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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탈레반에 대한 한국 정부의 협상의지에 환영한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한국 정부는 어느 국민의 기대보다도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선 ‘김선일 학습효과’가 정부의 행동을 규정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선일씨 피살 사건은 고통스러운 것이었고 한국 정부의 실패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었지만, 그로 인해 얻은 교훈이 이렇게나마 활용이 된다면 나또한 참여정부에 대한 해묵은 원한(?)을 조금은 떠내보낼 수 있겠다. 


사실 잡힌 사람의 숫자가 한 두명이 아니기 때문에 테러리스트와 협상을 하지 않기는 매우 어렵다. 정치적 성향으로 치면 한나라당 지지자쯤 되는 내 아버지도 한국 정부가 무조건 협상해야 한다고 말하고 계신다. 아버지의 논변은 나름대로 걸작인데, 이렇다.


1) 만일 한국 정부가 협상에 응하지 않는다면 탈레반은 (가령) 하루에 한명씩 한국인을 처형할 것이다.


2)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니고, 게다가 분산 격리 수용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로써는 그들 모두를 구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3) 한국 정부는 결국 아무리 잘난 체 해봤자 5명에서 8명 정도의 사람이 처형당했을 때 무조건 굴복하게 된다.


4) 그렇게 되면 한국 정부는 아무런 위신이나 체면도 지킬 수 없을뿐더러, 먼저 죽은 사람들만 억울하게 된다.


5) 그러므로 한국 정부는 무조건 협상해야 한다. .



철군 문제에 대해선 한국 정부는 더 협상할 것이 없으며, 탈레반 역시 이 점을 납득한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 죄수와 인질을 교환하는 문제에 대해선 한국 정부가 아프간 정부와 미국 정부와 협상을 벌여야 할 내용이지만, 그리 쉽지는 않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는 탈레반에게 위 사안이 한국 정부가 할 수 없는 내용임을 납득시킨 후 다른 방식으로 인질에 대한 보상을 해주겠다고 설득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과정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탈레반은 한국 정부의 협상의지를 알게 된 만큼 인질을 함부로 죽이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쉽게 풀어주지도 않을 것이다. 이 협상, 굉장히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민여론은 오히려 한국 정부보다도 억류된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 적대의 논거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이 사건의 원인을 기독교의 광신적인 포교활동으로 봐야 한다는 것, 전쟁의 포화로 뒤덮인 이슬람 국가에 가서 기독교 선교활동을 하는 것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이냐는 것.


둘째는 국가가 나름대로 위험지역을 관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권고를 어기고 떠난 이들이 과연 국가를 호출해 보호를 요구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


첫째 시각은 억류자들 개개인을 탓하기엔 충분한 관점이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범주인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완전히 놓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기독교 선교사, 테러리스트, 국가 에서 이미 언급했다.) 둘째 시각은 주로 첫째 시각에 대한 반론에 대한 재반론의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둘째 시각에서 문제삼을 수 있는 것은 ‘책임’의 정도일 뿐이다. 가령 교통사고가 벌어졌을 때 책임이 6 대 4냐, 7 대 3이냐를 판별할 때 쓰이는 잣대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며 일단 억류당한 이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국가가 노력해야 한다는 대전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저 잣대는 최악의 경우 국가와 유가족이 보상금의 액수를 두고 줄타기할 때나 등장할 수 있는 논리일 뿐이다.


한편으로는 ‘좌파적’(!)인 시각에서 그들이 받게 될 과잉대접(?)을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귤님의 글을 언급할 수 있겠다.


그는 이 사태를 ‘납치’의 맥락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2007년 여름에 아프가니스탄에 기독교 선교"라는 맥락은 그들이 "아프가니스탄 해방군"이며 ‘대민 심리전을 수행하는 민간인’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만약 조지 부시가 이라크에 갔다가 비슷한 상황을 맞이했다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 게 인지상정일까?”라고 묻고 있다.


