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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디스토피아 소설 다시 읽기

조회 수 3625 추천 수 0 2010.08.28 14:27:15

어릴 적 TV에 종종 방영된 20세기 미국 만화에서 꿈꾼 21세기 사회는 우리가 버튼만 누르면 기계장치가 나타나 모든 일을 다 대행해주는, 사람은 손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는 사회였다. 오늘날엔 가까운 미래에 그런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것은 기계장치가 아무리 발달해도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의 편리한 생활을 위해 허드렛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생계를 위해 몸을 많이 움직일 필요가 없는 부유층이 다이어트를 위해 비생산적인 일에 몸을 움직이며 칼로리를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덧 복부 비만은 ‘부유함의 상징’에서 ‘자기관리의 미숙함을 보여주는 징표’로 변모했다. 사람들은 기계장치 안에서 쉬는 게 아니라,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기계장치 위에서 뜀박질을 하고 있다.


20세기에 생각했던 21세기의 유토피아와 현실과 거리가 있다면, 20세기에 우려했던 21세기의 디스토피아 역시 현실과 사뭇 다르다. 우리는 어쩌면 여기에서 ‘시대’를 읽어낼 수 있을 거다. 대표적으로 나는 <멋진 신세계>라는 SF소설을 떠올린다. 이 소설은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시대, 전체주의 국가가 개인의 삶을 통제하고, 체제 안정을 위해 인간이 예술작품 같은 것을 즐기며 인격성숙을 즐길 기회를 박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체제는 개인을 ‘배부른 돼지’로 길들이기 위해 ‘고통’을 없애는 신경안정제를 개인에게 주사한다. 우리가 디스토피아를 생각하면 흔히 떠올리는 저 유명한 ‘소마’가 그것이다.


뒤집어 보면 이 소설에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국가가 개인의 삶을 직접 관리하지 않는다면, 개인들의 창의성은 다양한 삶을 찾아 나갈 거라는 것, 국가가 통제하지만 않는다면 인류의 위대한 예술작품들은 개인의 감수성을 고양시킬 거라는 것, 그리고 ‘고통’이 관리되지 않는다면 체제의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을 거라는 것 등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멋진 신세계>의 국가는 소마를 모든 이에게 무상으로 공급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자들은 미치지 않기 위한 치료제를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한다. 술·담배, 쇼핑몰이나 놀이공원, 헬스클럽이나 피트니스 센터, 의료서비스 등 정신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은 ‘돈’이 없으면 얻을 수 없다. 체제는 우리를 착취하기 위해 ‘고통’을 관리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체제는, 더 많은 ‘고통’을 사회에 전가하면 사회구성원들이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눈을 팔 시간이 사라진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사람들은 창의성이나 다양한 방식의 삶과 같은 것을 고민할 시간이 없다. 국가가 <멋진 신세계>처럼 셰익스피어의 문학작품을 금지하지 않아도 문화예술을 즐길 겨를이 없다.


우리는 ‘소마’를 구하기 위한 ‘일’을 하기에 급급하니까 말이다. 재개발 광풍에 거주민이 희생되어도 국가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은 ‘뺏기는 자’가 아니라 ‘뺏는 자’가 되기 위해 또 일한다. 이런 세태 역시 체제의 산물이겠으나, 이는 국가권력만을 규탄하면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고 믿는다. 체제는 폭력적으로 현시하지 않고 사람들의 욕망 뒤에 아련하게 숨어 있다.


어린 시절 읽었던 디스토피아 소설들을 종종 떠올리면, 나는 그 소설들을 다시 펼쳐보고 싶지 않다. 그 소설에 나오는 디스토피아가 지금 사회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의 전망이 없는 ‘현재 그 자체’만 존재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파도

2010.08.28 22:29:11
*.41.254.50

음 좋은 글입니다.. 2010년 대한민국은 디스토피아에 가깝겠죠 ㅜㅜ 그런 의미에서 비행기 모는 진중권은 위너~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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