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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이것은 '로망'이 아니다. '남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텃세를 부리려는 게 아니라, 그냥 사실 자체를 이야기하는 거다. 로망이란 건 이런 거다. 2002년 월드컵 한국 vs 이탈리아, 2006년 WBC 한국 vs 미국. 우리도 나름대로 좋아하고, 응원하지만, 객관적인 실력이 뒤지고, 시장이 좁아서, "우리 팀 선수들 연봉을 다 합쳐도 저쪽 팀 선수 한명에도 못 미칩니다."라는 해설을 덧붙여야 하는 상황. 내(아, 이때 '우리 팀'은 얼마나 쉽게 '나'로 변신하는지!)가 약자임이 너무나도 명백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한 그들에게 부딪혀 들어가야 하는, 그런 상황. 물론 우리가 유럽이나 남미애들처럼 축구에 미쳐 살지는 않지만 국가대표팀 축구 선수들 이름은 다 알고 있고, 야구장에 열심히 가지는 않는더라도 각 팀의 주전선수들이나 팀의 순위에 전혀 무관심하지는 않다. 적어도 나의 경우, 가을이 다가오면 한화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할지 여부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이건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한때 올림픽 메달의 숫자가 국가의 위상을 드러내는 지표이던 시대가 있었다. 소련과 중공 등 공산권 국가들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맹점을 비웃으며 국가 차원에서 선수들을 조련하여 효율적인 성과를 거두고, 한국 등 국가주도형 경제발전을 펼쳤던 일부 개발도상국들이 그들의 체제를 거의 그대로 카피해서 메달 획득에 골몰했던 시대. 그때 조련되어, 한때 세계최강으로 군림하다가, 이제는 한물 간 조류라는 '한국형 핸드볼'이란 멍에를 짊어지게 된 선수들. 핸드볼 관람을 즐기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 자본주의적으로 말하면  '시장'이 없는 곳에 덩그러니 내던져진 그녀들. 세상과 존재의 불일치 속에서, 이제는 국가마저 예전만큼 지원을 안 해주는 세태 속에서, 그저 하던 짓을 더 자발적으로, 그녀들 간의 연대를 통해 추구함으로써, 국가와 사회가 원하는 일을 하지만 실은 그녀들을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해 거세게 항의하는 그런 몸부림, 혹은 존재증명, 그런 이야기다. 말하자면 이것은 '로망'을 논할 수조차 없는 어떤 사태에 대한 감상적인 기술.


"너희 나라엔 왜 이렇게 '신화'가 넘치니?"라고 어느 외국인이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 '로망'이라도 이끌어내지 않는다면, 전멸당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두려움 때문에?"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어도, CU @ K리그를 실제로 실천할만큼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한 우리는 어차피 약자. 한번의 로망과 신화는 아름답지만, 다음에도 로망과 신화를 기다려야 하는 우리의 세계에서 신화는 얼마나 피로해지는가. (오죽하면 대통령 당선'자'가 노동자들에게 자원봉사자의 마인드를 가지라고 요구하는 반-자본주의적 국가이겠는가.) 올림픽이든 월드컵이든 4년이면 돌아온다. 언제나 정신력을 강조하고, 언제나 총력전을 요구해야 하는 사회에서, 스포츠가 우리에게 주어야 할 본래적인 의미의 기쁨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국가대표급 선수들에게도 '직장'을 제공하지 못하던 나라에서, 국가는, 혹은 그녀들의 자존심은 은퇴했던 아줌마들까지 소집해서 세계최고수준의 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우승보다 감명적이었던 아쉬운 준우승. (사실 그때 난 경기를 보지 않았다. 96년도에 3연속 금메달 일보 직전에서 덴마크에게 패배한 그 경기를 관전한 이후, 나는 4년에 딱 한번 핸드볼에게 애정을 주는 나의 부조리함에 진저리쳤던 것이다.) 그로부터 4년 후, 이 영화를 보고 "한국 여자 핸드볼팀의 선전을 기원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한대 때려주고 싶을 것. 실업팀 5개밖에 유지하지 못하고, 국가대표팀 선수에게 일당 2만원씩밖에 주지 못하던 나라가, 1000개가 넘는 실업팀을 유지하고 핸드볼을 국기로 생각하는 덴마크에게 진다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은퇴하는 과거의 선수들을 대우할 방도를 찾고, 좋아하지도 않는 스포츠를 보고 메달을 따오란 요구를 하면서 불행한 선수들을 양산하는 기만적인 응원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말한다면, 나는 너무 차가운 것일까, 아니면 너무 감상적인 것일까?


<밀양>이 그랬던 것처럼, 지극히 한국적인 문제에서 출발하고 있는 영화다. 경기 장면 촬영이 약간 아쉽고 결미도 2% 부족한 듯 하지만, 결말을 모두가 알고 있는 실화물의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넓진 않았을 것이다. 문소리의 연기는 시쳇말로 '쩔었고', 김정은 엄태웅의 '드라마용 명품 연기'도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극의 흐름을 깰 정도는 아니었다. 김지영은 일종의 감초 역할을 했고,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9회말 2아웃>에서 얼굴을 익힌 조은지도 반가웠다. '쵝오'는 아닐지라도 한번쯤 봐줘야 할 영화다.


홍선생

2008.01.14 21:35:28
*.254.38.205

소재가 주류 인기스포츠였거나, 주인공이 남자선수들이었으면 이런 느낌의 영화가 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저도 며칠 전 보고 반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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