이렇게 보면 꽤나 문제는 복잡해진다. 여러 층위의 질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그들을 ‘대민 심리전을 수행하는 민간인’이라고 볼 수 있을까라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제국주의 군대와 선교사들의 역할분담이 있었음을 지적하는 시각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이 문제도 두 가지로 나뉠 수가 있는데,


1) 과연 제국주의 시대의 선교사를 ‘대민 심리전을 수행하는 민간인’으로 규정하는 것이 올바를까?


2) 만일 그렇다 해도, ‘2007년 여름에 아프가니스탄에 기독교 선교’하는 한국인들이 그 범주에 속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1)에 대해서도 나는 ‘언제나 그렇지는 않다.’고 보는 쪽이다. 다른 나라 역사는 잘 모르지만 조선의 역사만 보더라도, 초기 기독교인들은 왕왕 외세의 힘을 빌려서라도 자신의 종교의 자유를 인정받으려 했고 그 결과 ‘대민 심리전을 수행하는 민간인’ 역할을 수행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조선 사회에서 기독교가 널리 퍼진 이유는 (적어도 초창기에는) 정치경제적인 요인만은 아니었다. 처음에 기독교를 수용한 집단은 당파싸움에서 패배한 일군의 조선 선비들이었는데, 그들은 성리학을 통해 형이상학적으로 계몽된 집단으로, 청나라에서 성경과 교리만을 접하고도 그것이 형이상학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되어 개종했던 것이다. 선교사를 ‘대민 심리전을 수행하는 민간인’으로 보는 관점은 문화사상사의 변동을 단지 물리적인 실체의 충돌의 반영으로 보는 관점과 연동되어 있다. 나의 경우 그 관점이 비록 어느 정도는 현실에 맞아 들어간다 할지라도 완전히 지지하지는 못한다. 그건 마치 ‘속류 유물론’이 어느 정도는 맞지만 또한 어느 정도는 맞지 않기 때문에 현실을 설명해내는 이론으로 취급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2)에 대해서도 나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21세기 초,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정부는 제국주의자라기보다는 ‘기회주의자’였다. 그리고 한국 정부의 권위를 우습게 여기며 선교활동을 해나간 분당샘물 교회의 정신머리는 제국주의자의 것이 라기보단 ‘시장주의자’의 것이었다. 그들의 선교활동은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이 파고들지 못하는 위험한 시장에 우리가 파고드는 것이 ‘비교우위’를 지닌다는 시장주의적 발상에서 연유한다. 그들이 한국 정부가 아니라 미국 정부의 의도에 부합했다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도대체가 중동의 이슬람 교도들을 기독교도로 개종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것이 '세계전략'으로 기능할 수 있을 수 있을 지 의심스럽고, 설령 그런 '세계전략'이 있다 하더라도 그건 너무나도 멍청한 것이니 거기에 '부합'을 따지는 것 자체가 우습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는 그들이 ‘대민 심리전을 수행하는 민간인’보다 훌륭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만도 못한 활동을 벌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문제로 넘어가면 이런 질문도 던질 수 있다. 둘째, 우리는 ‘대민 심리전을 수행하는 민간인’의 경우 살아돌아오기를 바래서는 안 되는 걸까? 귤님은 은연 중에 그들이 ‘대민 심리전을 수행하는 민간인’일 경우 “일단은 무사한 귀환을 바란다”가 상식적인 답변으로 기능할 수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설령 ‘대민 심리전을 수행하는 민간인’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무사한 귀환을 바라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가령 극단적으로 볼 때 그들이 아프간 침략군의 일원이라고 봐도 마찬가지다. 전쟁터에서 죽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만일 일단 포로의 몸이 되었다면, 우리는 그들의 무사한 귀환을 바래야 하고 정부는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상대방 집단에 대한 분개 때문에 포로를 학대하거나 학살하는 것은 제네바 협정의 인도주의적 정신에 어긋난다. 비록 그들이 아프간 침략군의 일원이라 치더라도, 그들은 조직의 명령을 받는 개인이며 ‘아프간 침략군’이라는 명사의 속성을 책임져야할 의무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다른 반론을 예상할 수 있다. 군인 포로는 자신의 의사로 전쟁에 참여한 것이 아니지만 (물론 돈을 벌기 위해 참여했을 수도 있겠지만 아프간 침략의 의도를 가지고 전쟁에 참여한 것은 아니다.) 선교활동을 위해 자원봉사를 신청한 사람들은 스스로 그 땅에 갔다. 이 점을 근거로 그들을 군인 포로보다 더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하는 집단으로 몰아부칠 수도 있다. 그래서 귤님은 ‘조지 부시’라는 비유를 동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쟁의 주체의 경우 가장 확실한 것은 조지 부시이니까. 책임질 주체를 끌어내는 방식에서 그보다 효과적인 것은 없으니까.


