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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유시민 씨의 서커스 정치.

조회 수 1252 추천 수 0 2003.04.16 00:24:00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인데, 진보누리의 멜코르씨가 걱정스럽다. '너 이거 가지고 이렇게 흥분하면 나중엔...ㅋㅋㅋ' 뭐 이런 식의 냉소적인 충고가 머리 속에 떠오른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흥분의 양은 윤리적 평가에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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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결정이 홍세화 선생님의 양심과 소신에 비추어 그릇된 것일 뿐만 아니라 개인 노무현의 양심과 소신에도 어긋나는 것이리라 믿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일전에 "더러운 진정성주의자들"과 "어설픈 마키아벨리스트들"을 비판한 바 있다. 그 얘기를 다시 하자면 입만 아프니 간단히 요약만 하면 다음과 같다.


1. 공적인 의사소통 영역에서는 "진정성" 따위의 말을 쓰는게 아니다. 공적 행위는 행동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 한다.

2. 마키아벨리즘은 숨어서 이렇게 조종하라고 만든 것이다. 대놓고 이렇게 하자고 지침을 만드는 것은 돌맞을 일이다. 아름다운 명분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을 "이용"하라는게 마키아벨리즘이니까. 그러니 음모가 발각되었을 땐 돌을 던져줘야 한다.



그러나 홍세화 선생에게 쓴 편지와 딴지일보 인터뷰를 다시 읽어보니, 아무래도 유시민 씨에게 돌을 던질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주황을 비롯한 서프라이즈 논객들에게,

이건 긴팔원숭이 재롱떨기다. 이들은 "역할분담"을 믿는게 아니라, 단지 노무현 지지자들 앞에서 노무현을 비판하는게 두려울 뿐이다.

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 그 비판을 철회하기로 한다. 유시민 씨는 역할분담론을 그야말로 떳떳이 밝히고 있고, 그게 또한 많은 사람에게 설득력을 가지는 모양이니 어찌 비판할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마키아벨리즘이란 자기 편을 끌어모으라고 있는 법. 문화가 사뭇 다른 한국땅에서는 이렇게 사기를 쳐야 통하는 모양이다. "난 순진하지 않아요.... 난 현실을 알아요.... 음모를 꾸밀줄 알거든요..."


유시민 씨는 지금 진실을 가리는, 아니 진실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운 왁자지껄 서커스의 현장에 서 있다. 그가 예수처럼 판을 뒤엎을 사람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그러나 이 정도까지 연극적 재능이 있는 줄은, 그것도 몰입해서 연기를 할 줄은 몰랐다. "파병반대연기"가 명연기였나고? 아니다. 그건 빵점이었다. 그러나 "파병반대 연기"를 빵점으로 만든 바로 그 연기가 관객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여러분, 이 모든 것은 서커스입니다. 여기 이 사람들은 그저 지나가는 객일 뿐입니다..."

가장행렬에서 유일한 진실을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관중들, 일어서서 비명을 지르며 박수를 친다. 혁명가를 맞이하듯이.

예컨대, 우매한 민중은 그런 거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반미 반전운동하고, 정치인들은 뒤에서 열심히 머리 굴리면서 역할분담하고.. 그게 되냐는 겁니다. 전 그거는 아니라고 봅니다. 모두가 다 알고 계산하고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는 알까? 서커스의 부정을 고발하는 듯한 그의 행동이야말로, 그 모든 서커스를 정당화시키는 가장행렬의 완성판임을. 그는 알까? 애초에 서커스에도 진실은 내재해 있으며, 자신의 바르지 못한 역에 슬퍼하거나, 자신에게 배정된 역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노무현의 알량한 고뇌보다, 더욱 서러운 고뇌를 하는 전경 청년들, 이라크 때문에 눈물흘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는 과연 알까?  많은 사람들은 서커스에 대해 체질적으로 잘 알고 있고, 단지 그는 그것을 언어화한 것 뿐이라는 것을. 그는 박수를 받지만, 그 박수는 아무런 것도 확인받지 못하는, 단지 "사람은 죽는다"에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를 이끌어낼 뿐인 연역추리와도 같은 박수임을!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관객들 앞에서 "서커스에 관한 모든 것을 깨달은" 예지자"를 훌륭히 연기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입밖에 내지 않는 진짜 "예지자"가 있을 가능성은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으리라. 그러므로 자신의 어깨 위에 놓여진 무거운 책임감을 절감하며 서커스의 중심부로 들어간다.

아마 이렇게 얘기했겠죠. "속으로 파병에 찬성하시는 분들도 일단 반대표를 던져 주십시오. 한번 부결 시킵시다."

"국회의원" 유시민은 이렇게 말하며, "대통령" 노무현의 서커스를 돕는다. 아무렴, 결혼을 방해하는 백작 없이 두 청춘남녀의 사랑이 어찌 아름다워질 수 있단 말인가?  


