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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언어게임>과 <재서술>

조회 수 855 추천 수 0 2003.02.20 02:49:00
지금 다시보면 뭐 이런 글까지 인터넷에 올리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공부도 별로 안 하는 주제에 인문학도라고 티내는 것도 아니고. 그때도 이런 글을 사람들이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하여간 그때는 인터넷 정치토론 사이트에 이런 글을 올려도 될 거라고 착각할 정도의 분위기는 있었다. 물론 진보누리에 아흐리만으로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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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인식하는 데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분석>이고, 하나는 <직관>이다. <분석>은 칼로 잘라내면서 답이 있는 곳을 좁혀가는 방법이다. 반면 <직관>은 답과 통째로 교신하는 방법이다.

논쟁/담론 중심적인 사이트에서 대개 볼 수 있는 것은 <분석>들의 충돌일 것이다. 나는 <분석>이란 방법이, 무시할 수 없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언어게임>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점을 보안하기 위한 대안으로 <재서술>이란 방법을 제시할 생각이다. 나는 특정한 견해를 논박하기 위해 이 글을 쓰지는 않겠지만, 논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특정한 사례를 제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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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은 자르는 것이다. 잘라서 구역을 정하고, 구역에 <이름>을 붙인다. 그러면 <이름>은 이름에 걸맞는 <속성>을 부여받게 된다. 한나라당 민주당을 <보수정당>으로 이름붙이고, 민주노동당 사회당을 <진보정당>으로 이름붙이면, 이 정당들의 특징이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란 이름에 걸맞는 <속성>으로 설명된다.

이 경우 우리는 <자르기>와 <이름붙이기>가 편리를 위한 행동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나라당 민주당을 <보수정당>이라 부르고, 민주노동당 사회당을 <진보정당>이라고 부를 경우 설명하기 쉬운 현상들이 있다. 그러나 그 현상은 전체를 대변하지 못한다. <이름>은 다음 분석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이름 이전의 상태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즉, <보수정당>에서 결론을 이끌어내지 말고, <민주당>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라는 것이다. <진보정당>에서 결론을 이끌어내지 말고, <민주노동당>에서 이끌어내라는 것이다.

나 역시 한나라당 민주당을 보수정당으로, 민주노동당 사회당을 진보정당으로 칭한 바 있다. 그러나 여기서 곧바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를 인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나오지는 않는다. 이름은 그저 이름일 뿐이다. <보수정당> vs <진보정당>의 조합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나타나면, 우리는 과감하게 그 <이름>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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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강준만과 안티조선 운동에 이르러 우리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극우 헤게모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극우정당>과 <보수정당>으로 구분된다. 이것 역시 이 <이름>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이 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 역시 모든 것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은 <극우정당>과 <보수정당>이란 이름을 지극히 신뢰한 나머지, "극우를 먼저 배격하는게 민주주의다."라는 진리에 가까운 문장에 <이름>을 조합하여, 비판적 지지 내지는 권영길 사퇴론을 결론으로 이끌어내게 된다. 현실이 결론을 도출하는게 아니라, <이름>이 결론을 도출한다. 이것은 <언어게임>에 불과하다. 그러나 분석하는 이들은 언어게임에 사로잡히기 쉽다.

현실을 말하자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동열에 놓고 비판해야 할 층위도 있는 것이며,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조금 구별해서 비판해야 할 층위도 있는 것이다. 섬세하지 못한 <이름>은 이런 현실을 배반하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다. <언어게임>에 갇히는 것이다. 나 역시 민주당을 <보수정당>으로, 한나라당을 <극우정당>으로 칭한적이 있지만, 그것이 이름 그대로를 의미하지 않았다. 만약 이름 그대로를 의미했다면 나는 민주노동당원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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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분석하는 이들은 <언어게임>을 피할 수 있을까? <이름붙이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것은 현실을 파악하는데에 유용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존의 이름>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 있을 때마다, 과감히 그것을 버리고 <새이름>을 만들 수 있는 유연함과 용기다. 즉, <이름>은 끊임없이 <재서술> 될때만이 <죽은 이름>이 아닌 <살아 있는 이름>이 될 수 있다.

<보수정당>과 <극우정당>이란 이름이 민주당의 수구성을 은폐하는데 활용되기 시작하자, 나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극우 헤게모니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한나라당>
<극우 헤게모니를 방조하며 한축을 이루는 민주당>

즉, 서구의 잣대로 극우-보수를 가른다고 하면, 민주당 역시 <극우정당>이란 이름을 부여받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도 친절하게 표시했다. 그러나 이 이름 역시 완전한 것은 아니며, 물음표에 맞닥뜨리면 <재서술>의 방법을 취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을 잘라서 설명하는 <칼쟁이>들이 관념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 <이름>이 지니는 의미가 풍성해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다시 정의해야 한다. 이름은 정의의 결과물이 아니다. 정의가 끝나면 이름은 죽는다.

아흐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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