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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권영길이 노무현 당선 돕는다.

조회 수 990 추천 수 0 2002.12.17 02:24:00
2002년 대선정국에서, 진보누리에 '아흐리만'이란 아이디로 올린 글. 뭐 이런 식으로 선동을 하고 다녔다는 것. 아, 지은 죄가 많다. 날짜를 보니 대선 이틀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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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커밍아웃. 내게 이번 대선의 목표는 권영길 약진 / 노무현 당선이다. (이건 결과에 대한 목표이고, 담론에 대한 목표는 따로 있지만 그건 다른 글에서 언급하도록 하겠다.) 물론 민주노동당원인 내게 전자가 훨씬 중요하기는 하지만 후자 역시 큰 관심거리이다.


향후 2-30년을 계산한다면 이회창이 대통령된다 한들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노무현이 되는 길이 조금은 더 순탄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른바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이라면 한국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편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바래야 마땅하다고 본다. 그래서 당사에서 자원봉사하는 내 친구는 단일화 발표 당시, 민주노동당 당직자들도 노무현의 승리를 가슴졸이며 지켜보았다고 전한다. (물론 어디에나 소수파는 있었겠지만.)


따라서 권영길이 노무현에게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을, 노무현 지지자들에게 구걸하는 것이라고 바라볼 필요는 없다. 대세론에 편승하는 것이라고 볼 필요도 없다. 나는 그냥 "좋은 일"이니까, 알리고 싶어서 주장하는 것뿐이다. 멍청한 사람들에게 서로 싸우지 말라는 충고도 할겸.


권영길이 노무현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산술적이다. 한나라당은 극우정당이므로, 이회창 지지자는 극우성향의 사람들이다. 노무현과 권영길은 반극우 성향의 사람들의 표를 갈라먹는다. 고로 권영길이 성장하면 노무현은 쪼그라들고, 극우세력에게 패배하기 쉽다.


그러나 이 간단명료한 설명은 부당한 전제들을 남발하고 있다. 첫째, 한나라당은 극우헤게모니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정당이지만, 극우정당이라 볼 수는 없다. 이회창 지지자들도 극우성향의 사람들은 아니다. 여기엔 한나라당이 대변하는 수구기득권층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동원된 영남지역주의라는 허구적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 둘째, 노무현의 민주당 역시 간단히 "반극우"라고 부르기 힘들다. 민주당은 극우헤게모니 안에 얹혀있는 정당이며, 그것을 소극적으로 방조하는 정당이다. 민주당의 지지자들도 모두 개혁성향의 유권자는 아니다. (극우헤게모니가 현존하는 한국사회에서 반극우전선에 서려 한다면 필히 "개혁성향"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도 역시 뭐라 간단히 규정하기 힘든 호남지역주의가 포함돼있다. 민주당엔 상식세력이 얹혀 있는 것인데, 다행히 상식세력을 대변할만한 노무현이란 탁월한 정치가가 그 수장이 된 것뿐이다. 이렇게만 설명해봐도 권영길이 누구 표를 가져갈지는 상당히 애매해진다. 산수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낑낑대지 말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그럼 권영길이 노무현에게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첫째는 사회의 합리성이 증가되면서 상식세력이 이득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개혁과 수구의 전선이 형성되면, 수구는 개혁세력에게 온갖 마타도어를 행할 수 있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가 가치지향을 두고 논쟁하게 되면 수구는 아무 말 없이 찌그러질 뿐이다. 산수보다는 조금 복잡한 논리.  


권영길이 TV토론에 참여하면서 한나라당의 전략은 근본부터 어긋나버렸다. "부패정권심판론"은 "부패원조당, 부패신장개업당"이라는 권영길의 애드립에 치명상을 입었고, 노무현이 "신장개업에서 재미를 못 보았습니다. 앞으로 폐업하겠습니다."고 선언하는 순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그후의 공세는 그저 발악일 뿐이다. 이회창은 3차토론에서 아예 부패 문제는 꺼내지도 못했다.) "노무현이 후보가 되면, 보혁구도로 가면 된다. 그럼 필승이다."는 어떻게 됐는가? 권영길 앞에서 노무현은 안정감 있는 중도일 뿐이다. 권영길과 노무현이 개방문제, 경제특구법 문제로 대립하자 이회창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허허 웃는 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세간의 예상과 달리 노무현이 정몽준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봤다. 한나라당 애들 멍청한 건 역사의 축복이다.)  


