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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열자?

조회 수 1011 추천 수 0 2003.06.27 13:23:00
진보누리의 세라핌이 쓴 글. 다시 읽어보니, '2만불'을 '3만불'로 바꾸면 지금(2007년) 얘기 하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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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불 프로젝트가 하나의 아젠다로 부상하고 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등 모든 일간지에 "2만불"이란 단어가 튀어나오고, 매일경제 등 경제신문은 2만불 달성을 위해 다시 뛰자고 외친다.


보아하니 이는 신문들이 만든 담론은 아닌 모양이다. 노무현 정권이 먼저 그것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선정했고, 이에 신문들이 화답하여 갖가지 분석기사를 써내는 중인가 보다.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95년을 기점으로 1만불을 넘어섰으나, IMF라는 악재를 거치며 8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대개 선진국들은 1만불 수준을 돌파한 후 가볍게 2만불에 진입하였고, 그러지 못한 나라들은 다시 후진국의 나락으로 떨어졌는데, 오직 대한민국만이 상당히 오랜 기간을 애매모호한 중진국의 위치에서 버티고 있는 모양이다.


이에 대한 보수층의 여론공세는 매우 황당하다. 결국 그들의 주장은 "남미 꼴 나지 않으려면 파업하지 말자, 기업주 말 잘듣자."로 요약할 수 있기 떄문이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은 미국 사회가 공포조성으로 인해 유지된다는 분석을 바 있다. 세라핌은 2만불 담론이 겉으로는 욕망을 자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볼링 포 콜럼바인>이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공포를 자극하는 담론이라고 본다.


과거 한국사회의 성장논리 역시 기본적으로는 공포의 논리였다. "빨리 덩치를 키워야 북괴에게 잡아먹히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빨리 빨리 움직여야 했다. 고성장 시대에 계층이동이 활발해지고, 따라서 내게도 기회가 올거라는 식의 자기위안을 하면서. 여기서 먼저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공포이며, 움직인 사람의 마음을 정당화시키는 것이 욕망이다.


2만불 담론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로또로 다시 환기된 사람들의 물질적 욕망을 자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공포를 내재하고 있다. "겨우 얻은 이 물질적 풍요를 뺏기고 싶지 않아."  가만히 서 있으면 후진국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선동이 실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그런데 2만불 프로젝트는 "2만불 시대"를 열 수 있을까? 정부 당국자의 말에 따르면, 2만불 프로젝트는 단순히 소득이나 올리자고 만든 프로젝트는 아니라 한다. 2만불 수준에 걸맞는 "삶의 질"을 구비하기 위해 애쓰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삶의 질이란 "2만불"이란 수치에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진정 삶의 질을 높인다고 의도했다면, 구체적인 다른 목표를 설정해야 할 일이다.  교육/의료 재정의 확충이라든지, 도서관 건립사업이라든지,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 목표는 하나의 질문을 은폐한다. 우리는 지금 1만불 수준의 삶의 질을 누리고 있는가?


한국사회는 반세기만에 산업혁명을 넘어 탈산업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그러나 반세기를 내내 지배했던 것은 성장의 논리였으며, "파이를 키워  나눠먹자"는 주장은, 아쉽게도 뒷부분에 있어선 거의 실현되지 못했다. (물론 워낙 파이가 커져 자동적으로 삶의 질이 상승하기는 했지만.) 그런데 2만불 담론은 의도야 어떻든 다시 뛰자는 주장이다. 경제신문들이 저토록 반기는 데에야.


저임금의 유지는 정말로 국가경쟁력의 기반이 되었을까? 현상적으로는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성장에 걸맞는 임금인상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기업들은 기업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압력을 받지 못했고, 이는 90년대에 한국기업들이 고전하는 커다란 요인이 되었다.


김대중 시절 한국정부가 해외로부터 "깡패"라는 비난을 들으며 구조조정을 해야했던 건 (재벌들의 반발에 밀려 제대로 하지도 못했지만) 그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2만불을 말하면서 기업들의 환골탈태를 말하는 목소리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노무현 정권의 야심찬 의도를 인정한다 해도, 그것은 단지 1만불을 성취했던 과거의 논리에 현재의 내용을 담아보겠다는 강박증에 지나지 않는다. 형식으로 있는 자의 비위를 맞추고, 없는 자의 반발엔 참신한 내용을 설명하며 동의를 이끌어내겠다는 식이다.


그러나 구태의연한 논리에 미래의 전략을 담을 수는 없다. "2만불 시대"는 "2만불"이란 구호를 통해서는 결코 오지 않는다. 그것은 그것과는 조금 다른 어떤 것이다. "땔감을 빨리, 많이 아궁이에 집어넣는" 식의 기업투자 전략이 지금도 통할 것 같은가? 그리고 설령 그러한 기획이 성공한다  해도, 그것이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 줄 것 같은가? 김영삼 정권은 1만불 달성을 위해 과열투자를 용인했고, 1만불 선 수호를 위해 IMF를 타개할 기회를 놓쳤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는가?


수치와 삶은 엄연히 다르다. 물론 그렇다고 계량화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서구에서 삶의 질을 담아낼 수 있는 지표를 잇따라 내놓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것은 정책의 참조점이 될 뿐이지, 그것 자체가 과제가 될 수는 없다.


삶의 질이 무엇인지는 생활인인 우리가 제일 잘 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정책이 우선이고, 그것이 지표를 향상시키는 게 정상이다.  더군다나 철지난 수치인 GDP에 국정 최우선 과제를 얽매는 행태는 그야말로 "구태"로밖에 부를 수 없다. 언제까지 자기 위안적인 수치놀음을 할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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