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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진보누리에 아흐리만이란 아이디로 올린 글. 실제로 이 글을 쓴 건 2002년 초다. 어딘가로 보내려고 썼던 원고인데, 살짝 어렵다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앎의 나무>라는 이름으로 재출간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책 정보를 삽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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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나무(아우또노미아총서 12) 상세보기
움베르또 마뚜라나 지음 | 갈무리 펴냄
인식의 생물학적 뿌리를 이해하기 위한 대안적 관점 인간 인지능력의 생물학적 뿌리를 살펴보는 <앎의 나무>. 오늘날 생물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과학혁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신경생물학자 움베르또 마뚜라나와 프란시스코 바렐라가 삶과 앎의 근본과정에 관한 자신들의 체계관을 일반인들도 알기 쉽게 처음으로 선보인 책이다. 지금까지 확실하다고 여겨온 것들을 떨쳐버리고 사람다움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새


깊은 밤, 희미한 불빛 아래서 알코올에 찌든 몇몇 친구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취객 특유의 과장된 어조와 몸짓으로 한 사람이 자신이 이전에 즐겼던 게임에 대해 말한다.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선언한다. "모두 즐거워했지." 그때 한 친구가 묻는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뭐?"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느냔 말이야." 곧 그는 자신이 타인의 기쁨이 아니라 그 기쁨을 표시하는 행동만을 확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단지 그들이 기쁜 척 했을 뿐이라면?" 취객은 침묵한다.....


인식은 몸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다. 당신이 느끼는 세상은 당신 안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지? 철학책 몇권이나마 곁눈질해 본 사람이라면 여기서 인식론, 관념론, 실재론 등등의 정리되지 않은 낱말이 어지럽게 떠오를 것이다. 이 이론들이 쓸모없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이것들을 쳐다볼 때 우리는 종종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다. 인식은 인간의 특권이 아닌 모든 생물의 작용이라는 것.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이 더 이해하기 쉽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물학에서 보다 쉽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인식의 나무' (움베르토 마투라나, 프란시스코 바렐라/자작아카데미/1995)는 그런 의문을 풀어줄 만한 책이다. 생물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인간의 의식과 정신의 영역에 이르는 이 짧은 책 한 권의 장정(長征)에 우리 자신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열쇠가 숨어 있다. 여러 모로 이 책은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을유문화사/1993)의 세계관과 비교가 된다.


이기적 유전자 상세보기
리처드 도킨스 지음 | 을유문화사 펴냄
과학을 넘어선 우리 시대의 고전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 선정, KBS 책을 말하다 방영 유전자가 진화의 역사에 차지하는 중심적 역할에 대한 논의를 담은『이기적 유전자』. 이 책은 진화생물학자인 저자의 책 발간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낸 기념판으로 인간은 유전자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에 불과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기적 유전자》에서는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는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이며 생명현상은 결국


굳이 지놈Genome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유전자의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기적 유전자'의 세상은 우리가 친숙하게 여기는 바로 그 세상이다. 도킨스는 많은 생명체가 나타내는 '이타성'을 설명하기 위해 이기적인 존재의 단위를 '유전자'로 설정했다. 이제 유전자의 이기적 욕구에 의해 설명되지 않는 생물의 '이타성'은 없다. 유전자는 영원히 살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증식한다. 모든 유전자가 같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니, 경쟁은 필연적인 것일 게다. 경쟁의 기준은? "누가 더 자연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가?". 이 경쟁에서 승리한 자가 살아남을 수 있다.(적자생존) 그리고 자연은 우량한 종자를 골라내는 농부처럼, 자신에게 잘 적응한 종을 보존한다.(자연선택)


도킨스의 이론은 정교하고, 타당하다. '이기적 유전자'는 여전히 힘써 읽어 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생물 활동의 일부분만을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는 유전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생명체를 기술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다른 부분은 어떻게 되는가? 이제부터 내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설명해 보겠다.


1. 농부들은 나를 먹이기 위해 곡식을 수확한다.
2. 노동자들은 내가 사용할 물건을 만들기 위해 노동한다.
3. 상인들은 내가 물건을 편리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매일 가게문을 연다.


세상 설명 끝. 정말 이걸로 끝이라면, 나는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유전자는 생명체의 설계도나 다름없는 중요한 부분이므로, 이건 맞는 비유가 아니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럼 다시 한번 해보자. 내가 세계를 정복하고 전제군주로 등극했다.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야 하는지 사회조직이론을 만들었다. 모든 이가 무슨 일을 해야하는 지, 모든 조직이 어떤 일을 해야하는 지를 지시하는 이론이다. 이 '설계도'만 보면 우리는 세상을 뿌리채 파악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나나 내가 만든 설계도가 세상이 아닌 것처럼, 유전자 역시 생명 그 자체는 아니다.


