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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인권"을 내주지 말자.

조회 수 841 추천 수 0 2003.09.01 14:06:00
진보누리에 아흐리만으로 올린 글. 아마 스누나누에도 올렸던 것 같다. 지금 남아있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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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학교에 오니 대자보의 홍수다. 소위 NL 진영의 자보가 주로 많은데, 한총련 투쟁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구속학우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한총련의 전술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듣는 사람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그러나 그런 실천의 영역을 떠나 상황인식이라든지, 주장이라든지 하는 부분에 내려오면 역시 차이를 발견하게 되어, "815 민족공동행사 xx대 추진본부"라는 곳에서 붙인 자보 하나를 비판할 수밖에 없겠다. 아마 이것은 내가 다니는 학교를 넘어 통일운동을 하는 많은 단체들이 동의하는 주장인 듯 하니 말이다.

자보는 북한 인권 논의가 기만적이며, 올바르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 근거는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는 북한 인권을 말하는 미국이 인권 후진국이라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주로 미국이 미국 국민에게 저지른 일보다는, 국외적으로 저지른 범죄를 비판한다. 하긴 인권이라는 게 자기나라 국민'만' 제대로 대우하라고 있는 기준은 아닐 거라는 점에서, 미국에 대한 이들의 비판은 정당하다. 탈레반 포로 학살 의혹과 이라트 전쟁 당시의 인권 유린 행위, 그리고 미국 내부의 인종차별 행위를 말한다. 이렇듯 스스로 "인권 후진국"인 미국이 다른 나라의 인권에 참견할 권리가 있느냐는 것이다.

둘째는 미국의 "인권 운운"이 전쟁을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주장이다. 이라크 전쟁의 경우에도 미국이 전쟁 이전에는 대량살상무기 운운 하다가 거기에 대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자, 지금은 이라크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미국의 인권 문제 제기는 전쟁 야욕과 깊히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인권" 공세가 전쟁을 피하면서 북한 정권 고립과 붕괴를 꾀하는 외교행위로 볼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미국의 계획서와 황장엽의 일본 방송 인터뷰를 거론한다. 탈북자를 중국이 대폭 수용하고, 러시아 중국 역시 북한 인권 공세에 동참하도록 하면, 김정일 정권을 평화적으로 붕괴시킬 수 있다고 미국이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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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장 자체가 잘못 되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은 상당 부분 설득력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인권"을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인권" 논의에 대한 비판은 되지 못한다. 말하자면 "너희들이 말하는 인권은 기만적이야!"라고 말할 수는 있을지언정 "인권을 말하는 건 기만적이야!"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자보는 북한에 대한 인권 공세가 자본주의 사회의 기준을 타성적으로 적용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그런 면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사회의 인권이 자본주의 사회의 인권과 '상대적인 기준 적용의 차이'로 비교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는 굳이 미제국주의자들 뿐만이 아니라 모든 곳의 인권단체들이 지적하는 바다. 이를 부정하면 게시판의 어떤 NL옹호자들이 말하듯 "엠네스티는 미제국주의자의 끄나풀이다."는 식의 무식하고 황당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또한 자보는 지금은 "인권"이 아니라 "민족"을 말해야 할 때라고, "민족 공조"를 튼튼히 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민족은 인권에 배타적인 개념인가? 오히려 민족이 긍정적인 함의를 지니려면, 개개의 구성원들의 '인권'을 존중하며 그 수많은 이들의 삶이 축적된 어떤 경향성을 '민족 문화' 혹은 '민족 정체성'이란 이름으로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민족은 개인의 합이며, 개인이 없이는 민족도 없기 때문이다. 민족을 개개의 인간과 구별되는 어떤 특정하고 숭고한 실체로 규정 할때, 민족주의는 파시즘의 혐의를 지적받기에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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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 냉전세력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활용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권을 포기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을 지키는 일이다. 인권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호소력을 띠고 있는 효율적인 무기다. 이것만 잘 활용한다면, 그들을 비판하는 데에 굳이 "민족"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을지 의문스럽다.

