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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하긴 설마 내가 '재신임' 사건을 두고 글을 한편만 썼겠냐구.... 진보누리의 아흐리만이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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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내각과 청와대 보좌진에서 일괄로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10시 기자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반려하고 몇 가지 상황 설명을 했지요. 이게 현재까지의 상황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상황을 모두 TV 뉴스로 지켜본 후에 누리논객들의 글을 대강 읽었습니다. 여기에 제 의견을 간단히 첨부합니다.


일단 노무현 대통령이 1. 국민 투표의 방식으로 2. 아마도 총선 이전 즈음에 '재신임'을 묻겠다고 가정합시다. 왜냐하면 그러지 않는다면 노무현은 거의 희대의 사기꾼이 될 것이며, 그 수준은 김영삼/김대중을 능가한다고 일컬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기자회견의 내용으로 봐선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노무현은 나름대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그런면에서 홍기표, 허영구, 평검사 등의 노무현 비판은 정당합니다. 어차피 '현실적인' '재신임' 방법은 '국민 투표'밖에 없는데, 왜 애초에 '국민 투표'라는 방법을 명시하지 않은 걸까요? 그랬다면 '꼼수'라는 비판을 그나마 덜 들었겠지요. 뭐 시기까지 명기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습니다만.)


이 경우 히아신드의 말처럼 '재신임'은 이루어질 공산이 큽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처럼 100%는 아닙니다. 사실 영남사람들은 지금 '일년이라도 일찍 내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형편이니까요. 그리고 이왕 찾아온 직접민주주의 행사를 요식행사로 만들기 싫어하기 때문에 눈 딱감고 '불신임' 찍겠다는 사람들도 상당수 나올 거라고 예상됩니다. 어느 쪽으로 결과가 나오든 압도적이진 않을 것입니다. 이 경우 설령 재신임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히아신드의 생각처럼 노무현이 정국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제부터 그 이유를 말해보겠습니다. 먼저 원칙적인 부분을 정리하자면, 헌법적인 근거도 없이 최고 통수권자가 재신임을 묻고 나선 것은 아마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전세계 민주주의 사상 초유의 일일 것입니다. 이것은 '국민정서'를 중요시하는 한국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원칙적인 관점에선 '무책임한', '지극히 정서적인' 등의 비판이 가능할 테지요.


그러나 히아신드의 정세인식에 대해 반론하려면 그러한 원칙에 입각한 비판이 아니라 좀 다른 종류의 것이 필요하겠지요? 이 부분을 정리합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무현의 '대통령 재신임' 드라마는 잘 쓰다가 망친 드라마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어제 노무현의 '재신임' 발언은 지극히 비정상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충격에 빠져 대통령을 비난했지요. 이 정도야 뭐 얼마든지 바뀔 가능성이 있는 여론이지요. 실제로 오늘 아침 내각 총사퇴와 청와대 수석비서관 총사퇴로 인해 여론은 극적 반전을 맞이할 가능성을 찾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동은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이 단순한 '쇼'가 아니라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정말로 한번 더 투표를 해야하는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는 '현실'을 주지시켰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 내던지고 묻는다'는 자세는 일반 국민들의 정서에 어필하기는 좋은 접근 방식이었습니다.


노무현 정권의 인사들은 그 순간 '기성 정치인'과는 조금 달라 보였던 것이지요. '어이없는 일'을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일'로 바꾸어 놓은 순간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이 현금으로 100억을 받아먹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터라, 한나라당에 대한 불신이 가장 팽배해 있을 때 일이 터진 것도 주효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사건은 청와대가 민주당과 완전히 선을 긋고 있다는 것, '민주당' 역시 '기성정치인'에 포함된다는 것을 주지시키는 효과가 있었지요.


