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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자격론은 비판을 막는 반칙.

조회 수 861 추천 수 0 2003.06.10 01:53:00
이런 글은 정권이 바뀌어도 효력이 있다. 진보누리의 세라핌씨가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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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세라핌이 느낀 것은 어떤 아이러니였다. 미국은 투쟁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나라다. 캐나다는 독립을 선물받고, 민주주의 정체를 실시한 나라다. 그런데 어째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아사 직전인데, 캐나다 정치인은 민중의 의사를 잘 대변하는가?

역설적으로 보자면, 그건 다름이 아니라 미국이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쟁취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만든 WASP들은 자신들이야 말로 미국 민주주의의 주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자부심은 역사적 근거가 있는 것이니, 다른 이들이 함부로 부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 이민 온 유색인종들은 진지한 사회구성원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애초에 흑인들은 노예로 끌려왔고, 기타 유색인종들 역시 돈을 벌기 위해 왔다. 그들은 WASP의 자부심에 차별당했으니, 사회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건 내 전쟁이 아니라 단지 당신들의 전쟁"이라는 알리의 선언이 그 사실을 증명하지 않는가.

그런데 민주주의는 주인이 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꽃피는 법이다. 따라서 미국에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다. 미국 민주주의의 허술한 제도들은, "미국에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땜질용 방패막이다.

캐나다 사람들에겐 그런 게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평등하게 민주주의를 선물받았기 때문이다. 누가 더 애썼고, 누구는 자격이 없고 따위의 지루한 논쟁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 유색인종 역시 진지한 사회구성원으로, 사회의 주인으로 인정받았다. 그래서 그들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할 수 있었다.

한국 사회의 좌파 입장에서는 입맛이 쓴 이야기이다. 이 분석이 올바르다면, 남북통일 이후 북한인들이 차별에 노출될 확률이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남한인의 북한인에 대한 경제적 차별은, 문화적으로 "자격론"이라는 정당화의 가면을 쓰고 나타날 것이다. "이 민주사회, 이 발전된 경제, 모두 우리가 만들었어. 너희들은 자격 없어."

이런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가 되기 어렵다.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지역문제라는 것도, 어떻게보면 영남인들이 자기들이 산업화에 가장 기여했다고 가장 많은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안 그래도 영남인들이 깝죽거리는데, 여기다가 남한인 전체가 북한인에게 문화적인 (경제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우월감을 느낀다면? 생각만 해도 두려운 일이다.

그런 현상은 국가차원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얼마든지 벌어진다. 기실 노혜경 등 노무현 지지 지식인들이 우리에게 하는 말도 자격론일 수 있다. "우린 열심히 노무현 선거운동 해서 역사를 바꿨는데, 니들 왜 아무것도 안하고 이빨만 까?" 뭐 이런 얘기다.

그러나 자격론은 보수주의자의 논리다. 그것은 현상유지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WASP, 영남인, 남한인을 옹호하는 논리가 됨은 위에서 본 바와 같다. 조선일보가 김대중 정권의 세무조사를 비판하는 논리도 자격론이다. 여야 국회의원이 서로 떠들어대는 것도 자격론이다. "야, 똥 묻은 개, 왜 겨 묻은 개를 나무라?"

하지만 비판의 정합성은 비판자의 자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리고 시민의 입장에선, 똥묻은 개들이 겨묻은 개를 나무라는 행위도 소중하다. 우리는 겨묻은 개를 가려낼 힘이 없는데, 똥묻은 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징글징글한 일상의 어법을 벗어나, 자격론이 비판을 막는 반칙행위가 되지 못하도록 감시해야한다. 그것은 올바른 여론 형성을 위한 전제조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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