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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군대에서 영어 몰입 교육을?

조회 수 4278 추천 수 0 2008.02.07 22:59:20

"지난 번 글에서 필자는 군대를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곳, 지식사회의 최고 공헌집단으로 변화시킬 기회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방안으로 국방부의 공식 언어를 영어로 지정하고 지식 중심의 군대로 재편할 것을 제안했다. 군 복무기간 동안 모든 군인은 영어만 사용하게 하는 것이다. 즉 국방부의 시계를 영어로 돌리는 것이다.

군대가 가진 최대의 장점과 최고의 강점은 격리된 집단생활이다. 시간을 통제하고, 언어를 통제하고, 생활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다. 명령하고 지시하고 정확하게 알아들었는지를 복창으로 확인하는 유일한 조직이다.

일반사회와 격리되어 있는 조직, 영어만 사용하게 하는 절박한 환경을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다. 이런 강제력을 가진 조직이 군대 외에는 없다. 어느 사단을 정해서 시범적으로 운영해 보고 차차 확대해 나가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2년 동안 영어만 쓰는 군대생활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조직이 될 것이다."

전문은
경향신문 칼럼 "군대 가면 영어 잘 하게"


이명박 정부의 영어 몰입 교육에 대한 대안이랍시고 개혁적 언론인 (그래도 한국의 종이신문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신문이다.) 경향신문에 실린 칼럼이란게 이 수준이다. 첫번째로 비판받아야 할 것은 인수위의 영어 정책과 공유되는 부분이다. 즉, 전국민이 영어 회화에 능통하게 되는 것이 어떤 무리수를 써서라도 한국 사회에 실현시켜야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표인가 하는 것이다.  먼저 그 질문에 대한 대답부터 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그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 하지만,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결코 그렇지가 않다. 그러고보면 이강백씨의 칼럼보다는 진중권의 인수위 정책 비판에서 피력된 영어 교육관(영어로 된 고급정보가 번역이 잘 되는 시스템을 만드는게 더 시급하다는 것. 나도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에 대한 네티즌의 갑론을박이 훨씬 더 문제의 본질에 근접하는 셈이다.


두번째로 비판받아야 할 것은 인수위의 영어 정책과 비슷한 수준의 초현실성이다. 도대체 누가 징병제 사병들에게 영어로 명령을 내릴 수 있나? 어떤 장교가 그 정도의 회화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또 어떤 부사관이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엄청난 자금과 시간을 들여 전군을 닥달해도 장교와 부사관이 그런 수준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특히 부사관이란 종자는 애초에 언어능력이 좋은 분들이 아니다. 우리 부대 행정보급관이 하는 말은 한국말인데도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짬밥이 쌓이면서 눈치밥으로 알아들었을 뿐이지. 어떤 짓을 해도 군 간부들이 영어회화에 능통하게 될 일은 없을 것이고, 따라서 사병들이 영어몰입 군생활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면 다시 우리는 첫번째 비판 지점으로 돌아가 도대체 저 정책목표가 이런 생지랄을 해서라도 실현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를 물을 수 있다.


