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옥석논쟁보론- "시민적 상식"의 의미

조회 수 1739 추천 수 0 2002.11.22 18:42:00
깨끗한손moonok.com에서 민주노동당 이문옥 서울시장 후보 선거운동을 하던 국면에 '아흐리만'이라는 아이디로 쓴 글인 것 같다. 그때 진중권과 강준만이 한참 아름답지 못한 논쟁을 했다. 이 시기의 나는 이런 식으로 진중권의 논의를 해설(?)하는 역할을 곧잘 하곤 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무슨 소리 하는지는 알겠는데 용어가 엄밀하지는 않다. 진중권은 말을 쉽게 하는 편인데 내가 그 해설이랍시고 말을 이렇게 꼬아서 했으니 인터넷에서 나 때문에 진중권을 더 잘 이해하게 된 사람이 많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는 공부를 한 다음 그 용어를 논쟁에 적용하는 경우보다는, 논쟁을 하다가 명쾌하게 설명이 안 되는 무언가에 답답해 하면서 책을 뒤적거리는 경우가 더 많은 종류의 인간이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글을 쓰다가, 점차 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 시절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 글이다.

-------------------------------------------------------------------------------------------

.
아무래도 용어는 글쓴이가 표현하려 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비판해야 할 것이다. 물론 자기 생각에 이 용어가 이런 의미에서 적당치 않다고 한다면, "그 의미는 이런 식으로 써야 한다"고 제안할 수도 있다고 본다.

진중권이 사용한 "시민적 상식"이란 용어에 대한 사람들의 비판은 이런 점에서 적절하지 않다. 자신들의 사회학 개념에서 용어를 도출하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민주의 비판은 큰 의미가 있는데, 애초에 좌파들의 용어맥락에서도 진중권의 원의를 독해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전에 옥석논쟁 당시 "진중권의 공적주장 지지자"라고 할만한 사람들은 몇 되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이다. 김민석보다 이문옥을 지지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결론"에 이른 "좌파"라 하더라도, 그 결론에 이르는 방식 자체가 진중권과는 틀리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은 대개 "강준만은 별 의미가 없고, 애초에 갈라섰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파악하고 있을 것이고, 그게 진중권과의 차이점이다.

(강준만과 그 공적지지자들의 기가막힌 헛발질이 무엇인가 하면, 좌파들에게 "제발 우리는 신경쓰지 말고 무시해 주세요!"라고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쓴소리 좀 듣기 싫어서, 평소엔 과격좌파 비판하던 분들이 과격좌파의 주장을 더 환영한다.)  

.
진중권이 사용한 "상식"이란 단어는 대충 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넘어 공유해야할 기본적인 가치들을 말한다. 일단 이 글에서는 이 용어의 적절성을 문제삼지 말고 뜻만을 계속 추적해 보자. 이 "상식"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한국사회에 이 "공유가치"의 성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잠시 안티조선이 탄생한 과정을 생각해 보자. 강준만은 처음에 자유주의자의 입장에서 조선일보의 극우성을 공격했다. 그러나 그 후 그는 차츰 진보적 지식인들이 조선일보에 기고하는 "모순"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즉 자신이 좌파들에게 충고할 "기준"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 기준은 무엇인가? 표면적으로 말하면 좌파들이 자신의 사상과 행동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일관성의 문제다. 그런데 그 일관성이 어디서 나오냐를 다시 생각해 보면, "좌파든 우파든 자유주의 입장에도 반하는 세력은 거부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 지점이 바로 강준만 자신과 좌파들이 통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본 부분이며, 공통가치이다. 그리고 이것은 현대 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대개 보편화된 개념이기도 하다.

김규항은 안티조선에 참여하면서도 강준만과는 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안티조선은 "자유주의자, 즉 우파들의 운동"이다. 따라서 좌파들은 "극우 헤게모니 사회를 약화시킨다."는 대의명분 때문에 잠시 우파들의 운동을 돕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전략적 우선 타격지점"이지 공유가치는 아니다. 안티조선은 자유주의자의 운동이고, 좌파는 잠시 도울 뿐이다.

진중권의 생각은 김규항과 달랐고, 강준만의 행동을 개념적으로 보강한 것이었다. 그는 현대사회가 "자유주의"의 일부분은 기본적으로 수용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좌파든 우파든 최소한의 자유주의를 확립시키기 위한 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 여기서도 공통가치가 드러난다. 그리고 진중권의 생각에, 좌파가 언제나 공통가치인 "상식"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국사회의 기본 수준을 반영하듯, 좌파와 우파는 각기 자기 진영에서 "몰상식"을 가지고 있었고 각 진영의 사람들은 그것을 몰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 지점에서 몰상식을 몰아내기 위한 좌우파의 연대는 가능해진다. 어떻게 말하면, "극우와 극좌를 배격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현대사회가 자유주의의 일부분은 기본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그의 생각은 이론의 여지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유란 인권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현대사회가 공유하는 것은 인권가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 경우에도 인권가치가 좌우파의 공유가치가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유가치의 존재다.)