여기에서 노무현이 그저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하고 "국민투표로 빠른 시일내에 결정하겠다. 그동안 국정혼란은 최소화하겠다." 정도의 코멘트만 했으면 노무현에 대한 동정여론은 확산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차피 대안은 없다"는 생각에다, 정면돌파하려는 대통령에 대한 신뢰 (한국 마초들의 눈에 그는 심지어 박정희보다도 강단 있는 남성으로 비칠 수 있지요.)가 겹친다면 히아신드가 말한 그러한 효과가 일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노무 입이 방정입니다. 노무현은 기자회견을 안 하는게 좋을 뻔 했습니다. 그의 기자회견이 드라마를 모두 망쳐놓았습니다. 그냥 입 꾹 닫고 '책임을 통감한다. 재신임 하자.'고 갔어야 했습니다.


기자회견에서의 노무현의 발언을 간략히 요약해봅시다.

1. 사표를 반려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이 사퇴할 경우 국정이 운영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책임은 누구에게 있느냐? 바로 '나'와 '국정 정국'에 있다.

3. 국정혼란이 우려된다고? 지금까지 대통령 흔들어댄건 혼란스럽지 않았단 말이냐? 아무 이유없이 감사원장 자르고, 장관 자르고 하는게 혼란스럽지 않았단 말이냐?


최소한 말을 하려고 해다면 그는 1번만 말하고, 2번은 앞부분만 말했어야 했습니다. '국정 정국'이란 말이 나오는 순간, 그가 앞에 붙인 '나'라는 고백은 립서비스가 되어 버립니다. 방송사 기자도 바로 '우리 책임이 아니라 외부의 책임이란 얘기다.'라고 분석을 하더군요. 사실 이는 이어지는 3으로도 증명가능한 인식입니다. 이건 한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남탓' 논리입니다.  


한마디로 노무현은 오늘 국민 앞에서 자신이 열받아서 땡깡부리고 있다고 커밍아웃한 셈입니다. 내일 자 보수 언론들이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질 겁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크게 탓할 수도 없는 것이, 제가 보기에도 땡깡 맞거든요. 노무현은 측근을 무지 챙기는 '경상도 싸나이'입니다. 이게 이 사건의 심리적 요인이지요.


물론 그는 정치인이고, 이 심리적 '땡깡'을 정치적 행동으로 발전시킬 때엔 정치적 고려가 있었습니다. 바로 '통합신당'에 '대통령직'을 링크시켜서 배수진을 치겠다는 의도지요. 그리고 이 부분은 평가해줘야 할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국민들 앞에서 자신의 '심리'를 드러낸 이상, 사람들이 그 부분을 평가해줄 는지는 의문이네요.


그래서 그의 드라마는 용두사미로 끝나 버렸습니다. 결국 재신임은 아무런 의의를 지니지 못하고 '깜짝쇼'로 끝날 가능성이 커져버린 셈이죠. 그의 지지자가 결집되어 일시적으로 지지율이 올라갈 수는 있겠지만, 이 드라마로 흔들 수 있었던 반대자들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에 투표한 사람들) 을 흔드는 데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호남 역시 생각보다 냉정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재신임엔 노무현을 찍고, 총선에선 민주당을 찍을 수 있다는 거지요. 게다가 만일 '재신임'이 실패할 경우 받게될 타격도 온전히 노무현과 그 측근들이 책임지게 생겼습니다.


결국 일이 이렇게 된 이유는 그가 얼굴이 좀 두껍지 못하고, 드라마 작가의 기질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볼 때 그가 이 일을 '심리적 동기'로 시작했기 때문이지요. 정몽준이 자신의 '삐짐'을 정치적 명분으로 치장하는 데에 실패했듯이, 노무현도 자신의 '땡깡'을 정치적 명분으로 치장하는 데에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정몽준과 달리 노무현은 앞으로 한 두달은 이 실책을 만회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이런 가능성은 더 두고 보며 평가해야 겠습니다.


p.s

노무현의 발언이, '국민정서'가 원하는 '겸손함'에 배치될 지라도 '원칙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노무현 지지자들에게 한마디. 그 '원칙'을 처음부터 따지면 노통의 '재신임 쇼' 자체가 삽질임. 허영구의 주장이 옳음. 그러니 이왕 '감동정치', '정서정치'하려면 노무현 지지자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감동먹는' 수준의 드라마를 쓰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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