세번째로 비판받아야 할 지점은 저런 류의 주장이 군대가 존속하는 이유를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나 군대에 다녀오는 징병제 체제 내에서, 한국 남성들은 누구나 다 군대에 대해 아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에 대해 아주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령 언젠가 내가 "남여 개병제는 현재 실정에서 초현실주의적인 정책이다."라고 주장했더니 (원문은
사회복무제 도입과 군가산점제의 문제 ) 어느 예비역이 이에 반발하면서 각 부대마다 남여 부대를 따로 운용하면 된다고 반론했다. 가령 통신대대1은 남자부대, 통신대대2는 여자부대로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기가 막혀서 그러면 전투력이 어떻게 되느냐, 군대가 무슨 남녀를 평등하게 굴릴려고 존재하는 집단인줄 아느냐고 물었더니 덧글을 지우고 달아났다. 이강백씨의 칼럼도 그런 주장과 거의 수준이 다르지 않다. 영어로 명령체계를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명령하달에 소요되는 시간이 몇 초씩 더 걸린다면 어찌 되는 것인가. 갑자기 전쟁이라도 난다면? 군대의 정책을 얘기하면서 전시상황을 상정하지 않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전쟁나면 한국어로 바꾸면 되지." 평소에 연습해 오던 걸 버리고 갑자기 한국어로 돌아가면 한국말로 명령하달을 받던 병사들보다 버벅거릴 건 뻔하다. "그러니까, 그냥 영어에 익숙해지면 된다!!" 역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24시간 몰입교육을 한다 해도 그 경지에 도달하긴 힘들 텐데, 군생활을 해보면 삽질 하느라 병기본 교육받을 시간도 부족해서 행정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훈련양도 못 채우는 군인들에게 영어를 우선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코미디도 못 된다. 나라 지킬 사람 부족하다고 해서 끌려갔더니 보이스카웃처럼 조직을 운용하면 황당하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비판받아야 할 지점, 그리고 내가 가장 화가 나는 지점은 저런 류의 주장들이 대개 법적으로는 멀쩡하게 성인인 군 장병들을 어린이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보나 보수를 넘어선 한국 사회 전반의 인권감수성의 문제인 것 같다. 훈련소에서 정신교육 교재를 보면서 가장 황당했던 구절은 이런 것이었다. "부모님에게 사랑받는 자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든 종류의 논거를 끌어들여서 군대 생활이 좋다고 치장하려는 건 알겠는데, "그걸 왜 네가 간섭해?"라는 말밖에 안 떠오르더라. 내가 부모님에게 사랑을 받건 미움을 받건 그건 내 문제지 국가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국가가 진짜 간섭해야 할 문제들은 다른 곳에 있다. 하지만 군의 공식적인 입장은 내 생각과 다르다. 저 교재의 내용은 결코 삑사리가 아니다. 군에서 펴내는 장병복지 관련 지침들을 보면, 그들은 장병들을 국가가 부모님 품에서 빌려온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래서 간부들에게 휴가나가는 병사들이 되도록 부모님 집에 오래 머무르도록 강요하라고 권유한다.


물론 대다수의 20대 초반 남성들을 부모의 집에 얹혀 산다. 부모가 벌어다주는 돈으로 밥 먹고, 부모가 제공한 시설 속에서 풍요를 누린다. 그러니까 부모님이라든가, 기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어린이'로 취급하는 것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인식을 국가가 법적으로 성인인 남성들에게 공식적으로 피력하고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공적인 영역에서조차 우리는 법적인 요건에 의해서 성인의 권리를 획득하지 못하고, 관습의 힘에 의해 어른이 되거나 아이가 된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문제라는 사실을 국가가 알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이고, 많은 이들이 나처럼 분노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군당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혹은 성가시게 생각하는 것)은 부모다. 왜냐하면 부모는 민원을 제기할 수 있지만, 병사들은 그럴 수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저런 식의 발상이 가능하게 된다. 내가 한명의 시민으로서, 성인 남성에게 국방을 위한 군복무의 의무를 규정한 법률에 복종해서 군대에 입대했다면, 국가는 한시적으로 내게 이런저런 명령할 권리를 가지지만, 그 명령은 국방의 목적에 관련된 것에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영어몰입교육 따위는 의무사항이 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구별이 귀찮다. 그래서 한 국가의 시민된 처지로서 권리와 의무가 있기 때문에 군대에 끌려간 것인데, 그들은 마치 '부모'로부터 나를 양도받은 양 취급한다. 그런 식으로 구성원을 아이 취급한다. 한국의 많은 경영자들이 (요새는 종신고용도 안 해주는 주제에) 노동자들을 그런 식으로 아이 취급하고, 특히 이랜드 같은 경우엔 자기네들이 교회장로인 것처럼 취급하지 않던가? 이강백씩의 주장은 정책목표의 오류나 비현실성의 문제를 넘어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분명히 극복되어야 할 어떤 몰상식에 기대고 있다. 요즈음에 와서 군대가 한국 사회에서 특출나게 인권이 말살당하는 공간이라는 생각까진 들지 않지만, 여전히 그곳의 경험을 통해 우리들의 인권감수성의 수준을 낮추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한 것 같다.


myvanillaicecream

2008.02.08 00:14:23
*.39.210.221

영어를 자꾸 다른 거랑 묶네요.... 영어를 왜 자꾸 의무로 묶는건지. ;ㅁ;

hyun

2008.02.08 00:31:16
*.99.81.195

너무 웃다가 좀 전에 먹은 도나쓰가 도로 올라올려고...,
'부모님께 사랑을 받을려면...' 이거 뭐 쓰러지겠습니다.

노지아

2008.02.08 00:34:07
*.88.222.94

난 저 글이 대단히 sarcastic하다고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이강백이 누군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저 글 하나만 놓고 본다면 말이지.

