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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국민모금과 정치자금

조회 수 894 추천 수 0 2003.07.22 13:38:00

2002년 대선 정치자금 논란 (소위 "희망돼지"논쟁)을 정리하는 글이다. 진보누리의 아흐리만이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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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모금과 정치자금


노무현을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아준 돈의 최대치는 희망돼지를 포함해 72억이다. 중소기업의 헌금이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한 의혹은 일단 접어놓고 평가하자면, 적은 돈은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진성당원을 3만명으로 계산하고, 1인당 한달에 내는 당비를 1만원으로 계산한다면, 이는 민주노동당의 2 년간 당비 수입에 맞먹는다.


민주당은 각종 팜플렛에서 "국민이 모아주신 성금으로 깨끗한 선거를 치루고 있습니다."는 식의 광고를 포함한 여론 공세를 했음직하다. 작년 12월 18일자 기자회견문에서 노무현은 "국민 여러분은 가는 곳마다 돼지 저금통을 들고 나와 성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자발적인 청중들의 눈에서, 저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강렬한 희망을 보았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자신감 탓인지 "돈과 조직을 동원한 낡은 선거 방식도 힘을 잃었습니다."라는 단언도 서슴치 않는다.  


그러나 최근 언론에서 국민모금의 상징인 '희망돼지'는 그야말로 난타를 당하고 있다. 서프라이즈에 실린 노혜경의 비판대로 조선일보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면은 있을지 모르나, 기본적인 시각에 있어선 한겨레를 제외한 거의 전 언론이 동일하다. 정대철은 혼자서 잡혀들어가기가 싫어 민주당 대선자금의 실체를 암시했는데, 그것은 민주당이 이전에 발표한 국민모금과 기업헌금의 액수와 말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여러 가지 추측이 잇따랐다. 일단 대선자금의 규모부터 선관위에 신고된 283억에 불과할 리는 없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실 굳이 정대철의 실토가 아니었더라도 선관위에 신고한 금액을 곧이 곧대로 믿을 사람은 드물었을 것이다. 500억~600억은 될 거라는 기사도 있고, 어떤 호사가들은 이전처럼 양당 1000억은 되었을 거라는 말을 내뱉는다.


희망돼지 역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언론들은 대개 순수한 돼지저금통의 모금액이 4억 5천, 혹은 7억 5천 정도가 되었다는 사실에 타깃을 맞추고 있다. 민주당 재정국 관계자라는 사람이 ARS나 카드 후원금 중엔 뭉텅이로 들어온 중소기업 헌금도 있다고 말한 것이 그것에 대한 근거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노무현 지지자들의 반박이 있었다. 첫째 반론은 국민모금의 액수를 수억의 단위에서 다시 72억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국민모금 집계현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사람들이니, 이 주장은 상당히 타당하다. 둘째 반론은 수구 언론이 '희망돼지'로 상징되는 국민참여를 퇴색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있는 일'(그것도 '의미있는 있는 일')을 '없는 일'로 만드는 만행을 부렸다는 얘기다.


진중권을 비롯한 진보누리 논객들 역시 희망돼지 문제와 관련하여 노무현 지지자들의 논리를 비판했다. 이들의 주장을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액수에 대하여 그들은 노무현 지지자의 말보다 민주당 재정국 관계자의 말을 더 신뢰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둘째, 국민모금의 액수가 전체 대선자금에 비해 약소하기 때문에, 그것이 노무현 정권의 탄생에 별 역할을 하지 못했고, 또한 노무현 정권을 제약할 힘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셋째, 이처럼 제한된 힘을 '참여정치' 혹은 '희망'으로 과대평가하는 것은 민주당의 이미지 위에 포장지를 뒤짚어 씌우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 논의 초창기엔 대다수 진보누리 논객들과 비슷한 입장을 취했으며, 지금도 포지션의 기본적인 틀에선 동일하다. 그러나 진중권-노혜경 논쟁을 포함한 기타 논쟁을 지켜본 바로 약간의 수정을 가하여 입장을 새로 정리하게 되었다.

(민주당 재정국 관계자의 말보다 노무현 지지자의 말을 더 신뢰하게 된 것은 입장 변화의 구체적 내용 중 하나이지만, 이는 위에서 이미 언급했으니 재론하지 않는다.)


