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노무현 시대'는 '자유연상'이다.

조회 수 846 추천 수 0 2003.12.18 14:41:00
이 글은 옛날 내가 이글루스에서 [아흐리만의 POCET COSMOS]라는 블로그를 하던 시절, 그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물론 진보누리에도 올리긴 올렸지만, 블로그에서 파장이 더 컸다. 이 글을 계기로 나는 진보누리 뿐만이 아니라 블로그에서도 '노빠'들과 적대시하게 되고, 내 블로그는 무척 피곤해진다. 그 피로함은 이글루스 블로그를 닫는 계기가 된다.

읽어보니 틀린 말은 없다. --;; '노무현 시대는 민주화 시대의 완성'이란 평가보다는 훨씬 더 낫지 않은가.

-----------------------------------------------------------------------------------------------
노무현의 개혁의지만은 아직 의심하기 싫어하는 많은 노무현 지지자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이지만, 나는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지금의 노무현보다 훨씬 정치를 잘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보적인 시각에서 정책적인 면만을 봐도 그렇다. 이회창은 NEIS나 파병문제는 노무현과 비슷하게 처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단코 부안 문제는 그런 식으로 처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책을 보면 재미있는 분석이 있는데, 최근 한국사회에서 치뤄진 몇번의 대선은 매번 '박빙의 승부'였기 때문에, 승자는 정권 초기에 패자의 입장을 고려하는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노무현이 당선 이후 소위 '보수 회귀'의 움직임을 보인 것을 생각하면, 매우 타당한 얘기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이회창이 당선되었을 경우 한동안은 개혁성향 유권자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골몰했을 거라는 얘기도 된다. 그런 것이 민주사회 정치의 원리다.


개혁성이나 정책의 문제를 넘어 생각해보면, 노무현 정권이 보여주는 아마추어리즘은 도가 지나치다고 볼 수 있다. 측근들의 부패는 다른 정치인들과 차이가 없으므로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나 실무 분야에서 전문가도 아닌 청와대 386들이 전통적인 관료제 시스템을 살펴보지 않고 무대뽀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행태라든가, 툭하면 '대통령 못해먹겠다'며 '대국민 협박정치'를 행하는 것은 사상의 차이를 넘어 '미성숙'의 징후라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이회창과 한나라당은 그런 식의 미성숙을 보이지는 않았을 거라고 본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이 가지고 있는 왕자병이다. 그들은 마치 '최초' 병과 '의미' 병에 걸린 듯하다. 요새 노사모는 현재적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그들이 행한 '희망돼지' 사업을 옹호하는 데에 진력을 다하고 있다. 그것이 참여민주주의를 보여주는 '최초'의 표상이라는 것이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치참여로 만들어진 '최초'의 정당이라고 주장한다. 솔직히 말해, 기준이 뭔지 잘 모르겠다. 민주노동당 지지자는 시민에 포함되지도 않나? 노무현 지지자들이 모이는 인터넷 게시판을 가보면, 온갖 포스트모던 담론들이 노무현과 노사모를 치장하기 위해 활용된다. 정말이지 왕자병도 이 정도면 중증이다.


그러나 '노무현 시대'가 가지는 의의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노무현 정권의 공로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우리가 잘 활용하기에 따라 이 시대가 한국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회창이 통치를 잘했을 거라는 건 대충 이런 의미다. 당신이 방청소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이 방이 매우 더럽고 문제가 많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함부로 치부들을 파헤치지는 못한다. 이회창은 당신 방의 치부들을 조심스럽게 비켜가면서 서서히 방을 치우려는 사람이다. 이는 '개혁'보다도 보수적인 '개선'에 가깝지만, 온건한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방식이다. 그리고 이회창은 나름대로 관료제 시스템을 조율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노무현이 자기가 하고 있다고 믿는 일은, 이회창과 달리 자신은 더러운 곳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그것을 치운다는 것이다. 광신적인 노무현 지지자들도 그렇게 믿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치부를 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노무현이 지금까지 한 일에 더러운 곳을 파헤친 일은 있어도, 그것을 치운 일은 없다. 단순화시켜 정치자금 문제만 하더라도, 그 더러움에 아군이 발을 담그면 옹호하기 바빴으니까. (그런 식으로 해선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정치세력도 바로 그렇게 행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은 정말이지 좌충우돌하며 우리 사회의 더러운 곳들을 잘 파헤친다. 아니, 유아적인 땡깡을 부리며 치부들이 도저히 못 참고 스스로 드러나게 만든다. 혹은, 정치권 자체를 마비시킴으로써 홀로 독립된 검찰의 권한을 강화시킨다. 여하간, 그렇기 떄문에 지금 한국사회는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줄줄이 뱉어내는 중이다. 그러므로 노무현의 실력을 전혀 믿을 수 없다 하더라도 (나는 전혀 믿지 않는데) 지금 드러나는 치부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다음 시대에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파병에 나타난 외교부문에서의 심각한 대미 종속, 부안 사태에서 드러난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구조의 미확립, 새만금에서 드러난 반환경주의, 최근의 대선자금 수사에서 드러난 음성적 정치자금 문제 등에 대한 해법을 같이 고민할 수 있다면, 노무현 시대가 우리에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일종의 '자유연상'인 것이다. 노무현의 유아성과 미숙함은, 마치 정신과 의사 앞에서 환자가 자유연상으로 말을 뱉어내는 것처럼 한국 사회의 문제를 뱉어주고 있다. 물론 우리는 그 미숙함을 비판해야 한다. (나는 거의 비웃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정신과 의사가 되어 우리 사회의 증상들과 대면하는 일은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1 이문열씨, 노무현은 히틀러라구요? 하뉴녕 2004-01-29 1711
100 두 개의 민주주의 -노동당과 개혁당 하뉴녕 2004-01-20 1283
99 민주노동당, 욕심을 줄이고 실력을 키우자 하뉴녕 2004-01-15 843
98 놀아난 것인가, 결탁한 것인가. 하뉴녕 2004-01-14 947
97 대기업 노조 지지하는 민주노동당은 사회악이다? 하뉴녕 2004-01-02 1079
96 민주노동당적인 현실성 하뉴녕 2003-12-31 851
95 제 살 깎아먹는 민주당 하뉴녕 2003-12-24 865
94 민주당 vs 열린우리당, 그리고 유시민의 계산착오 하뉴녕 2003-12-24 1760
93 노무현 지지자들의 이중성과 그릇된 믿음에 대해 하뉴녕 2003-12-19 924
» '노무현 시대'는 '자유연상'이다. 하뉴녕 2003-12-18 846
91 강준만 - 유시민 논쟁(?)에 대하여 하뉴녕 2003-12-16 1850
90 선택과 복종 하뉴녕 2003-11-27 891
89 교실 붕괴, 그 후 3년 하뉴녕 2003-11-15 878
88 '왕당파'와 '파시스트' 하뉴녕 2003-10-16 1105
87 '재신임'과 '비판적 지지' 하뉴녕 2003-10-12 917
86 대통령 재신임 - 잘 쓰다가 망친 드라마 하뉴녕 2003-10-11 803
85 '양아치'의 시대에서 '건달'의 시대로? 하뉴녕 2003-10-10 902
84 강준만 교수의 '상대성 원리'에 대하여 하뉴녕 2003-09-29 905
83 니가 가라, 이라크! 하뉴녕 2003-09-22 826
82 인식의 나무 : 적자생존(適者生存) ? 생존자적자(生存者適者) ! [1] 하뉴녕 2003-09-19 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