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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보노보 혁명 - 6점
유병선 지음/부키


<보노보 혁명>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이야기다. 사회적 기업은 영리성을 따지는 '기업'이지만, 이윤추구를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선을 추구한다. 이 책에 소개된 어떤 기업은 이윤의 일부분을 기부하는 방식을 취하지만 또 다른 많은 기업들은 영업활동 자체가 공공선과 관련되어 있다. 저자 스스로 생태계라는 낱말을 쓰고 있기 때문에 생물학과 포개 보자면, 이윤추구를 극대화하는 대부분의 기업은 유전자의 끝없는 증식이 생명의 목적이라고 본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닮았고, 손실이 나지 않는 수준에서 사회적 활동을 하려는 '보노보 혁명'의 기업들은 생명이 보존되기만 한다면 그 다음 수순에서는 일종의 자율성이 가능하다고 했던 마투라나의 <앎의 나무>를 닮았다.


그런데 이들을 하나의 생명체로, 그리고 어떤 시장을 생태계로 비유한다면, 도대체 이들이 어떤 조건에서 탄생했는지를 파악하고 그 조건을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혹은 현저하게 다른 조건에서 우리에게 가능한 사회적 기업은 무엇일지에 대해 논의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런 식의 분석은 나오지 않는다. 사회적 기업이란 것 자체가 요즈음에 와서야 소개되는 국면이다 보니, 저자로서는 굳이 비관적인 얘기를 하고 싶지 않은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의 어떤 사례와 한국의 어떤 사례의 차이가 혁신적인 사회적 기업가의 있고 없음의 차이라는 식의 서술은,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회적 기업의 모형을 이윤이 나오는 방식에 따라 몇 가지로 나눠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선 금액을 받아 사회적 활동을 하며 생존하는 기업들이 있다. 빈곤층에 대한 교육이나, 공교육 현장에서 사라진 음악교육을 하는 기업, 그리고 세계의 오지에 도서관을 세우는 기업이 그 예일 텐데 그들은 이러한 공익적 활동을 수치화하여 자선가들에게 제시함으로서 자선을 유도한다. 자선가들로서는 자신의 자선이 유용한 곳에 쓰여졌다는 확신이 생겨서 좋고, 사회적 기업의 입장에서는 기업의 형태를 취함으로서 적은 금액으로 효과적인 사회활동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다. 말하자면 기업 활동을 통한 자선 자원의 효율적인 분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에 '시장'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물론 훌륭한 일이다.


둘째, 이 책에선 그 사례가 별로 나오지 않지만 유럽의 경우 복지제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복지 내용을 기업에 아웃소싱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기업이 발달하고 있다고 한다. 이 경우 그들은 국가의 세금을 지원받게 된다.


셋째, 이윤극대화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다른 이의 지원 없이도 기업이 유지가 되는 사회적 기업이 있다. 이런 기업의 경우 영업활동 자체가 사회적 활동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나뉜다. 후자의 경우 이율이 낮은 대신 그만큼의 차액을 복지단체에 기부하는 형태의 증권이 있다. (재미있는 일이지만, 이들은 이율이 낮은 사회단체에 분산투자했기 때문에 서브프라임 사태 때에도 오히려 원금을 지켰다고 한다.) 전자의 경우 테크놀러지에 대해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접근하여 주로 제3세계 주민들에게 유용한 공산품을 값싸게 공급하면서도 이윤을 남긴 기업들의 사례가 나온다. 수많은 기업들이 이윤극대화를 추구하지만 또 그중 많은 기업이 이윤을 남기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들의 사례야말로 가장 놀랍고, 시장의 활용가능성이 생각보다 넓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구별해 볼 때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기업이 가능하기나 한 일 일까, 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기업들은 미국의 기업들만큼 자선을 열심히 해야할 이유가 없다. 기업의 숫자가 매우 적고, 재벌중심적인 구조가 강하기 때문에, 재벌들은 기업 이미지 재고를 할 필요없이 "만일 내가 망한다면 국가 경제가 어떻게 될 지 생각해봐."라고 말하게 된다. 중견기업들은 대개 재벌에 대한 하청기업들로, 그들은 국민에 대한 기업이미지 재고보다는 거래하는 재벌 기업에 대한 이미지 재고가 더 절실하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서 자선이란 재벌 그룹의 탈법행위에 대한 세무조사가 이루어질 때나 발생하는 이벤트다. 수틀리면 단체로 특정 언론사에 광고도 주지 않는 이들이니 오죽할까? 한겨레, 시사in, 프레시안 등이 당하는 고난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자신이 얼마나 효율적인 사회적 활동을 했는지를 강변하면서 기부금을 모아 하나의 기업을 유지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서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우리 사회의 복지제도가 유럽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건 말하기도 전에 뻔한 일. 셋째 부류는 매우 소중하긴 한데, 주로 제3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기업이 많으니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당장의 해당 사항은 없다. 따져보면 따져볼수록 우리 사회의 보노보들은 기를 펼 수 있는 환경에 처해 있지 않다.


이런 실정에서 2007년부터 정부에서 사회적 기업에 관한 법령을 제정하고 있다고 한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사회적 기업으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국가로서는 고용효과와 복지를 고려하고 있고, 시민단체들은 거의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준비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움직임이 지지부진한 상태이지만 지원이 시작되더라도 그 법령의 시한이 5년이라 하는데, 과연 5년 후에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회적 기업, 아니 시민단체가 있을까? jiva 님은 오히려 시민단체들이 단체로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데, 그 우려는 타당한 듯 싶다. 정부 주도의 경기부양책처럼 진행되는 사회적 기업의 미래가 밝아 보이지는 않는 이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가능한 사회적 기업이 어떤 것이 있을지에 대해선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가령 프리랜서 노조에 대한 사례에서처럼, 발상을 바꾸면 우리 사회에서도 실행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생태계는 보노보의 무리가 출현하기엔 알맞지 않지만, 조심스럽게 한 두 마리의 보노보를 지속적으로 키워내는 일은 언제나 소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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