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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평준화 교육, 평준화 교육...

조회 수 1172 추천 수 0 2002.01.17 03:08:00

잠깐 학원강사로 일했던 경험이 드러나 있다. 이 글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니, 그땐 지금처럼 자뻑이 심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안티조선 우리모두에 이가엘로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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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없는 새끼들


학원의 아이들은 언제나 날 많이 생각하게 만든다. 비교적 비슷한 나이 또래라 공통관심사를 가지고 같은 문화를 향유하지만, 해석하는 방식은 누구나 다 그렇듯이 같을 수 없다. 한번은 [가을동화]의 스토리가 일본 연애 시뮤레이션 게임의 완벽한 표절이더라는 얘기를 해줬더니 "재미있으면 되지 뭘 그러느냐"는 식으로 반문을 하여 날 할말 없게 만들게 하기도 했다. 그네들의 말에 의하면, "게임이 스토리를 가지려 하는게 잘못이지, 가을 동화는 잘못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실제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우린 같은 편이에여~"라는 느낌을 주는 걸 대단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특히나 중고교 학생들에게는 빚진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고등학교 3학년만 되어도 "우린 곧 졸업할테니까, 두발자유화가 되면 억울하다."고 말하고, 대학만 들어가면 "중고등학교 때 고생하는 것은 인생의 다음 시기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라고 말하게 되는 상황. 왜 중고교 학생들 운동에는 Old Boy들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까? 대학 내에서 운동한다는 운동권들은 왜 고교생들이 두발자유화 반대 침묵시위를 할 때 지지 시위 하나 안 해주는 걸까?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한번도 듣지 못했다. 사실 꼭 운동권만이 아니더라도, 대학생들이 그들과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 것도 꽤 슬픈 일이다.)

여하튼 학생들은 그날 바로 전날 TV에 나온 [민족사관고등학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생각난다. 그 학교는 내가 중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만들어졌다. 이튼 스쿨 같은 공짜 엘리트 교육, 한복을 교복으로, 판소리를 교가로, 그러나 수업은 영어로, 드넓은 부지 위에서 골프와 승마를 즐길 수 있는 학교 시설. 원래 전국에서 30명 씩 뽑아갈려고 했었으나, 공사착공자인 파스퇴르가 망한 이후에는 인원이 더 불어나고, 대단히 비싼 등록금을 받게 된 학교.

아이들은 그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사는 소수의 삶을 얘기하고 있었다. 취침점호와 기상시간, 수업시간 엄수 (조금이라도 지각하면 전통의 회초리로 엄청 두들겨 맞는댄다.), 모의 법정을 통한 체벌 (이 체벌에는 반드시 육체적인 폭력이 포함되는 모양이다.), 일주일에 30분 허용되는 면회시간...이곳의 학생들은 취침시간이 지나면 복도등 밖에 안켜지는 학교 규정 때문에 책을 못다 읽으면 복도로 나와서 책을 읽고, 수면시간이 부족해 하루종일 꾸벅꾸벅 조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보통 영어에 대단히 능통한 이들은 대다수가 미국의 명문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아이들에게 "재수 없는 새끼들"이 될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가끔 그들을 동정하면서도 그들을 비난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혐오감의 표적은 학교설립자들을 향해 있었다. 물론 [민족사관]이란 촌스런 명칭을 택한 학교 답게 돈많은 자식을 굴리면서 애국심을 가르치고, 대한민극에서는 눈에 불을 켜도 찾아볼 수 없는 "오블리스 노블리제" (이건 사실 대단한 건 아닌데, 우리나라엔 '심지어 이것도 없다'는 사실을 문제 삼아야 한다.) 를 가르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치열한 경쟁의 산물인 그곳의 아이들이 과연 그것을 체감으로 느낄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느끼더라도 4천억을 삥땅해 대북사업 등 공익에 부합하는 사업에 쓰려고 했다는 노태우의 애국심 이상의 것을 가질 판단능력을 기를 수 있을까?

이 모든 우려를 무시한다 치더라도, 대한민국에 당장 돈들여 만들어야 하는 학교는 "전근대적인 인간관계를 답습하는 한계를 그대로 가진 한국의 이튼스쿨"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 잘못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을 "개새끼들"이라고 칭하지는 않을 테지만, 감정적인 반감 정도는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있을 것이다.


단 두가지의 길


민족사관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동안 원경고등학교의 아이들은 몽둥이를 들고 학교 유리창을 두들겨 부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어느 대안학교의 이야기를 담은 [교실이데아] (최병화, 예담, 2000)은 대단히 아름다운 책이다. 학교에서 한두번씩은 짤려본 아이들과, 진짜 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학교에 자원한 젊은 교사들이 겪는 트러블은 자퇴를 열망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물 한방울 쯤 바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과는 상관없이 우리가 씁쓸함을 느껴야 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사립학교가 지향할 수 있는 딱 두가지 길이다. 하나는 [민족사관고], 그리고 하나는 [원경고].

