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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한국 보수주의의 위기, 그리고 '현실성'

조회 수 1143 추천 수 0 2003.08.08 13:56:00
진보누리에 아흐리만으로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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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를 서구 사회의 우파의 개념으로 서술하지 말고, 한번 '있는 체제를 그대로 고수하려는' 경향으로 생각해 보자. 대안세력들이 말하는 '기성정치권', 그리고 강준만이 말하는 '조선일보 공화국', 또 홍세화가 서구 사상의 스펙트럼으로 짚어본 '극우 헤게모니' 등의 언술은 바로 이 경향을 가리키는 어휘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를 벗어나려는 여러 시도는 그것이 좌파적이거나 진보적이지 않더라도 적어도 '탈보수주의'적이라고는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속칭 말하는 '개혁세력'이 되겠다.


그런데 왜 보수주의자는 '있는 체제를 그대로 고수하려' 드는가? 여기서 현실성, 혹은 현실주의라는 어휘가 튀어나온다. 현실이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이 말하는 현실성이나 현실주의가 정말로 '현실적'인지에 대해선 좀더 따져봐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현실은 대개 정태적인 현실이기 때문이다.


가령 주한미군 철수에 관한 논쟁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지금에 와선 남한군이 미군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사실상 북한군에 대해 승리할 수 있다는, 그러나 전쟁이 가져올 인명 피해와 남북한 경제의 전면적 붕괴라는 참화를 피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름의 설득력 있는 자료와 근거를 통해 입증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 이 결론이 일반 시민들의 논쟁 지형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으니 이 부분은 생략하기로 하자. 다만 이 논쟁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 벌어졌고, 지금의 상황은 '남한군이 미군의 도움을 받아야만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자.


주한미군 철수에 관한 주장은 망국적인 것이라는 보수주의자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미군이 철수하면 전쟁 위협이 커진다. 그리고 남한 경제에 대한 외국의 신뢰도가 떨어져 경제가 어려어진다. 철없는 운동권 논리로 현실을 재단하지 마라." 물론 전혀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다. 그 시점에서 '즉각적인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사람과 그와 논쟁이 있었다면, 어쩌면 나역시 한시적으로 나마 그의 손을 들어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식의 논법은 앞으로의 변화가능성을, 그것도 지극히 '현실적인' 변화가능성을 부당하게 삭제한다. 이 논쟁에서 대립되는 가치는 '평화+경제 vs 국가의 주권' 이다. 우리는 이중에서 한쪽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할 이유가 없다. 전자의 중요성을 물론 긍정해야 한다. 그러나 주한미군 없이도 그것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국의 국방시스템을 개선한다면 양자의 대립은 해소되는 것이 아닌가.


주한미군 철수에 관한 주장이 나온지 적어도 20년은 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긴 세월동안 남한은 북한에 비해 몇배나 더 많은 국방예산을 써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상황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면 쪽팔려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쪽팔린 줄도 모르고 되레 삿대질이다. 기가 막힌 일이다.


그러는 사이에 미국의 태도도 변했다. 일국 제국주의의 시대를 여는 것인지, 아니면 기울어가는 제국의 영광을 되살리려고 발악하는 것인진 몰라도 이젠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 전쟁 위협요소가 되었다. 이젠 '평화 + 경제 vs 주권' 이 아니라 '경제 vs 평화 + 주권'이다. 그나마 그 경제 문제 역시, 사실 한국군의 전투능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보수주의자들이 "우리는 너무 약해요오오오~~ 미군 없인 못살아요오오오~~"라고 줄기차게 외친 까닭에 외국인 투자자들의 현실인식을 그르친 것이 아닌가. 도대체 사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따라서 이른바 북핵위기의 본질은 한국 보수주의의 실패를 상징한다. 이 위기는 한국 보수주의의 위기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주의는 최소한 외견상으론 기가 막힌 성공을 거두어 왔다. 경제의 고도성장은 분배 문제 역시 절대적인 견지에선 해결해 주었으니, 중산층 이상 시민들이 '80년대에 애들이 말하는데로 했으면 이렇게 못 살았을 거야. 그냥 하던대로 해야 해. 대기업 잘 굴러가게 간섭하지 말고, 노조의 변화 요구는 무시하고, 복지를 통한 분배도 아직은 때가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는 물론이거니와, 일반 시민들도 이런 큰 위기가 '보수주의의 실패'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김대중의 대북정책은 바로 보수주의의 위기의 책임을 다른 곳에 전가하려는 욕구에 의해 매도의 대상이 된다. 이 위기의 책임은 김대중 탓이라는 것이다. 이는 IMF의 근본적인 책임을 봉건적인 구 경제제도가 아니라 '김영삼의 닭대가리'에서 찾은 심성과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구 민주세력은 보수주의의 위기를 대신 짊어지는 희생양이다. 노무현 정권을 물고 늘어지는 수구언론의 공세가 유치한 것은 이때문이다. 이들이 보존하고 확산시켜야 할 것이 바로 이러한 종류의 환상이기 때문이다.


