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교실 붕괴, 그 후 3년

조회 수 878 추천 수 0 2003.11.15 14:32:00
이젠 교실 붕괴....그 후 7년인가? 제기랄. 진보누리의 아흐리만이 올린 글.
----------------------------------------------------------------------------------------------
나는 이른바 “교실 붕괴”라는 말이 요란하게 세상을 어지럽히던 시기에 고등학교를 다녔다. 흔히 말하는 “이해찬 세대”가 바로 내 일년 후배들이다. 왕년에 날렸던(?) 인물들도 세월이 지나면 “그 사람 요새 뭐하나-” 류의 후속기사를 써주는데, 교실이 붕괴(?)된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선 누구도 관심이 없다. 그래도 교육은 국가백년지대계라고 했거늘, 어이없는 일이 아닌가.


고등학교 재학시절의 나는 “교실 붕괴”라는 말에 매우 시니컬한 반응을 보였던 것 같다. 당시의 솔직한 심정을 직설화법으로 말하자면, “붕괴될 교실이나 있었느냐?”였다. 사실 교실 붕괴라는 어법 자체가 부당한 이데올로기를 함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교실 붕괴의 주된 화두는 “교권 침해”였는데, 이 그럴듯한 수사의 이면에 깔린 사태는 ‘체벌권의 약화로 인한 교사의 교실장악력 약화’였다. 한마디로 교사가 때리는 걸 방해하니 애들이 개기고 교육이 안 되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다른 종류의 권위가 아니라 순수하게 힘으로만 유지되는 국가가 민중의 저항에 직면해야 마땅하다면, 순수하게 물리적인 힘으로만 유지되는 교실 역시 붕괴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힘으로 제압해야 제대로 운용될 ‘교실’이라면, 그곳에는 ‘교육’이 있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고, 우리는 그러한 교실의 붕괴를 슬퍼하기는커녕 기뻐해야 하지 않을까?


잘못된 것을 파괴하는 행위는 당장 우리에게 무슨 대안을 주지는 못할 지언정 긍정적인 미래에 대한 기대는 가지게 한다. 그런 맥락에서, 사실 "교실 붕괴"라는 말의 이면에 숨겨진 이데올로기가 사태의 전부라면, 교실 붕괴는 환영해야 마땅할 일이었다. 그렇다면, "교사의 영이 안 선다"는 조선일보 류의 호들갑보다는 교사를 구타하는 중학생들이 더욱 이 시대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당신이 교사를 구타하는 중학생들을 옹호할 생각이 없으며 또한 단지 그런 종류의 돌발 사태가 문제의 전부가 아니었음을 인정한다면, 교실 붕괴라는 표현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교실 붕괴라는 어휘에 저항하던 사람들마저 이 어휘가 범하는 잘못의 층위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언젠가 딴지언론인가에서 보았던 ‘교실 붕괴’ 호들갑에 대한 비판은, 자신에게 배우는 학생들이 순진무구했다는 그야말로 순진무구한 경험담으로 끝나고 있었다. 물론 당시에 순진무구한 학생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 시기에 교사들과 (폭력을 배제하지 않는) 갈등을 즐기는 학생들이 유난히 늘어났던 것도 사실이다.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보수언론들의 호들갑의 원인이었던가.


당시 우리의 교실은 분명 무언가 징후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 징후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것은 ‘붕괴’도 아니었고, ‘언제나 그대로의 건전함’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우리는 교실 붕괴가 맞다, 아니다의 구태의연한 대립을 넘어 제대로 된 질문을 던졌어야 했다. 우리는 우리의 교실에서 도대체 무엇을 붕괴시켜야 하며, 도대체 무엇을 계승시켜야 하는가를 물었어야 했다.


그러한 질문이 없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교실 붕괴’라는 지나간 이슈에 대해 할 말이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교육 제도는 매년 보완(?)되고, 수능은 널뛰기와 파행을 거듭하고, 수험생들은 비유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매년 죽어가지만, 교실은 우리의 머리 속에서 붕괴되었다가 슬그머니 다시 이전의 위치를 찾는다. 차라리 “교실 붕괴”라는 이슈가 유행할 때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표피적인 관심이 그립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1 이문열씨, 노무현은 히틀러라구요? 하뉴녕 2004-01-29 1711
100 두 개의 민주주의 -노동당과 개혁당 하뉴녕 2004-01-20 1283
99 민주노동당, 욕심을 줄이고 실력을 키우자 하뉴녕 2004-01-15 843
98 놀아난 것인가, 결탁한 것인가. 하뉴녕 2004-01-14 947
97 대기업 노조 지지하는 민주노동당은 사회악이다? 하뉴녕 2004-01-02 1079
96 민주노동당적인 현실성 하뉴녕 2003-12-31 851
95 제 살 깎아먹는 민주당 하뉴녕 2003-12-24 865
94 민주당 vs 열린우리당, 그리고 유시민의 계산착오 하뉴녕 2003-12-24 1760
93 노무현 지지자들의 이중성과 그릇된 믿음에 대해 하뉴녕 2003-12-19 924
92 '노무현 시대'는 '자유연상'이다. 하뉴녕 2003-12-18 846
91 강준만 - 유시민 논쟁(?)에 대하여 하뉴녕 2003-12-16 1850
90 선택과 복종 하뉴녕 2003-11-27 891
» 교실 붕괴, 그 후 3년 하뉴녕 2003-11-15 878
88 '왕당파'와 '파시스트' 하뉴녕 2003-10-16 1105
87 '재신임'과 '비판적 지지' 하뉴녕 2003-10-12 917
86 대통령 재신임 - 잘 쓰다가 망친 드라마 하뉴녕 2003-10-11 803
85 '양아치'의 시대에서 '건달'의 시대로? 하뉴녕 2003-10-10 902
84 강준만 교수의 '상대성 원리'에 대하여 하뉴녕 2003-09-29 905
83 니가 가라, 이라크! 하뉴녕 2003-09-22 826
82 인식의 나무 : 적자생존(適者生存) ? 생존자적자(生存者適者) ! [1] 하뉴녕 2003-09-19 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