선거공학으로 말하면, 권영길이 대선담론에 의미있는 요소로 부상하면서 노무현은 부동층을 공략하는데 막대한 이득을 봤다. 한나라당의 비이성적인 선동이 권영길의 정책퍼레이드에 일축당한 것이다. 물론 노무현은 대단히 훌륭한 토론자이며 이회창을 논리적으로 완벽히 격파할 수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겐 제3자의 선언이 훨씬 설득력 있다.


둘째는 권영길이 이회창의 표를 먹는다는 것이다. 여기엔 두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먹어야 한다"는 것이고, 하나는 "실제로 먹는다"는 것이다.


"먹어야 한다"는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극우헤게모니에 맞서는 상식세력의 외연을 넓히는데 힘쓰자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의 수구정당 지지자들은 수구가 아니라 지역주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잠재적인 보수정당/진보정당 지지표가 널려있다. 이 손쉬운 표밭을 두고 상대적으로 견고한 지지층끼리 표를 먹기 위해 싸우는 건 멍청한 짓이다. 이것은 노무현으로 합치자는 류의 파시즘적 동원의 논리가 아니다. 극우헤게모니 사회에서 진보진영이 할 수 있는 현명한 처신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이 "멍청한 짓"하는 사람들의 예는 많다. 쓸데없이 노무현 지지자들의 게시판에 들어가 "노무현은 진보가 아니다"는 하나마나한 얘기를 늘어놓는 민주노동당원들, 진중권이 적절히 말했듯 민주노동당 게시판에 들어와 표 "앵벌이"하는 노무현 지지자들, 그리고 민주노동당 안에서 "비판적지지" 논리를 유포하는 사람들... 일단 논리가 안 맞을뿐더러, 효과도 없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변희재 역시 월간 인물과 사상에서 권영길에게 "영남지역주의와 맞짱뜨라"고 주문한 바 있다. 그런데 권영길이 이회창 표를 먹기 시작하자 "수구세력의 표를 먹는 것은 한나라당 2중대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전제는 며칠 사이에 상식적인 것에서 부당한 것으로 변했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영남지역주의에 동원된 사람들"에서 문자 그대로 "수구세력"으로 변해버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그리고 나는 권영길이 양비론을 펼쳤다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쯧쯧...)


"실제로 먹는다"는 대선 결과가 현실적으로 증명해줄 것이다. 지금도 징후는 있다. 지지율 여론조사를 분석한 민주노동당 노회찬 사무총장의 발표에 의하면, 민주노동당이 얻은 표 중 노무현 지지층에게서 얻은 표보다 이회창 지지층에게서 얻은 표가 더 많다. 사실 이건 이번 대선의 구도를 가늠해본다면 여론조사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나올 수 있는 추론이다.


나는 이전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권영길표가 도대체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첫째로 부동층에서 옵니다. 둘째론 이회창을 선택한 부동층 성향의 지지자에게서 옵니다. 젊은이들 중에서 노무현 찍다 권영길로 돌아설 사람이 없진 않겠지만 그건 소수에 불과합니다. 노무현 지지자는 "노무현이 좋아서" 노무현을 찍는 사람과 "이회창이 싫어서" 찍는 사람이 반반입니다. 하지만 이회창 지지자는 "민주당이 싫어서" 찍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어느 쪽이 이탈표가 많겠습니까?//


하나 덧붙이면, 이회창 지지자의 "노무현 대통령 공포증"보다, 노무현 지지자의 "이회창 대통령 공포증"이 더 크다. 고로 권영길표는 부동층과 이회창 지지자에게서 나올 것이다. 내 주장은 이제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19일 대선결과가 나오면 정직하지 못하거나 멍청한 사람들을 도태시켜야 한다.


노무현이 당선되면 "권영길 변수"를 큰 이유 중의 하나로 포함시키는 분석이 각 일간지에 게재될 것이다. 정답을 알면, 추론을 끼워맞추기 쉽다. 그때엔 많은 사람들이 헛소리에 낭비한 정력을 아까워하게 될 것이다.

아흐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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