그래서 셋째, 우리는 일개인의 참여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맥락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걸까? 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분당 샘물 교회의 선교활동에 대해 비난을 하는 것은 (비록 그 행동이 그들의 무지의 소치라도) 정당한 일이지만, 개인에게는 어느 정도의 비난을 할 수 있는 걸까?


이것은 또 하나의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데, 귤님은 문제를 쉽게 지나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그는 그들을 “아프가니스탄 해방군”으로 지칭하면서 “이 점은 (표현은 좀 달리할지도 모르지만) 그들 스스로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논쟁상황에서 일종의 반칙이다.


선교사들이 생각하는 ‘해방군’의 개념과 정치적 해방군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은 그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선교란 근본적으로 ‘해방군’의 행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독교 자체의 멘탈리티를 비판한다면 모를까, 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아프간에 간 선교사들이 자신을 해방군이라 인지하고 있었다면, 그건 선교가 언제나 해방활동이기 때문이지, 아프가니스탄의 특수성 때문이 아니다. 그의 논의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기독교 선교사는 언제 어디서든 죽음을 각오해야 하며 국가의 도움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선교사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느냐는 문제는 교리 시간에나 다룰 문제이지 우리가 사회문제로써 토의할 일은 아니다. 아마 그가 하고 싶었던 논의는 1) 국가가 어떤 종류의 국민을 살리기 위해 애써야 하는가? 이거나 2) 세계시민적인 관점에서, 우리는 그들의 무사귀환을 바래야 하는가? 였다고 생각된다. 선교사의 의무에 관한 문제는 이 어디에도 끼어들 수 없는 문제다.


이런 상황들을 모두 고려해 본다면, 어떠한 교묘한 변설을 들이댈 지라도 탈레반에 억류된 사람들에 대해 "일단은 무사한 귀환을 바란다"라는 상식적인 답변을 거부할 명분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그러한 상식이 거부되는 상황은 ‘감정적’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러한 상식이 거부되는 지점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분석‘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pathfinder

2007.07.24 10:24:24
*.150.38.172

부시 말고 반전운동가를 대입해 보면 우리의 반응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탈레반이 서방국가에 대한 지렛대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든 인질로 삼을 수 있는 극단주의자들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물론 반미 또는 좌파라면 무조건 혐오하는 사람들이라면 - 일본 국민들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 동일한 논변으로 피랍된 사람을 비난하겠죠. 나라에서 하지 말라는 짓을 '자뻑' 실천으로 어겨놓고 구해달라는게 모순 아니냐고, 거의 이번에 기독교인들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동일한 언어로 비난을 할 거 같아요.

피아 구분이 지어지고 그에 따라 생명의 가치에 대한 감수성 또는 평가가 전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씁쓸합니다. 물론 이런 것이 위선이거나 정치적으로 의미없는 흐물흐물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요....

무사귀환에 대한 관심과 집중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한윤형님의 논지에 깊게 공감하면서, 그냥 드는 생각을 적어봤습니다.