그도 저도, 예전과 똑같은 윤리 규범을 지니고 있지만 예전과는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라는 유시민. "노무현 없는 대통령"이 반쯤은 진실이고 반쯤은 거짓이듯이, "유시민 없는 정치인"도 반쯤은 진실이나 반쯤은 거짓일 것이다. 아무리 타락해도 그는 지금 국회의사당 안의 그 누구보다도 금뱃지를 달 자격이 있음을 나는 안다. 그렇기에 그의 국회의사당 입성은 환영할 만이다. 그 와중에 오마이뉴스가 어떤 부정을 저질렀든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그러나 동시에 유시민 씨의 서커스 정치는, 더 이상 우리의 이상이 될 수는 없다. 들어라, 귀있는 이들이여! 서커스를 꿰뚫은 척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서커스의 대본도 없고, 또한 그것을 수정할 권리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은 그 안에 들어가 우리에게 맡겨진 배역을 진정으로 수행하는 일 뿐이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감동을 느끼는 때는 바로 그 때이다. 도저히 어떤 음모나 역할분담으로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은 배역의 진정성. 지역감정에 도전하다 쓰러진 노무현의 모습이 바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음흉한 서커스 입방아들의 음모론에도 견뎌낼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그런 혼신의 배역에서 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 때 그 바보에게 음흉한 서커스꾼들이 무대 밖에서 빈정거렸던 것처럼, 오늘 유시민은 빈정거린다.

영국 정부의 각료들도 만약 영국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로 분단되어 있고 미국이 스코틀랜드 공격을 검토하는 상황이라면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프랑스와 독일 정부가 반전대열에 선 것 역시 '인류의 양심'을 옹호하는 순도 100% 짜리 결단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So What? Why not? 세계각국에서 혼심의 힘을 다해 반전을 외친 수많은 사람들이, "영국각료", "프랑스정부", "독일정부"로 흡수되는 그 감수성에서, 우리는 유시민 씨와 갈라서야 한다. 바로 거기까지다. 책략가 유시민의 의도는 우리에게 상관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보이는 행동이다. 왜냐하면 노무현과 유시민이 어떤 의도를 품고 있는지 우리는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제가 그런 글을 쓴 것에 대해서, 대중적인 반전운동 확산에 물을 타는 거 아니냐는 비판이 있는 거 알고 있고, 일견 타당해요. 현실적으로 타당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이 옳다고 보지 않아요.

옳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유시민 씨가 자신의 행동을 행동 그 자체가 아니라 효과를 통해 계산할 때, 그 반대편의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효과로 계산하는 것을 어찌 말릴 수 있겠는가? 그건 동전의 앞뒷면일 뿐. 유시민 씨가 어찌 그것을 비판할 수 있을까?

노무현과 유시민은 앞으로 그들이 나아겠다고 약속한 그 한발한발을 통해 평가받을 것이다. 그 한발한발을 보며, 우리가 그것을 위해 희생한 그들의 양심과 신념을 굳이 떠올릴 필요는 없겠다. 이미 길은 갈렸고,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한발 내딛을 때마다 박수를 치는 것 뿐이다. 물론 멈춰있을 때 줄 한솥 가득한 비판도 잊지 말기.  

멜코르.


p.s 그의 서커스에 깊히 감명받은 이들을 위해, 몇마디를 덧붙여야겠다. 그는 윤리적으로 보나 우리 헌법에 비추어 보나 잘못된 결정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윤리적 기준을 그대로 정치적 기준으로 전용하는 데 저는 반대합니다.라고 말했다. "윤리적"은 "윤리적 기준"이라 치자. "우리 헌법"은 무슨 기준인가? "정치적 기준"은 아닌, 그저 "윤리적 기준인가? 또한 그는 노무현이 "부시, 당신은 이라크를 침략하려 하고 있어. 난 그 전쟁을 지지하지 않아. 한국군 파병은 꿈도 꾸지 마!"라고 말했어야 했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반전운동 하는 이 누구도 그렇게 주장한 바 없다. 물론 우리 헌법에 의하면 그렇게 해야겠지만, 반전운동 참여자들이 주문한 것은 기껏해야 국민여론 핑계를 대며 시간을 좀 끌어보라는 것이었다. 이런 것이 납득될 만한 "현실성"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여러 부분에서 집요하게 역할분담론을 펴면서, 내가 국회의원이라면 반대표를 던졌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대통령이라면 찬성했을 것이다... 이게 저는 정답이라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정답? 다른 것도 아니고 정답이라고? 그렇다면 유시민 씨는, 노무현 대통령이 정답대로 행동하지 않았을 경우, 노무현 대통령의 과오를 시정하기 위해, "역할분담론"을 위해 파병찬성 여론 확산을 위해 기여할 것인가? 정말이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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