그렇기에 '이기적 유전자'는 생명의 특성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 도킨스의 세계에서, 생명체의 행동원리는 단 두 마디로 요약된다. 영생하려면, 복사하라! 그러나 상식적인 수준에서 증식은 절대로 생명의 기초 원리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증식하기 위해서는 이미(!!) 생명이 형성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식의 나무'는 증식주의(?)를 이렇게 논박한 후 생명의 정의를 세운다. '생물을 특정짓는 것은 말 그대로 끊임없이 자신을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이런 뜻에서 우리는 생물을 정의하는 조직을 '자기생산조직'이라 일컫고자 한다.'(p52) 단세포동물은 끊임없이 꼼지락거리며 스스로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행위에 참여하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세포의 모든 부분이다. 심지어 세포막조차도 생산물의 경계를 한정지음으로써 이 '자기생산'행위에 참여한다.


생명체가 '자기생산조직'이라는 데에서 우리를 생물학의 세계로 끌어들였던 애초의 문제가 드러난다. 생명의 '자기생산'은 자율적이며 역동적이다. 그것은 외부 세상과 상관없는 독립적인 세상이다. 그래서 우리가 생명체만을 관찰할 때 인식은 내 안에 갇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생명체는 바깥 세상에 '적응'해야 하지 않는가? 물론 그렇다. 그것은 생명체의 삶의 근본조건이다. 생명체는 죽음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 이 근본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래서 생명체는 환경과 상호작용을 한다. 바깥세상을 '인식'하고, '행동'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환경과 생명체를 동시에 관찰할 경우, 환경에 적응하는 생명체를 보게된다. 이때 자기생산조직의 내부 역동성은 아무 상관이 없다. 인식하는 세상은 바깥 세상과 똑같지는 않지만, 세상에 적응하는 데엔 별 문제가 없다. 잠수함 조종사들이 쳐다보는 계기판은 바깥세상과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암초를 무사히 피하지 않는가? 우리 모두는 각자의 세상을 내어놓지만,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면 한 세상을 살고 있다. 이제 의문이 풀렸다.


우리가 흔하게 범하는 오류는 생명체가 '적응'만을 목표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흔히 듣는 창조론자들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면, 왜 아직도 원숭이가 존재하는가?" 만약 이 질문이 의미하는 것이 옳다면, 어째서 세상에는 단세포생물이 존재하겠는가? '자기생산조직'은 삶의 근본조건만 채운다면 무슨 일이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아메바보다 자연에 '더 잘 적응'했다고 볼 수 없다. 아메바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은 그들의 적응력이 문제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연에 '더 잘 적응'하기 위해 다세포 생물이 된 것이 아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물은 이미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고 있다. 인간은 '더 잘 적응하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진화의 자연적 표류를 통해 우연적으로 생겨났을 뿐이다.


대영제국의 배를 타고 식민지 국가들을 둘러보며 쓰여진 그의 '종의 기원'은 다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애초부터 오용될 운명이었다. 19세기 사회진화론은 자연에 '가장 잘 적응한' 백인들의 세계 지배를 정당화했다. 인디언 학살은 '적자생존'이라는 말에 의해 합리화되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인간 세상에서 '생존경쟁'을 지고의 가치로 격상시키고 있다. 그들이 하나의 가치를 세운 것이지, 자연법칙에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쉽게 증명할 수 있다. '경쟁'에 패배해도 좀 다르게 살뿐이지 안 죽는 경우가 훨씬 많으니까. 이제 그들이 사회에 '적응'하려 하지 않는다고 당신을 비난할 때 당신은 뭐라고 말할 것인지? 나라면 이렇게 말하겠다.


"내가 살아있다는 건 '적응'했다는 거고, 적응한 이상 내 맘대로 살아도 되는 거지."


당신이 이렇게 말하는 순간 '경쟁의 승리를 통한 사회적 성공'은 '삶의 원리'에서 '추구할 수 있는 하나의 가치'로 강등된다. 그들은 아마 심하게 반발할 것이다. 그럼 이제 당신의 '가치'를 옹호할 차례이다. 성공할 수 있을까?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라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만 취객을 용서해야할 시간이다. 그는 타인의 기쁨을 같이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 역시 그와 함께 서로의 행동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서로의 기쁨을 '확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생명체는 환경에 적응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에게도 적응해야 한다. 이 '적응'을 통해 단세포 동물은 다세포 동물이 되기도 하고, 다세포 동물은 군집이나 사회를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를 이룬 우리 인간의 경우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은 '삶의 근본조건'을 채우는 수준을 넘어, '자기생산체계'의 근원에 침투하기도 한다. 감정의 교류는 많은 경우 진정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친구의 질문은 논리적이긴 해도 현실적이진 않다. 아마 취객은 정말로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해줬을 것이다.



mah0140

2011.05.05 10:41:40
*.38.137.143

도대체 왜 이런 좋은글에 아무도 리플을 달아주지 않았던거지
진짜 소름돋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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