하뉴녕

2007.07.25 11:20:37
*.176.49.134

반전운동가였(;;)다면, 정말 반응이 더 첨예했겠군요. 대신 전선(?)은 더 잘 그어졌을 텐데 말이죠.

노정태

2007.07.24 10:57:24
*.124.55.33

일단 결론에 찬성. 하지만 기독교의 전파에 대한 논변은 다소 톱니바퀴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한국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독특한 위치에 처해있는 것은, 정말 말 그대로 침략과 무관하게 스스로 학문적 연구를 통해 신앙으로 향한 거의 유일한 사례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거든. 물론 프로테스탄트 쪽은 나중에 선교사가 들어온 다음부터 씨앗이 뿌려지지만. 아무튼 한국의 경우를 제외하고 보면 대부분의 선교사는 심리전을 수행하는 민간인이었지. 심지어는 한국, 아니 조선에서도 그런 기능을 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없고. 천주교가 초기에 박해를 당했던 이유 중에 큰 부분이 바로 거기에 있으니까.

사실 그런 정도의 위험한 미션을 떠날 때에는, '유서를 써놨다'는 증언이 말해주는 바와 같이, 애초부터 목숨을 포기하는 것이 정상이야. 하지만 샘물교회 일당들은 바로 그 '목숨을 건다'라는 말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거지. 근대국가라면 그 이유가 무엇이건 자국민의 목숨을 구해야만 하는 것은 맞지만, 그들이 목숨을 내놓고 갔다는 사실 자체에는 변함이 없어.

그리하여 그들의 정신 세계가 '민간 심리전 요원'에 현저히 미치건 미치지 못하건,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렇게 해석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로 인한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어야 한다는 지적까지도 합당해. 다만 근대국가로 구성된 국제 세계에서, 국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국민을 구해야 한다는 당위 명제가 별개의 층위에서 또 다른 차원의 윤리적 자장을 형성하고 있을 뿐이지. 그리고 윤리적 문제를 선택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그 자체가 비윤리적인 행위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아무리 그들이 심리전을 펼치고 있었다고 해도 한국은 그들을 구해야만 하는 것일테고.

쿤둔

2007.07.24 16:39:51
*.117.248.129

노정태님 의견이 정말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뉴녕

2007.07.25 11:19:34
*.176.49.134

저도 노정태님 의견이 정말 옳다고 생각합니다..-_-;;

노정태

2007.07.25 14:03:13
*.124.55.33

저도 제 의견이 정말 옳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영

2007.07.25 15:21:08
*.138.147.134

저도 노정태님 의견이 정말 옳다고 생각할까요?

노지아

2007.07.25 16:02:49
*.149.21.227

그런 의미에서 술을 먹읍시다.

8con

2007.07.25 18:47:28
*.49.161.68

노지아님 그것은 비겁한 변명입니다

kritiker

2007.07.27 00:41:05
*.232.120.197

저도요'ㅇ')//

김대영

2007.07.27 08:39:57
*.138.147.134

8con님 의견이 정말 옳다고 생각합니다.

trotzky

2007.07.25 02:19:50
*.237.95.139

다양한 논쟁거리들에 대한 정리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일단' 무사 귀환을 바라는" 심정 면에서는 같은데 뉴스를 볼 때마다 속에서 울컥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도리가 없군요. 무사히 데려오기는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오히려 뭔가를 더 부추기는 꼴(물에 빠진 사람 구해 놓았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고사)이나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죠.

erte

2007.07.25 02:34:03
*.108.155.42

귤님 글보다가 댓글따라 와서 읽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아직 저는 생각해야 할게 많군요. 하지만 귤님이나 한윤형님 두분다에게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하뉴녕

2007.07.25 11:19:50
*.176.49.134

감사합니다. :)

이상한 모자

2007.07.25 18:48:02
*.98.177.215

야 님들 이보세요 무조건 내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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