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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진보누리의 아흐리만씨가 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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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에서 비례대표 여성 50% 이상 할당을 결정했다는 사실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진보적 가치를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천은 어렵다. 나는 "노동당과 개혁당 -근대와 탈근대"라는 글에서 개혁당이 현실과 마찰을 겪으며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점잖은 얘기를 일상언어로 바꾸면, "한번 해봐. 그게 그렇게 쉬운 줄 아니?"가 될 것이다.

이번 의결이 민주노동당이 한국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정당임을 입증하는 상징적인 사건임을 일단 인정하면서, 이 결단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 적어보고자 한다. 사실 이번 결정이 문제가 될 소지는 거의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이런 식의 문제제기가 기타 사안에 있어서는 민주노동당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비례대표 여성 50% 할당제가 최선의 대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최선은, 40% 정도의 할당제를 제도적으로 마련하고, 당 지도부가 "그러나 실제 선정은 50% 이상으로 할 것이다."고 "결의"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보는 제도뿐만 아니라 성숙도 고려하는 것이다. 50% 여성 할당제는 진보이지만, 제도의 기계적인 적용은 개인의 성숙을 가로막는 방패로 작용할 수 있다. 즉, 원칙적으로 말하면 할당제가 없어도 여성을 뽑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 제도의 목적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할당제가 50% 수준이 되면 그 이상의 여성을 뽑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제도 안에서 기계적으로, 남성 반 여성 반을 뽑는 행태가 일반화될 것이다. 이것은 제도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김영민이 말하는 "합리 이후의 소박"이며, 민주노동당이 고려하고 흡수해야 할 탈근대적 기질이라고 생각한다. 근대가 전근대보다 우월한 것은 분명하다. 나는 여성할당제라는 제도의 의의와 필요성에 대해 단 1%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다만 김영민의 수사법으로 말하면, "제도와 함께 제도를 넘어가는" 양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을 뽑기 위한 제도는, 아무 요건이 없어도 능력에 따라 여성을 뽑는 인사권자를 생산해내는 것을 욕망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내가 위에서 주장한 "40% 할당제도, 50% 인사결의"는 그러한 제도의 원래 목적을 충분히 고려하는, 제도를 넘어선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여성할당제가 민주노동당의 진보성을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민주노동당이 가장 여성적인 정당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유념하기 바란다. 그것 역시 "제도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관념의 폐해일 것이다. 지금에 와서 굳이 개혁당과 민주노동당을 비교한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지만, 초창기에 개혁당에 입당한 여성들이 "민주노동당은 남성적이다."라고 말한 것을 상기하기 바란다. 나는 이에 대해 "개혁당 들어간 여성들은 살만한 여성들이다."라고 비판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성할당제 있는 민주노동당이 가장 여성적이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역시 문제의 본질을 비켜간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여성성을 수용할 수 있는 문화가 민주노동당 안에 얼마나 있느냐는 것이다.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민주노동당 내의 여성들은 남성화된 여성, 혹은 원래부터 남성문화에 잘 적응하는 여성들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민주노동당이 그것을 넘어 여성들의 말하기를 수용할 수 있다면, 제도뿐만이 아니라 문화로서도 명실상부한 "여성적인 정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제도는 모든 것을 담보해 주지 않는다. 복지제도 역시 그런 맥락에서 사고할 필요가 있다. 나는 구미선진국의 복지제도, 그리고 그것을 주장하는 좌파는, 선진국이 굶어죽는 사람들에 대해 인륜적인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일종의 알리바이가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복지가 무조건 선은 아닌 것이다. J. S. 밀은 복지제도가 "스스로 생활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이는 보수주의자들의 주된 주장이 되어왔다. 이것은 우리 귀에는 야박하게 들리지만, 약자에 대한 복지가 약자들을 대대손손 약자로 만든다는 주장은 한번쯤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보수주의자의 비판을 넘어서는 길은, 제도를 통해 제도 이후로 가는 것이다. 덧셈과 뺄샘의 대립에서, 곱셈으로 진화하자는 것이다. 새 시대의 진보가 가능하다면 그 길에 있지 않을까?

개혁당에 대해 탈근대를 말한 내 태도 역시 이와 연결시켜 생각해주기 바란다. 나는 당시로서도 개혁당이 실지로 탈근대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은 요원하다고 봤다. 그러나 개혁당이 대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가치가 탈근대적 가치라면, 민주노동당이 해야할 일은 "개혁당은 민주당의 위성정당"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대변하려고 하는 지점의 긍정성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비판의 근거로 개혁당의 향후 진로와 같은, "의도"를 추론하는 형식의 "심리주의"를 결합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개혁당에 대한 비판은 개혁당의 현재 행동에 대한 비판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개혁당을 둘러싼 여러 잡음을 보면, 이제는 민주노동당이 개혁당에 신경쓰지 않고 스스로의 진보에만 신경쓸만한 정당성이 충분히 갖추어진 듯 하다. 앞으로는 탈근대를 말하면서 오직 민주노동당만을 언급하도록 하겠다.

다시 한번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50% 여성할당제 결정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발전을 희망한다. 가능하다면 민주노동당의 앞으로의 지향에 제도와 성숙을 동시에 고민하는 나같은 사람의 문제제기도 일부 수용되었으면 좋겠다. 이 부분에 대해 끊임없이 발언하는 것이 진보누리에서의 내 역할인 것 같다.  

아흐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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