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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새만금 갯벌 살릴 수 있을까.

조회 수 827 추천 수 0 2003.06.03 13:03:00
이것도 스누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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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갯벌 살릴 수 있을까.
 아흐리만의右왕左왕

2003년 06월 03일  SNUnow 아흐리만

삼보일배 예찬 유감

31일 오후 3시. 두 달 전 전남 부안의 해창개펄을 출발해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는 의식(3步1拜)을 거듭하며 국토를 거슬러 올라온 4명의 성직자가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들어섰다. 5천여명의 시민들이 일제히 일어나 함성과 박수로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 이희운 목사, 김경일 교무를 맞았다. 검게 그을린 4명의 성직자를 보고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많았다. (['새만금 3보1배' 대장정 마무리], 연합뉴스, 5월 31일)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배 행사가 끝났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1991년에 시작되었으니, 거기에 대한 문제제기의 역사 역시 십 년은 넘을 것이다. 하지만 새만금 갯벌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사람들에게 전달되기 위해선 이토록 숭고한 종교적 행위가 필요했나 보다.

성직자들의 행동은 분명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정부 시책에 대한 반대여론이 유통되는 구조가 없다는 "현실"이 성직자들을 그런 길로 이끌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TV 뉴스는 자신을 한없이 낮춘 이들의 행동에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자신을 한없이 "안" 낮추고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들은 오만하고, 대중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실과 유리되어 있는 인간들이라는 식의 인식이 확산되면 곤란하다. 정부를 비판할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매번 고귀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래서 성직자들의 숭고한 행위와 일반인들의 "조그만 실천"을 대비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감수성 vs 현실논리

여하튼 삼보일배는 둔해질 대로 둔해진 수많은 사람들의 감수성을 자극했다. 그러니 이제는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재적인 문제를 제기해 보자. "새만금 사업, 과연 저지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Yes or No를 바라는 질문은 아니다. 도박은 신념이 아니라 확률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돈을 걸게 된다면 나는 No에 패를 던지겠다. 문제는 그러한 확률을 만드는 이유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린 감수성은 현실 논리에 맞닥뜨리면 너무나 허무하게 좌초되고 만다. 지난 번 이라크 파병 문제도 그러했다. 이라크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감수성"은 "국익"이라는 "현실 논리"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읍참마속(泣斬馬謖), 다들 눈물을 흘리며 살인을 저지르는 제갈공명이 되었다. 삼보일배가 자극한 "감수성" 역시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전북지역개발"이란 이름의 현실 논리가 이 여린 감수성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으니 말이다.

현실 논리?


▲연세대 학생들이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에 참가하는 모습 / 유뉴스

그런데 과연 그들은 제갈공명일까? 적어도 제갈공명은 마속을 베어 자신이 얻게 될 이득을 계산할 줄 알았다. 그러나 우리 사 회의 "현실 논리"는 계산적이라기 보다는, 상징적이다. 전북시민들의 대다수가 새만금 사업에 찬성한다고 한다.

노태우의 호남안배 대선 공약으로 탄생한 새만금 사업의 시행여부가, 그들에겐 정권이 호남에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를 측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인 것이다.

군필자가산점 위헌 논란 때도 그랬다. 사실 군필자가산점의 혜택을 받는 예비역들의 비율은 매우 미미했다. 결국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운 게 아니라, 어떤 문화적 상징을 위해 싸운 셈이다. 전북인들이 처한 입장도 비슷하다. "다른 건 필요없고, 일단 군필자가산점을 인정하라!"는 소리가 전북인들의 입에서 그대로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그들에겐 새만금 사업의 현실성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 논리"는 도대체 얼마만큼이나 "비현실적"일까? 새만금 사업은 지역의 조화로운 발전과는 아무 상관없는 무대뽀 사업이긴 하지만, 적어도 공사 기간 중에는 통계적으로 지역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누가 돈을 버느냐이다. 정선 사람들은 정선 카지노 유치를 위해 사활을 걸었다. 그러나 정선 카지노 이후, 돈을 번 사람들은 외지인들이라고 한다. 정선 사람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파탄 난 지역 공동체를 떠나야 한다. 바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카지노를 유치했는데도 불구하고. 새만금 간척사업이 가져다 주는 이득 역시 전북시민보다는 지역유지에게, 그리고 지역유지보다는 외지 투기꾼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다. "지역개발"은, 일종의 환상인 것이다.

답답한 딜레마

군필자들은 "신의 아들"에 대해 억울함을 가지고 있었다. 전북인 역시 먼저 개발이 이루어진 다른 지방 사람들에 대해 억울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을 설득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그들은 환상조차 사수하려 할 것이다. 자존심 때문이다.

분명 군필자들은 자신의 봉사에 걸맞는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전북인들 역시 전북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살 권리가 있다. 핵폐기물 처리장조차 유치한다는 전북의 상황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분명 "군필자 가산점 폐지"나 "새만금 사업 철폐"는 이러한 큰 방향과 일치하는 주장은 아니다. 단지 모든 맥락을 제거하고 그 하나의 사안만을 본다면,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할 그런 일들이다.

"장애인과 여성들에 대한 차별의 소지가 있는 군필자가산점은 폐지하고, 군필자의 이익을 보다 정교한 정책으로 대변하자." 이게 정답이다. "새만금 사업같은 장난하지 말고, 진정한 지역평준화 정책을 고민하자." 이게 정답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부가 정답대로 행동하는 것을 본 적이 없고, 시민사회의 힘은 기존의 정책을 비토하는 것만으로 벅차다. 정답이 실행될 가능성이 없는 곳에서 사람들은 상징에 따라, 환상에 따라, 서로 싸운다. 슬픈 일이다.

그러니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 "입"을 가진 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른 일은 어쩌면 잘못된 싸움의 구도를 폭로하는 일이다. 답답한 딜레마를 넘어, 올바른 길로 나아가기. 이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어떤 연대의 정신일 텐데, 이제는 서로를 그 정도는 믿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 그 정도는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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