구 민주세력이 입장에선 매우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치적으로 경제화와 함께 은근슬쩍 상당히 진척된 민주화를 끼워넣는다. 이는 대표적인 보수주의자인 유석춘 교수가 "우파는 경제성장의 공로가 있고 좌파는 민주화의 공로가 있다."고 매우 단순무식하게 표현했듯이, (그가 말하는 우파는 내가 말하는 보수주의자, 그가 말하는 좌파는 내가 말하는 탈보수주의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상식적인 견지로 봐서도 오류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우리나라 이만하면 살만하다.'고 말하며 이를 보수주의의 성공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 보수주의에 내재한 위기를 구 민주세력의 실수로 돌린다.


김영삼에게 전혀 책임이 없었겠는가. 김대중에게 전혀 책임이 없었겠는가. 나는 그런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단지 책임만 지는 것이라면 이는 받아들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주장을 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미래에도 지금의 체제를 온존하기 위해 노력할 거라는 점이며, 지극히 물신화된 시민들이 이를 그대로 추인할 것이라는 점이다. 왜? 우리의 보수주의는 성공했으니까!


이들의 세계에서 한국의 경제위기는 씰데없이 노무현과 노조가 대기업에게 시비를 걸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며, 한국의 전쟁위기는 씰데없이 김대중이 원맨쇼를 해서 발생한 것이며, 한국의 정치위기는 허구헌날 조중동과 싸우는 노무현에게 있다. 이들은 사기꾼들이 아니라, 그 허황한 '현실'을 정말로 믿는 확신범들이다. 이 시각을 넘어서지 않고선 보수주의의 위기를 시민들에게 납득시키기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한국 보수주의의 비판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내 생각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그들이 근본어휘처럼 지껄이는 '현실성', '현실주의'라는 어법을 수시로 검증하는 것. 둘은 그들이 '적'으로 여기는 구 민주세력의 보수성을 폭로하는 것이다. 전자에 대해선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나, 후자는 어째서 중요한가?


김대중과 노무현과 민주당은 한국 보수주의자의 '상상적인 적'이므로 언제나 나쁜 짓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탈보수주의적'인 정책은 실상 매우 과장되어 있으며, 그들 역시 '보수주의자'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지점을 명확히 밝혀주는 것이 오히려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상상적인 세계관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현실성이란 낱말은 언제나 자기 편의대로 작용한다. 간단히 말하면, 자신이 바꾸고 싶어하는 것은 동태적인 것, 변화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치부하고, 자신이 바꾸기 싫어하는 것은 정태적인 것, 변화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이른바 현실론의 본질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현실성을 아예 무시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것은 아니다. 현실성, 혹은 현실정합성에 대한 고려는 언제나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의 모순적인 속성을 인지할 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할 것이다.


가령 민주당 지지자에게 '수구세력'은 변화가능성이 있는, 척결해야 할 '변수'이면서, 민주당은 변화가능성이 희박한, 그대로 끌고 나가야 되는 '상수'이다. 물론 우리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며, 우리보다 더 과격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또한 실제로도 있다. 그것 자체로는 아무 문제도 없다. 그러나 큰 문제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논리 구조가 한국 보수주의의 논리와 상생 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한쪽이 다른 쪽을 두려운 적으로 띄워주면, 한쪽은 거기에 의기양양해 하며 보수주의를 극복할 대안은 자신 뿐이며, 나머진 모조리 다 '비현실'적이라고 외친다. 민주당만 하더라도 충분히 탈보수주의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보수주의자들의 상상적인 세계에서 같이 놀아나는 일이다.


민주당을 먼저 개혁하겠다는 노무현의 의지, 혹은 쇼가 퇴장당할 위기에 처한 지금의 시점에서, 진보세력은 커녕 넓은 의미의 탈보수주의자들조차도 민주당을 옹호해줄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한국 보수주의의 위기는 그 상상적 세계를 지탱하는 두축 -'성공자'와 '적대자'- 을 통해 여전히 제갈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이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선 그야말로 냉엄한 현실인식이 필요하다. 상상적 세계관과 이에서 나온 현실성을 넘어서기 위해선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동시에 넘어서야 한다. 두 정당과 그 정당이 대변하는 정치세력은 한국 보수주의의 두 축이다. 최소한 정치적인 면에선 이 보수주의에 두 발을 딛고 선 강준만, 그리고 적당히 한발쯤 걸치고 있는 유시민을 '탈보수주의자'로 인정해 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흐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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