너무나 기본적이기에 이미 논의에서 벗어날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구요한 씨의 주장을 평가해보자. 그는 새만금 사업이 적절한 개발이라는 전제하에, 생태주의의 요소를 적절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것은, 바로 새만금 사업이 전혀 생태적이지 못한 부적절한 개발이라는 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구요한의 논리를 따르더라도, 우리는 새만금 개발의 백지화를 주장해야 한다. 그렇다면 구요한 씨는 도대체 누구에게 반론한 것일까? 아무에게도 반론한 바 없다. 그는 근본적인 문제를 비껴난 것이다. 아무에게도 반론하지 않고서, 설득력있는 주장을 내뱉었다는 평을 듣는 것, 이게 우리 사회의 논쟁문화에서 발생하는 일이다.


이러한 주장은 "현실주의"라고 주장될 것이다. 하지만 세라핌의 생각에 이것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레토릭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구요한이 무시한 중요한 문제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새만금 사업, 개발과 생태를 조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 이 질문에 부정적인 대답이 나온다면, 마땅히 새만금 사업은 반대되어야 한다. 세라핌이 그것을 반대하는 이유도 그것과 같다.


구요한이 제시한 이러한 편견을 깨뜨릴 때에 우리는 일상적인 "현실주의" 관념에서 벗어난, 진정한 현실적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구요한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많은 "전문가"들이 이러한 사이비 대안을 양성한다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작금의 상황에서, 현실주의란 단순한 수사법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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