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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민주노동당적인 현실성

조회 수 851 추천 수 0 2003.12.31 14:54:00
진보누리의 아흐리만씨, 연말 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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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깨끗한 손'에서 이문옥 민주노동당 부패추방운동본부장의 서울 시장 선거를 돕고 있을 때의 일이다. 수많은 김민석-노무현 지지자들은 "이문옥 서울시장은 현실성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


여기서 나는 현실성이라는 말이 단지 하나의 뜻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말하자면 위 문장은 "이문옥 서울시장은 (이번 선거에서) 당선가능성이 없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으며, 또한 "이문옥 서울시장은 적절하지 않다. 서울 시정을 말아먹을 사람이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나는 전자를 '확률적 현실성'으로, 후자를 '잠재적 현실성'으로 구별한 바 있다.)


감사원의 5급 공무원 출신으로 서울시 감사를 4년이나 담당한 이문옥 선생에 대해 후자의 뜻으로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많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두 가지의 다른 뜻이 하나의 낱말로 사용되기 때문에, "현실성이 없다."는 말에 "당선가능성이 없다."는 말보다 더욱 부정적인 의미가 베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은 단지 이문옥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모든 활동을 두루뭉실하게 매도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인 수사가 된다. 이 수사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그것이 "(당장)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의미인지, "현실정합성이 없다."는 의미인지 구별하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1. 현실성이 없지. -> 2. 참 한심하지. -> 3. 찍어주면 안 돼. 라는 삼단논법으로 편리하게 이행한다. 대전제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도 모르면서.


그리하여 단지 "(당장)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너희들은 현실정합성이 전혀 없어." 쯤의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현실성이 없다."는 수사가 남발된다.


이러한 보수주의자들의 '매도'는 필연적으로 진보진영 일각의 어떤 편향을 발생시킨다. 보수주의자들의 의도적인 혼동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물론 우리의 정책이 당장 실현가능성은 없을 수 있겠지. 너희들이 정치권을 다 장악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현실정합성은 있다구. 그러니 자꾸자꾸 노력해서 쟁취해낼거야!"라고 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자들의 '매도'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이들은 "맞아. 우리는 현실성이 없어. 당선가능성도, 현실정합성도 없어. 그래서 우리는 멋있어! 잘났어!"라고 소리친다.


물론, 여기서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이 동시에 동의하는 '현실정합성'이란 현행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급진적인 진보주의자들은 바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며, 새로운 체제로서의 사회주의를 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새로운 체제'에 대한 전망이나 고민은 이 세상 무엇보다도 어려운 일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경제 체제의 변화가 어떤 개인이나 혹은 어떤 집단의 '기획'에 의해 일어난 적은 한 번밖에 없었다. 그 한 번에 해당하는 현실 사회주의 체제는 너무나 처참한 실패로 끝나, 사회주의를 옹호하려는 신좌파들은 거기에 '국가 독점 자본주의'라는 딱지를 붙였다. 그것이 자본주의를 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지 '새로운 체제'에 대해서만 말해야 하기 때문에 현행 체제 내의 진보활동을 비판하는 것은 "너는 왜 복권에 당첨됨을 믿지 못하고 노동을 하느냐."고 조소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것이 의미가 없다고는 볼 수 없으나, 활동의 전부가 되기에는 너무 협소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좌파의 역할은 1. 자본주의 체제의 사회적 성격(혹은 사회주의적 성격이라고, 혹은 공공적 성격이라고 칭해도 별 상관없을 것이다.)을 강화시키는 일과 2. 자본주의를 궁극적으로 넘어서는 대안 체제를 모색하는 일로 나눠볼 수 있다. 물론 두 가지 일이 모두 의의가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좌파 '정당'의 역할은 1에 중점을 두고 치우침이 마땅하다. 2는 주로 학문적인 영역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설령 그것을 정당 안에서 논의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논의를 근거로 1의 활동을 폄하하는 행위는 배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이 나아가야 할 길은 "당장의 실현가능성에 매몰되지 않는 현실정합적인 진보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을 우리는 수사학적으로 '민주노동당적인 현실성'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적인 시뮬레이션으로도 현실정합성을 지니며, 또한 서구 선진국에서 이미 성공적으로 실행 중인 많은 정책들이 있다. 물론 그런 정책들이 하나의 사회적인 맥락을 지니며, 한국 사회에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지 않는다는 사실은 김대중 정권이 추진한 의약 분업을 둘러싼 혼란에서 증명된다. 그러나 그러한 의약 분업조차도 항생제 남용 방지 등 원래 의도한 분야에서 일정 정도 효력은 거두고 있는 것으로 통계자료에 잡히고 있다. 그러므로, 이미 다른 사회에서 검증된 진보적인 정책을 우리 사회에 맞게 세심하게 적용하는 행위는 더 이상 '비현실적이다.'라고 부를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민주노동당적인 현실성'을 소리 높여 주장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러한 부분들일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러한 민주노동당적인 현실성은 단순히 정책 분야 뿐 아니라 인물 선정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노동당에 걸맞는 진보적인 현실성을 한국 사회에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물론 '진보성'을 기본으로 갖추는 것 이외에도) 국회의원 후보로 정책 마인드가 있는 사람을 내보내야 하고, 지방 관료의 후보로는 지역 사회에 관심이 있으며 관료제에 대한 적절한 이해능력이 있는 사람을 내보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단지 정파적인 분배에 따라 인물들을 배치한다면, 오히려 그 인물들이 당선되고 활동할 때에 민주노동당은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지도 모른다. 지금 새로운 정치세력으로서의 민주노동당에 쏟아지는 대중적인 관심을 민주노동당은 '민주노동당적인 현실성'을 통해 보답해야 한다. 정책적으로나 인물로나 가장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진보 정책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바로 그것이 대중들의 관심에 호응하여 민주노동당이 진정한 대안정당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보수주의자들의 '현실성' 매도를 이겨내는 길이다. 만일 민주노동당이 이 기회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진보적인 현실정합성마저 내던지는 급진주의적인 편향을 보인다면, 대중의 관심은 "현실성이 없다."는 보수주의자들의 매도에 다시 한번 묻혀 버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울산 북구 총선후보로 조승수가 당선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물론 현자 노조출신의 정갑득이나 김광식이 함량미달의 인물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역 사회 국회의원 후보로는 (노조위원장보다는) 시의원 때부터 지역사회에 공헌했고 바로 울산 북구의 민선 구청장으로써 높은 평가를 받은 조승수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정책적이고 행정적인 능력에서도 그러하고, 대중적인 인지도에서도 그러하다.


아마 많은 울산 북구 당원들은 주로 당선가능성에 큰 역점을 두고 조승수 후보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역시 현명한 선택이지만, 민주노동당을 지속적인 희망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이 시대가 민주노동당에 요구하는 '민주노동당적인 현실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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