.
일상생활에서 생각해봐도, 좌파와 우파라는 정치적인 지향점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대개 자기 생각에 보편타당하다는 기준에 맞춰 상대방을 비판한다. 이게 가능하지 않다면 민주노동당이 당수 1인 독재정당이 된다 하더라도 민주당 지지자들은 비판할 수 없게 된다. "니들은 우파잖아." 이건 폐쇄회로다. 그리고 실제 이런 회로가 존재하고 있었다. 강준만이 강단 좌파를 비판하자, 윤지관은 간단히 이렇게 반론한다. "강준만은 자유주의자다." 그래서? 강준만은 분명히 이게 반론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도 이게 허무개그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실 강준만이야말로 정치적 지향점과 무관한 상식의 영역을 넓히려고 노력하던 사람이다. 진중권에겐 이것이 "정치적 지향점과 상관없이" 그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게 한 계기가 된다. 진중권은 그 행동에 동의하고 있었고, 그 자신 역시 자신의 정치적 영역에서 그것을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그의 비판은 그런 측면에서 이해된다. 민주노동당이라고 해서 "상식"을 기본적으로 구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진중권이 "시민적 상식"을 내세울 경우 민주노동당 보다는 개혁국민정당 지지가 더 어울린다는 이민주의 지적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시민적 상식을 확립하는 작업은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권영길과 노무현은 둘다 상식 기준에 포섭되는데, 권영길이 자기 이념 취향에 더 가깝기 때문에 권영길을 찍는다는 진중권의 말은 그의 세계관에선 전혀 모순이 되지 않는다. 몰상식과 싸운다는 것은 몰상식을 생산해내는 세력과 싸운다는 뜻과, 상식을 생산해내는 세력 안의 몰상식을 지워나간다는 뜻을 동시에 가진다. 진중권은 몰상식을 생산해내는 극우세력을 반대하는 동시에, 진보진영 내에 있는 몰상식을 지워나가는 작업을 수행한 것이다. 따라서 진중권이 진보진영 내의 몰상식을 지적했으므로 그가 노무현을 지지해야 한다 메뚜기의 주장은 의미가 없다. 아마 진중권이 노무현에게 눈길을 돌리면 거기서 찾아낼 수 있는 문제점의 목록도 현란할 것이다. 강준만과 좌파들을 포함해서 옥석논쟁의 현장에 서있던 사람들 대다수가 이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강준만은 용어와 상관없이 의의를 가지는 진중권의 질문의 기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상식적 기준에서 좌파들을 비판하던 그가 "좌파가 왜 상식의 기준을 잣대로 내세우나?"라는 모순적인 질문을 하고 말았다. 이는 진중권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와는 상관없이 강준만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지점이다. 윤지관은 "강준만은 자유주의자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그래서 강준만의 기준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다. 강준만은 "진중권은 민주노동당원이며, 이문옥 사이버 대변인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그래서 진중권보고 자기 기준을 찾으라는 뜻이다. 두 말은 반대방향에서 같은 의미를 가진다. 강준망는 정말로 자신의 활동의 의의를 잘 모르는 것일까?  

.
어쨌든 진중권의 민주노동당 탈당으로 사태의 한국면은 일단락 되었다. 오랜만에는 제법 쪽수의 법칙을 적용해서 분석을 하고 있고, 현상적으로 진중권의 칼럼이 노무현 엄호로 나아갈 가능성도 있다. 당장 노무현이 부당한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진중권의 문제의식이 굴절된 결과라고 보긴 힘들다. 좌파들이 "우파적 개념"(??)인 "상식"을 애초에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게 오만이었듯, 한국사회의 우파들 (극우파를 제외하더라도) 역시 이 "상식"을 제대로 구비하지 못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진중권의 문제제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1 "노동자"라는 진보의 근본어휘 하뉴녕 2003-03-12 921
40 양비론 구별하기 하뉴녕 2003-03-12 1111
39 민주노동당의 우방한계선? 하뉴녕 2003-03-11 931
38 제도와 성숙 -비례대표 여성 50% 할당제에 부쳐 하뉴녕 2003-03-11 871
37 인문좌파 육성하자 -당파성 논쟁의 실용적 결말을 위해 [1] 하뉴녕 2003-03-11 1118
36 금기(禁忌), 세력균형, 합리성, 이념 하뉴녕 2003-03-10 1281
35 언론의 당파성, 이념성, 공정성 -강준만과 진중권의 글을 보고 하뉴녕 2003-03-08 1358
34 <언어게임>과 <재서술> 하뉴녕 2003-02-20 855
33 [이대교지] 조선일보 -수구세력의 탁월한 선동가 하뉴녕 2003-02-14 2007
32 통치행위인가, 위법행위인가 하뉴녕 2003-02-11 950
31 반지의 제왕 : 톨킨의 향기를 느끼다. 하뉴녕 2003-02-10 1499
30 메타Meta화(化)의 끝? -아이러니의 해결책: 전제(前提)와 격률(格率)에 대해... 하뉴녕 2003-01-23 1617
29 노동당과 개혁당 -근대와 탈근대 하뉴녕 2003-01-14 1075
28 권영길이 노무현 당선 돕는다. 하뉴녕 2002-12-17 990
27 언론운동, 이젠 어떻게 해야 할까? 하뉴녕 2002-12-09 879
26 진중권 : 조우커의 임무 하뉴녕 2002-12-08 2321
25 권영길 표 이회창에서 온다. 수구세력에 놀아나지 말라. 하뉴녕 2002-12-05 1038
24 오마이뉴스 유감 하뉴녕 2002-12-02 827
23 개혁국민정당 올바른 정체성을 세워라 하뉴녕 2002-11-30 1336
» 옥석논쟁보론- "시민적 상식"의 의미 하뉴녕 2002-11-22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