[과학고등학교]와 [외국어고등학교]는 이유야 어찌됐건 민족사관고를 지향하는 학교가 되어버렸다. 허다한 예술계통 고등학교들의 의의는 원경고갈 학생들보다 약간 양호한 학생들을 "수용"하는 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민족사관고등학교에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 물론 원경고등학교에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 그건 나도 안다. 그런데,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 대한민국에는 이 두가지 부류의 사립학교만이 존재해야 하는가. 개개의 것들에겐 잘못이 없다지만 전체적인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책임을 평준화 교육에 돌린다. 그것은 심지어 내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올해 [대원외국어고등학교]의 경쟁률은 무려 9.3대 1에 이르는데, 그것은 분당지역의 고등학교들을 평준화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평준화가 나라를 망친다고 떠드는 김대중 주필의 논리도 이 기초적인 "사실"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에서 세계관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인과관계는 명확해야 한다. 평준화 교육 때문에 우리의 교육이 "민족사관고"와 "원경고"라는 두 가지 길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평준화를 무너뜨린다면 그 두가지 길의 사이에는 수많은 지류가 형성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층층의 서열화의 기준은 단 하나 - 두말할 필요없이 성적 - 으로 귀결될 것이다. 한가지 기준을 가진다는 점에서는 지금과 동일하다. 그러나 살인적인 경쟁을 부추기며, 변화의 여지를 봉쇄시킨 다는 점에서는 최악이다. 고등학교에서 부터 계급이 결정된다면, 그 계급을 결정하기 위해 중학교 교육은 다시금 황폐화의 길을 걸어야 한다. 대한민국 학생들은 평생 주입식 교육을 받아야 한다. 왜? 바쁘니까! 그리고 평생 단 한번도 학문을 하지 못한다. 단 한번도.


"경쟁논리" 쓰레기통에 버리기


따라서 두 가지의 길은 사실 한 가지의 길이며, 비평준화 정책이 가져오는 여러 개의 길도 사실 한 가지의 길일 뿐이다. 그 길이란, 수 년간의 비생산적인 게임으로 사람의 계급을 판정하는 방식이다. 대학시절까지 배운 것의 60%를 까먹는게 사람이라면, (이건 미국 통계인데, 아마 우리나란 커리큘럼이 후져서 훨씬 더 많이 까먹지 싶다.) 남는 것은 지식을 추구하는 방법,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일 것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은 단지 그 방법을 연습시키기 위해 나오는 예시물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에서 그 "방법론"은 보이지 않는다. 당장 대학을 보내기 위해 속성암기를 시켜야 하는 중등교육은 물론이거니와, "고생한" 아이들을 데려와서 강도높게 가르칠 사정이 못되는 대학교육도 마찬가지다. 체제는 방법론을 내쳐버렸고, 진정으로 교육을 원하는 교사들의 자발적이고 개인적인 "실험"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만 제한된 범위내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그리고 고교 비평준화는 그러한 "실험"마저도 설 땅을 없애버리는, 비생산적 게임의 촉매일 뿐이다.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의 그것과 같은 경쟁논리를 격파할 수 있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경쟁논리 자체의 천박성에 대한 논박이다. 사회가 애초부터 무한경쟁의 정글로 이루어져 있다는 인식은 세계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한국적인 특수성일 뿐이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면서 지정된 숫자의 사람을 모아 집단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을 배제시켜버리는 짝짓기 게임. 독일에서 한인 교포 아이들에게 이 게임을 시켜보았더니 멀뚱멀뚱 서서 "다 같은 친구인데 누굴 택하고 누굴 버려요..."라고 울먹이더라는 얘기. (아마 진중권 님의 경험이었지 싶다.) 사회의 구성이 무한경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독일은 다행히 우리처럼 전쟁으로 한번 폐허가 되어 본 나라이다. (물론 이 사실은 경제학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지만, '아시아 한자문화권 중에서 사실 한국이 제일 못 산다.'는 말에, '우리는 6.25 이후 세계 5대빈국 수준에서 여기까지 올라왔다.'고 동문서답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경쟁논리의 격파는 이런 충격에서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더 중요한 논증은 경쟁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우리의 경쟁"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는 것이라야 한다.

"지식 외우기 게임"은 여러 사람의 믿음과는 달리 대단히 비효율적 이다는 사실. 그 게임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중고교 부문 세계 경시대회에서 수위를 얻는 것, 그 게임으로 잃는 일은 대학학문 수준의 후진국화라는 아주 기초적인 사실. (청소년 게임 수위 차지하려고 월드컵 대표팀을 망가뜨리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경쟁의 "룰"은 유감스럽지만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는 그 사실.

그리고 경쟁이 진정 "효율성"을 가지려면, 우리가 사는 모습이 하나일 수 없듯이 수많은 다른 목표를 위한 다른 룰의 경쟁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이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한 단 한가지 룰에 입각한 우리의 경쟁이라는 것은, 기실 경쟁이 아니라 사회독점계급을 생산해내고 정당화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바로 그 사실.

이러한 사실을 말할 때에 경쟁논리는 어디서도 설땅을 얻지 못하고 사라져 갈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알기 전에는 "평준화 교육"이라는 억압이 언제나 모든 사람을 짓눌려야 한다. 평준화 교육, 평준화 교육, 평준화 교육, 평준화 교육....지겹도록 지겹도록 베갯머리에서 부터 되뇌어주어야 한다. 물론 평준화 교육은 필연적으로 획일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에서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그러나 자율화가 여러기준의 잣대를 가진 고등학교의 등장을 가져올 수 없는 상황에서 평준화 고교의 획일화는 현재로선 필요악일 것이다. 학교 공부를 잘한다는 것 역시 다른 모든 재능과 똑같은 하나의 재능으로만 생각하는 시대가 오기 전에는, 우리는 우열반과 같은 -명칭은 좀 바꾸면 안될까?- 대단히 실용적인 교육방침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도 학생들이 입을 상처를 고려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평준화 교육의 지지와, 그것이 지나친 획일화를 가져오지 않는 한에서의 조심스런 적용. 아마도 그것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것을 넘어서는 일은 학벌구조의 해체를 위한 진지한 고민이다.

이가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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