미국의 군사적 기동에 대한 반대, 그리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주장 역시 인권 문제로 접근해 보자. 근거는 충분하다. 이른바 '인권 탄압국가'에 대한 경제봉쇄 등의 제재 조치는 오히려 그 나라의 인권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후세인 독재정권의 인권탄압을 시정하겠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경제봉쇄는 수많은 이라크 어린이들을 굶겨죽였다. '국가'에 대한 '국가'의 봉쇄정책은 인권을 보장하기는 커녕 심각한 해를 끼친다는 사실이 이미 경험적으로 증명되었다. 그러므로 그러한 식의 제재 조치를 지양하는 것이 오히려 인권을 위한 길이라고 주장해 보자.

북한의 인권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북한의 정치상황과 경제상황이 개선되어야 한다. 미국과 조선일보식의 '인권'은 전자를 위해 후자를 파탄내는 길이다. 반면 일부 NL들이 주장하는 "인권" 논의의 포기는 후자의 개선을 위해 전자의 열악한 상황을 '어쩔 수 없는 것' 혹은 '이해할 만한 것'으로 정당화하는 길이다. 우리는 두 개의 극단을 배제하고, 조심스러운 조화를 꾀할 수 있다.

첫째로 북한 주민의 경제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북한 정권을 '대화의 대상'으로 삼고 남한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원조할 필요가 있다는 원칙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 남한이 자신을 붕괴시키려고 책동한다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으며, 사실 이 의구심은 정당한 것이다. 이 의구심을 지울 수 있을 때 북한 인권을 개선할 길도 열릴 것이다.

인권 문제 압박을 통한 정권 붕괴 유도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단호히 반대입장을 취해야 한다. 그것 역시 인권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평화적인 전략이라는 주장은 웃기는 것이다. 그런 식의 기동은 북한 정권을 현저히 자극하여 한반도의 전쟁 위험성을 높일 것이고, 설령 의도대로 체제가 붕괴된다 한들 그 변혁기는 북한 민중들에게 그리 좋은 기간은 아닐 것이다. 정권이 바뀌는 와중의 권력 다툼에 많은 민중들이 희생당할 가능성을 도외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군사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북한 정권을 붕괴시킬 의도가 없으며 '대화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둘째로 북한 정권을 '대화의 대상'으로 삼는 한에서 정치적인 수준의 북한 인권 논의에 대해서 논의의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사실 북한 정권을 대화 상대로 인정할 때에야 이러한 논의가 실천적으로 더욱 가능할 것이다. 남한으로선 북한을 도와줌으로써 많은 '카드'를 확보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냉전적 전략 위에서 기동하는 "인권" 논의를 격파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역할분담이 필요할 수도 있다.  

가령 자보는 남한 국회의 북한 인권개선 촉구 결의안을 비판한다. 그것이 수구냉전의 논리요, 미제국주의의 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남한 정부기관의 인권개선 촉구 결의안이 부당하거나 부적절하다면, 오히려 시민사회나 진보진영의 담론에서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한다고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권 논의의 사장은 바람직한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옳지 않거니와, 수구세력에게 역공의 빌미를 줄 우려가 크다. 실제로 지금도 그렇게 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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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수준의 '경제붕쇄' 등의 압박을 거부하는 것이 인권 문제에 대한 모든 종류의 '압박'을 거부하는 것과 같지는 않다. 여러 나라에, 세계시민의 수준이나 적어도 국가와는 구별된 시민사회의 수준에서 형성된 민간단체들이 있다. 이들의 '압박'은 예외도 있지만 국가들의 전략과 분리된 부분이 있으니, 북한 정권에 존립의 '위기'를 느끼게 하는 그러한 '압박'과는 또한 다른 것이다. 이 점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압박을 제국주의적 기동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부당하다.

통일 문제는 저 멀리 제껴놓더라도, 남한 사람이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의 인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경제문제이든, 정치문제이든, 남한 사회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발언의 '무풍지대'가 되는 것은 사실 국제사회에 대해 쪽팔린 일이다. 미국의 전쟁야욕을 적시하고 대항하는 NL의 공로를 인정하더라도, 일부 NL들의 주장은 이 쪽팔린 행동의 반쪽을 실행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별꼴이 반쪽인 것인가? 성찰과 시정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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