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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프로게이머 이윤열의 '명예'

조회 수 3845 추천 수 0 2010.09.25 18:53:00

게임을 좋아하는 청년들에게 최근의 이슈는 단연 ‘스타크래프트2(스타2)’다. 스타2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이유는 작품 하나 이상의 맥락이다. 1990년대 말 PC방 열풍과 함께 한반도 남쪽을 강타한 스타1이 우리 세대의 청년들에게 ‘스타(크래프트)리그’라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적 이벤트를 만들게 했기 때문이다. ‘e스포츠’란 그럴듯한 포장지를 뒤집어쓴 ‘스타리그’는 10년 동안 자생적으로 발전해왔다. 그리고 스타2 발매는 스타1이 구축해온 스타리그의 세상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몰고 올 것이 분명하다.


스타크래프트의 제작사인 블리자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스타리그라는 괴물의 활동을 지난 10년간 방관해왔다. 블리자드는 처음에는 자신이 만든 게임을 그토록 사랑하는 청년들에게 감격했을 거다. 하지만 그후 블리자드는, 이 청년들이 ‘옛 게임’을 계속 즐기느라 ‘새 게임’을 거들떠보지 않는 상황이 별로 좋은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저작권’을 침해하는 스타리그를 방관했지만, 차후의 신작에서는 e스포츠조차 블리자드의 자장 속에서 실행되는 그런 시스템을 구현하고자 했다. 블리자드 계정의 배틀넷에 접속하지 않으면 아예 대전이 불가능한 스타2의 시스템은 그러한 의지의 반영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에게 끊임없이 ‘reset’을 강요하는 그런 ‘Game’이다. 소비자가 오늘 쾌감을 준 상품에 내일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의 시장경제는 존속할 수 없다. 어린이는 끝없이 장난감을 버리고 청년은 끝없이 철지난 게임에 ‘Delete’키를 누른다. 이처럼 끝없는 ‘단절’과 ‘망각’이 반복되는 세계에선 ‘서사’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이 현기증 나는 레이싱의 현장에서도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충동을 가진 동물이다. <토이스토리> 시리즈가 우리를 웃기고 울리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앤디가 우디와 버즈를 버리지 않기를, 그리하여 우디와 버즈의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스타리그의 서사는 <토이스토리>가 그랬듯 자본주의의 최첨단 이미지를 뒤집어쓴 채 그것의 비인간적 속도에 저항하는 그런 위안의 ‘서사’였다. 그리고 그런 서사를 만들어낸 위대한 게이머 중 하나, ‘천재 테란’ 이윤열이 스타2 공식 발매 하루 전날 스타2로의 전향을 선언했다. 일각에선 그가 ‘영예로운 프로게이머’의 지위를 버리고 ‘상금 사냥꾼’으로 돌아섰다고 비판한다. 후배들을 위해 ‘명예로이 퇴진’하지 않고 ‘기득권’을 누리려 든다고 비난한다. 어이가 없는 소리다.


한국e스포츠협회는 게임단에 팀스폰서를 하는 기업들이 모여서 구성된 단체다. 그들은 스타2리그를 주관하기 위해 블리자드와 저작권 협상을 했지만 실패한 바 있다. 그래서 각 기업이 운영하는 게임단은 소속팀 프로게이머가 스타2를 즐기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프로게이머는 협회의 룰 안에서 계속 스타1리그에 출전하거나, 협회가 인증하는 프로게이머 신분을 포기하고 새로 형성되는 스타2리그에 출전하는 양자택일의 선택지를 가진다. 한쪽의 길은 ‘영예’롭고 다른 한쪽의 길은 기득권을 추구하는 길인가? 협회야말로 프로게이머들의 권리는 방기한 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블리자드와 협상하다가 오늘날의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새로운 게임에 도전하고 싶다’는 열망보다 게이머에게 더 본질적인 것은 없다. 프로게이머라는 호칭은 협회의 인준이 아니라 그 열망이 가져오는 결과에 의해 결정되는 법이다. 이윤열은 여전히 프로게이머다. 팬들은 그의 결정과 누구도 박탈할 수 없는 그의 명예를 지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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