첫째, 나는 노무현 지지자들의 국민모금이 참여정부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노무현 지지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이것은 액수의 문제라기보다는 시기의 문제다. 사람들의 말을 듣고 다시 기억을 반추해 보니 국민모금은 노무현의 위기상황, 즉 김민석이 탈당하여 정몽준에게 합류한 시점부터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당시엔 노무현과 정몽준 중 힘이 쏠리는 사람이 살아남고 한 사람은 '아웃'될 수밖에 없는 시소 게임 정국이었다. 이 시점에서 노무현 지지자들이 보여준 뜨거운 열정은, 노무현의 지지도가 최악의 12%에서 18%까지 재상승하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냈으며, 결과적으로 노정 단일화 여론조사 (거의 가위바위보 해서 결정하자는 것과 별 차이가 없었던)를 만들어내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보면, " '희망돼지'로 인해 기업헌금도 들어온 것이다."는 노혜경의 주장 역시 이전에 생각하던 바와는 달리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돼지'를 단순히 민주당의 사기극으로 치부하려는 조선일보 등일부 언론의 적극적인 공세는 비판받아야 한다. '시민의 정치 참여'는 매우 소중한 일이고, 어찌되었건 '희망돼지'는 이를 내딛기 위한 첫걸음으로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희망돼지'를 물먹이는 건 언론이라기보단 오히려 민주당이라는 것이 나의 인식이다. 조선일보의 보도가 악의적이라고 하지만 민주당 재경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모든 언론의 보도가 돼지저금통에 집중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임종석 정도를 빼놓고는 아무도 이에 적극적으로 반론하지 않는다. 이는 어찌된 일인가? 내 생각엔 민주당 일각에서 정대철 때문에 늘어난 기업헌금 액수를 전체 선거자금과 맞추기 위해 희망돼지 중 일부를 중소기업헌금으로 치환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게 아닌가 한다.  

만일 사실이 그렇다면 여당에서조차 지원받지 못하는 노무현의 힘의 한계를 보여주는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어찌됐든 이런 사정을 수구언론이라든지 진보누리 논객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 노무현 지지자들이 보내는 분노의 화살은 우선적으로 민주당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넷째, 모든 상황을 고려해 볼때 진보누리 논객들의 희망돼지 비판은 취할 지점이 많다. 진중권 비판의 합리적 핵심은 '희망돼지'로 상징되는 국민모금이 현실 정치 공간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민주당의 과도한 선전은 이 사실을 가리고 국민참여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한껏 고양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공세라는 것이다.

(노무현 지지자들은 "우리는 희망돼지가 대선자금의 전부가 아닌 줄 다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반응한다. 하지만 민주당의 과도한 선전이 있었다면 그들 역시 '쇼'에 참여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애국자라 쓰면 독자들이 친일파로 알아들었고, 불령선인이라 쓰면 독자들이 독립투사로 알아들었다."는 조선일보식 변명과 뭐가 다른가?)

그리고 이러한 이데올로기 때문에 민주당의 개혁적 정체성과 쇄신 가능성을 지나치게 크게 평가하고, 소수정당의 가능성을 무시하는 행태가 나온다면 이는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내 입장 정리 중 넷째에 관해 사람들의 관심이 가장 클 것이므로, 이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적어보자. 어째서 나는 국민모금이 참여정부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노무현 지지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희망돼지'로 상징되는 국민모금이 현실 정치 공간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다는 진중권의 주장을 받아들이는가? 양자는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국민모금은 부도 위기의 '기업주 노무현'에게 재정을 지원해 주었다. 그러므로 노무현의 회생은 시민들의 덕이다. 달리 표현하면, 노무현은 시민들에게 은혜를 입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이제부터 5년간 기업에서 안정적인 오너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굴리는 돈의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이젠 국민모금의 규모가 노무현을 제약할 수준이 되지 못한다. 단지 '한번 은혜를 베풀었다'는 사실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희망돼지와 진보돼지를 단순 비교할 수 없다. 희망돼지는 부도 위기의 노무현을 구출하기 위한 일회성 이벤트다. 만약 정치자금법의 별다른 개정 없이 다음 총선에서도 희망돼지 분양을 포함한 국민모금이 계속 된다면, 나는 국민모금의 의의를 지금보다 훨씬 가혹하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기껏해야 전체 자금은 10-20% 정도 차지하는 모금은 민주당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영향이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일방적인 '짝사랑'이며, 이미지 광고에 이용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국민참여의 의의를 단지 상징으로만 가져가는 쇼가 될 뿐이다.


반면 진보돼지는 당원의 헌금에 의해 모든 정치활동이 이루어진다는 원칙 위에 서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다음에도 큰 의의를 가지며, 문제는 민주노동당이 성장하면서도 이 대원칙의 기본틀을 준수할 수 있을 것인가다. 따라서 우리는 "민노당의 껌값과 민주당의 껌값의 차이를 알려주시죠"라는 서프라이즈 눈팅의 질문에 간단히 대답할 수 있겠다. 민노당의 껌은 크기는 작아도 순도 100% 껌이고, 민주당 껌은 크기는 커 보이는데 고무가 80%쯤 섞인 것으로 추정되는 가짜 껌이기 때문이다. 아마 순수한 껌 성분의 크기로만 본다면 별 차이가 없지 않을까? 대선이나 총선 정국에서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국민모금과, 매달 3억이 확보되는 민주노동당의 당비. 비교는 독자의 몫이다.


노무현 지지자들이 지난 대선에서 국민참여의 한 전형을 보여준 것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제 현실정치 공간에서 '국민참여'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희망돼지식의 국민모금은 단지 지난번에 유효했던 것이지 지속적으로 유효한 이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도적인 보완과 문화적 혁신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인데, 이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면 민주당 쪽이 먼저 되도록 철저하게 대선자금을 검증(공개가 아니다. 대충 장부 맞추는 민주당의 공개를 누가 믿나.)받아야 한다고 본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아흐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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