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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정치, 신화제조업을 넘어서.

조회 수 961 추천 수 0 2003.05.25 00:38:00
진보누리의 멜코르씨가 쓴 글. 마지막 두 문장의 '예언'은 실현된 것일까? 하지만 언제나 예언은 실현되지 않는 쪽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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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가 통제되던 시절에 사람들은 신문기사 안에 숨겨진 행간을 읽어내기 위해 고도의 독심술을 발전시켜야만 했었다. 억압된 정치열기가 기형적으로 분출된 결과 정치담론이 심각하게 왜곡된 경우다. 이렇게 왜곡된 정치독심술에 입각해서 언론은 '3김'이라는 왜곡된 정치상징을 개발해냈다. 이것은 잘못된 기초 위에 환상의 궁전을 지은 퇴행적 업그레이드다. 현실인물과 무관한 상징 조작이 영향을 발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략)

잡초제거는 일종의 인적 청산이다. 그러나 한국의 못자리에서는 어떤 품종을 심어도 잡초만 재배된다. 경작자들이 바로 상습적으로 잡초를 말아 환각제를 피워 온 골초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변화된 상황에서 과거의 게임은 계속될 수 없다. '3김'이라는 정치상징이 퇴장했다. 영웅 뒤만 따라다니던 병졸들만 남았으니 이제는 게임이 안된다. 이제는 병졸들이 아니라 저마다 자기 판단과 신념에 따라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현실정치를 하는 수밖에 없다. 이제는 감상법이 아니라 정확한 현실분석과 문제진단, 그리고 해결사이자 치유자로서의 각자의 신중한 판단력이 요구된다.

(중략)

골초의 금단현상은 새로운 영웅상징을 요구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제나 각자의 판단력과 책임성을 사회적으로 통합하는 협력의 능숙성이다. (송명수, "잡초와 골초"  2003.5)


노무현의 급부상을 보면 그리스 신화의 끝부분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신들의 사회"는 곧바로 인간 개개인의 열망이 반영되는 세상으로 바뀔 수는 없다. 중간단계에서 나타나는 것은 영웅이다. 여기서 영웅의 등장이, "인물 중심의 세계관"을 존속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비판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영웅의 힘은 신들의 사회를 뒤집기를 원하는 다수의 열망의 투사이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스처럼, 제우스의 핏줄을 이어받았더라도 상관없다. (노무현 역시 기성정치인이다.) 문제는 인간이 신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다.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갖은 심술에서 살아남아, 신을 능가한 인간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무작정 신을 증오하지 않는다. 그는 "거신족의 반란"을 제우스 일가 대신 진압하여 제우스의 권위를 세운다. 겉보기엔 제우스의 권위가 지켜졌지만, 사실 인간의 권위가 지켜진 것이다. 옛 지배권 잔당의 찌꺼기들인 한나라당 "거신족"으로부터 민주당 "제우스 일가"를 사수하는 노무현은 민의의 힘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영웅 헤라클레스가 권위를 해체하면, 트로이 전쟁의 전사들은 신의 권위를 무시할 수 있다.

(중략)

죽어서 올림푸스로 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여하튼 헤라클레스는 인간의 땅에서 죽었다. 영웅시대의 의의가 신의 해체라고 본다면, 헤라클레스의 존재는 소중하다. 그러나 그 소중함은 우리가 헤라클레스를 바로 그런 방식으로 해석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아흐리만, "노풍은 안전한가?" 2002.4)



켐벨은 "신은 인간 무의식의 투사된 형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신화 제조업"을 "정치"라고 부르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강준만은 무엇인가? 그는 예언자이다. 그는 죽어가던 상징을 살려냈고, 새로운 상징을 만들어냈다. 그는 상징의 힘을 뼈저리게 안다. 그래서 그는 상징의 힘을 올바르게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상징을 깨뜨려야 한다는 목소리는, 그의 입장에서는 아직 무리한 요구이다.


김동렬과 몇몇 논객들은 무엇인가?  그들은 신전의 관리인들이다. 예언자가 점지해준 신을 숭배하는 곳에 그들이 있다. 아마 "신은 누구인가?"라는 문제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주장하며, 가끔 신탁도 내려준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홀린다. 이들은 무엇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정말로, 이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예언자 강준만의 시도가 위태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왜 상징의 힘을 이용해서 올바른 일을 하기가 어려운가? 그건 그 시도의 모순성 때문이다. 노무현이 강준만이 원하는 역할을 하려면, 자신이 (그러니까 강준만이 점지해준 상징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훌륭한 사기꾼이 되기 위해선 자신이 사기를 치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깨닫고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노무현이라는 상징이 긍정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먼저 노무현 자신이 "상징은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실 김대중은 강준만의 성공작이었다. 강준만이 만들 수 있는 최대의 작품이었다. 김대중은 자신이 상징의 힘을 활용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진보세력의 기준에는 현격히 못 미치지만, 김대중이 의도했든 안했든 그의 통치기간 동안 한국사회가 진보의 방향으로 한두걸음 내딛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필요가 없다. 강준만이 다시 예언을 하게 된 까닭은, 이러한 성공의 경험에 대한 자신감 때문인 것이다. 이는 민주노동당이 김대중에 근거해 노무현을 비판했던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노무현은 성공작이 될 수 있을까? 그러기 힘들 것이다. 나는 잘못 짚었다. 그의 자만심은 헤라클레스의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그는 언젠가는 반드시 자신이 신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살아온 사내인 것이다. 신들의 사회를 깨뜨리기는 커녕, 그나마 선한 신이 할 수 있는 한두걸음의 진보 역시 그에게서 기대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그는 상징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선한 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보세력을 탄압할 때조차 그는 자신이 "선하다"고 굳게 믿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줄서 있는 수많은 무당, 무녀들 역시 그렇게 믿고 있을 것이다.


"신화제조업을 넘어서기." 그것이 이 시대, 이 곳에 요구되는 정치개혁의 본질적인 과제다. 진보누리가 추구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진보누리는 강준만, 노무현, 유시민, 국민의 힘과 불화해야 한다. 그들은 신화를 만들어 울렁울렁 얼렁뚱땅 좋은 일을 해보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본질적으로 옳지 않을 뿐더러, 지금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신이 무식하기 때문에 한국사회에 해만 끼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비판은 상징을 깨뜨리는 작업이어야 한다.


그러나 저 빌어먹을 신께서 우리 머리 위에 직접적으로 철퇴를 휘두르는 때가 아니라면, 너무 분노하지는 말자. 분노의 힘은 우리 자신을 신격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주신을 옹립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신전에 우리의 지분을 마련하기 위해 싸우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정치의 만신전을 작살내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노는 그에게 사기당한 지지자들의 것으로 남겨두자. 그들이 그것을 깨달을 날은, 그리 멀지 않았다.


멜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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