하뉴녕

2008.02.08 00:36:19
*.180.10.168

지난번 글에서 이어지는 얘기라는데 설마 패러디일까?

그나저나 인수위에서도(?) 군대의 영어교육 확대를 추진한다는 얘기가 어디선가 돌더군...

노지아

2008.02.08 00:40:08
*.88.222.94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라면 더 웃긴거 아냐? 인수위 얘기에 끄덕끄덕할 사람들도 저 얘기 들으면.. ㅋㅋ (특히 남자들 말이지)

하뉴녕

2008.02.08 00:40:16
*.180.10.168

농담이라면 인수위의 논법을 그대로 베껴다쓰는 센스가 있어야 했는데, 자기 딴에는 진지하게 얘기를 풀고 있잖아. 피터 드러커까지 들이밀면서. 서로의 상식이 상대방에겐 풍자로 받아들여질 정도라니...쩝

노지아

2008.02.08 00:43:21
*.88.222.94

가끔 전혀 의도치 않고도 존재 자체가 풍자가 되는 경우가 있잖나. 여튼, 재밌다고 생각해.

노지아

2008.02.08 00:46:04
*.88.222.94

그리고 인수위야 그런 정책을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돌면 그 다음날 아니라고 할텐데 뭐. ㅋㅋ

노정태

2008.02.08 00:50:36
*.178.27.184

이 칼럼을 처음 읽었을 때 정신이 아득했던 건, 한국 사회의 주류거나 주류가 아니어도 뭔가 의견을 제시할만한 입지를 지닌 사람들의 마인드가, 아직도 '미군 뽀이'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모습을 너무도 처절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었지. 이 칼럼은 결국 '나는 미군부대의 일원이고 싶다'는 무의식을 보여주고 있거든. 지난번에 술 마실 때도 이렇게까지 명확하지는 않았는데, 네가 나머지 논점을 정리하고 나니 확실히 보이는구나. 인수위에 대한 비판과 이강백의 이 칼럼에 대한 비판을 혼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같고.

말하자면 '기지촌 문학' 같은 레토릭의 대상이 그냥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 음, 이 주제에 대해서는 따로 탐색을 해 볼 필요가 있겠어. 여기까지 생각하니 한국의 문학비평에 대한 나의 반감에 대해서도 잠시 회고 내지는 반성적 고찰을 하게 되는데, 그쯤 되면 정말이지 리플에 쓸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하뉴녕

2008.02.08 00:55:59
*.180.10.168

오호, 그거 흥미롭다. ^^;; 나머지 모든 가지를 쳐냄으로써 나도 나름대로 기여를 한 셈이군. ㅋㅋ

intherye

2008.02.08 01:08:20
*.49.21.77

경향신문 기자분들부터 영어몰입기사를 쓰시라 그러고 싶어요. 솔선수범하는 뜻으로 저 기사부터...

한국은 자국 군대를 무슨 제주도 똥돼지쯤으로 아는 것 같아요.

하뉴녕

2008.02.08 08:37:20
*.180.10.168

외부기고일텐데 그렇게까지는...^^;;

이상한 모자

2008.02.08 14:48:15
*.147.155.23

난 이거 우스갯소린줄 알았는데?

생태도시

2008.02.08 16:54:29
*.15.72.159

신문에서 저 양반 글을 그간 보아왔습니다. 아름다운가게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는 점과 읽기에 거부감이 없는 글들이라 나름 괜찮게 읽었었죠. 그런데 군대서 영어교육..이 글은 굉장히 황당하더군요. 이 양반 인생 헛살았구나...아름다운가게만 아름답구나...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EnJI

2008.02.08 22:14:59
*.49.36.157

이상하네요, 며칠전에 블로그에 씨부렁거린 글이 저 얘기였는데, 댓글도 안달리고 쪽팔려서 며칠 뒤에 자삭했지만... 지면에도 그런 쓰레기 글이 올라오는군요. 쿨럭.

N.

2008.02.09 03:41:19
*.88.222.94

애써 진지한 척하면서 쓴 농담으로 알아먹고 뒤집어지게 웃었는데요. 군대도 까면서 인수위도 깐다, 일타쌍피 아닙니까? 설사 글쓴이가 진담으로 쓴 거라 해도, 절대적으로 진지한 척하는 농담으로 대꾸해야 하는 글 아닌가요?

잡아요괴

2008.03.04 14:03:41
*.189.187.73

처리작업이 어려울 수록 뇌는 더 빨리 굴러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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