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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한반도의 전쟁을 반대한다는 것.

조회 수 804 추천 수 0 2003.08.14 14:01:00
진보누리에 아흐리만으로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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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것이다. 한반도 반전평화를 위한 투쟁은 미국과 북한 중 어느 쪽이 책임이 있는지를 규명하는 데에서 전선을 형성하는가? 아니면 어느 쪽이나 전쟁 도발 시도 혹은 협박 행위가 당치 않다는 것을 주장하는 데에 의의가 있는가?  


며칠 전에는 길가에서 유인물을 받았다. 서울 시민 450만을 죽일 수 있는 전쟁을 벌이려는 미국과 부시 행정부를 규탄하는 것이 유인물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날 경우 서울 시민 450만명을 죽이는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 미군인가?


전쟁이 일어날 경우 서울 시민을 죽이는 것은 북한 포병이다. 물론 제공권을 장악한 미군과 남한군은 그 이상 가는 가공한 살상 파티를 이북 땅에서 벌일 것이다.


그토록 "제국주의"라는 말을 말장난으로 만들고 싶은 모양이다. 미국의 전쟁은 제국주의의 수행이므로 부당하고, 북한의 대응은 자위권이므로 정당하다? 그런데 그 자위권의 본질은 대부분의 남한 사람과 일부 일본 사람의 생존권을 박탈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이다. 물론 북한은 단지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장거리 탄두 미사일을 통해 미국 사람의 생존권을 위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면죄부를 주자는 것인가?  


한미동맹으로 전쟁을 억제해야 한다는 논리가 미국의 침략 가능성에 이르면 자기 모순에 빠지는 것처럼, 미국의 위협에 대한 반작용은 인정되야 한다는 논리는 그 반작용이 남북한 민중의 생존권을 위협할 때엔 폐기되어야 한다. 그게 마땅하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양자택일을 하라는 것일까?


양자택일의 세계관에 따르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나 있어왔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며, 대립하는 두 개의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요구는 지극히 마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의 싸움은 단순한 세력 싸움이 아니라 정당성의 레벨에서도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두 개의 집단은 서로 대립하면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대립의 한 축에 참여하기 전에 우리가 고려해야 할 지점은 바로 그 점이다. 어떤 대립은 단순히 한 축에 참여하면서 해소될 수도 있지만, 어떤 대립은 그 대립 구도 자체를 넘어서야 해소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은 분명 체제의 어려움의 많은 부분을 적(미국)의 탓으로 돌리며 연명하고 있다. 미국 역시 소련이 붕괴된 이후 사라진 거울 이미지를 허구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북한은 9.11 테러 당시 테러리스트들을 비난하면서 미국의 스파링 파트너가 되지 않기 위한 조심성을 보여줬으나, 미국이 그를 스파링 파트너로 선정한 지금은 오히려 미국에게 '강한 상대'로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유럽의 학생들은 이미 1968년에 미국 vs 소련, 혹은 우파 정당 vs 좌파 정당의 구도에 포섭되지 않을 것임을 온몸으로 선언한 바 있다. 그런데 21세기의 우리는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삼는 정치집단들의 대립을 넘어서자는 주장도 매우 조심스럽게 전개해야 한다. 한심한 일이 아닌가.


미국 제국주의와 김정일 정권. 양자의 힘의 차이는 현격하다. 이것이 우리의 시야를 가린다. 그러나 적대적 공존관계가 현격한 힘의 차이를 넘어 성립할 수 있음은 9.11 테러 이후 국제정세가 증명해 주었다.


이번 8.15는 준비가 안 된 관계로 그저 양쪽 모두에게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 채 넘어갈 수밖에 없겠지만, 미국이 다음 대선 때까지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는 일반의 관측을 생각하면,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있다. 미국 책임론파와 북한 책임론파의 거대한 충돌은 대립 관계에 있는 두 집단의 잔상이 우리 사회에서 재현된 것일 뿐이지, 우리의 이득을 보장하는 어떤 선택이 아니다.


더 이상은 망설일 것이 없다. 적어도 우리의 힘이 미치는 남한 사회에서라도,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곤 전쟁이라는 사태의 끔찍한 결과를 바랄 리가 없다. 그렇다면,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모아 이 땅에서 전쟁은 불가하다고 외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 상대편에게 접근하기 위해선, 설령 우리에게 잘못이 없더라도 허위의 잘못이라도 만들어내어 서로 양보하는 모양새를 만들어내는 것이 의사소통의 기본일진대, 여기서 고작 진보의 '명예'나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위하자는 것일까? 북한책임론자들은 미국 편향으로 인한 전쟁 위험을 직시하고, 미국책임론자들은 북한 편향으로 인한 전쟁 위험을 직시하여 힘을 합쳐 반전을 부르짖는 것 이상의 선택이 어디 있을까?



ㅇㅇ

2013.01.22 13:51:32
*.204.139.30

정론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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