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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김선일씨를 추모하며

조회 수 1112 추천 수 0 2004.06.23 01:09:00
이글루스 블로그에, 아흐리만이라는 아이디로 올렸던 글. 다른 사람 블로그에서 찾아냈는데, 아무래도 앞부분 몇문장은 잘려나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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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는 그들에게 “그래도 더 부시가 무섭다.”고, 단호하게, 신속정확하게 응답했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가. 자신들의 무서움을 보여줘야할 정치적으로 과격한 테러리스트들에게, 다른 대안은 없었다. 새벽 다섯시의 알자지라 보도에 대한, 오전 10시의 외무부 국방부의 “파병재확인 방침”이 나왔을 때, 이미 김선일씨는 죽을 운명이었다. 운명을 애써 인지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우리의 선량한 희망이었다.


많은 이들은 김선일씨의 죽음에 분노하며, 테러리스트들을 규탄하며, 테러리스트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전투병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기에 깔려있는 논리구조는 테러리스트들의 논리구조와 동일하다. 테러리스트들이 ‘한국’이라는 국가가 저지른 잘못을 ‘김선일’이란 개인의 잘못과 동일시했던 것처럼, 분노한 한국인들은 특정 테러단체의 특정인들이 저지른 잘못을 전체 테러리스트 내지는 전체 이라크인의 잘못과 동일시한다. 분명 대다수 한국인들은 민간인을 죽인 테러리스트들에게 반대하지만, 미군에 대항하는 ‘테러리스트’들의 정당성은 인정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몇 명의 부당함을 이유로 그들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우리는 그 ‘부당한 특정 테러리스트’를 가려낼 현실적인 능력이 없다. 테러리스트들은 단순히 미친놈이라서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이 아니다. ‘부당한 미국인, 한국인’을 가려낼 현실적인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총알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저 먼 옛날 도덕을 설파한 공자는 인(仁)의 핵심을 ‘능근취비’로 정의했다. 그것은 “내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주고, 내가 앉고 싶으면 남도 앉혀주는” 것이다. 내가 욕구하는 것이라면 남도 욕구할 것이니, 내가 욕구하는 대로 남의 말을 들어주라는 것이다. 이 말에는 유아론(唯我論)의 위험이 있으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욕구만큼은 인간에게 보편적인 욕구임이 틀림없으니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김선일씨는 분명히 우리에게 말했다. 죽고 싶지 않다고. 남의 생명만큼 자신의 생명도 소중하다고. 그러나 그의 생명은 목적으로 취급받지 못했다. 이라크 테러리스트들에게 김선일의 생명은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으며, 한국 정부에게도 김선일은 국가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나는 우선적으로 한국 정부를 규탄한다. 이라크 테러리스트들과는 달리, 한국 정부는 국민의 권익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공자로부터 2천년쯤 후에 서양 철학자 칸트는 비슷한 소리를 경험이 아니라 이성에서 끌어내려고 노력했다. 그에 의하면 윤리준칙은 최소한 “보편이 되도록 의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자는 주장은 보편적으로 의욕할 수 있다. 그러나 복수를 위해 이라크 테러리스트들을 죽이자는 주장은 보편적으로 의욕할 수 없다. 그것을 의욕하게 되면, 일단은 그 이라크 테러리스트들이 정당해진다. 정당한 행위에 복수를 한다는 어법은 없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복수가 아니라 추모다. 비이성과 야만에 대한 응시다. "내 아들이 그랬다면 파병반대하겠지만 국가적 차원에서는 아니"라는 분들도 칸트 선생의 지도편달을 받아야 한다. 칸트에 의하면, 그렇게 자기도 감당할 수 없는 문제는 남더러 감당하라고 아가리 밖에 꺼내면 안 된다.


이런 이성적인 언어들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이런 식의 소설을 써보자. 1977년의 어느날 동해바다에서 박정희가 원하던 대로 석유가 펑펑 나왔다. 남한의 국력은 수직상승했고, 미제 무기를 존나게 많이 사더니 어느날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침공하여 먹어버렸다. 북한 민간인 수백만이 살상되었지만 박정희는 구국의 영웅이 되었다. 소련, 중국, 일본이 군비확장에 나섰고, 통일한국은 동북아시아의 암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미들 파워 국가 때리기 전문인 미국이 나섰다. 미국 대통령께서 통일한국을 ‘악의 축’으로 선포하셨다. 소련 역시 그것에 동의했다. 코앞에 있는 군사강대국이 귀찮았기 때문이다. 미소가 합동으로 통일 한국을 쓸어버렸다. 제아무리 군사력이 강해봤자, 전쟁은 순식간에 끝났다.


미국은 처음부터 석유를 가져갈 생각이었다. 그럴려면 반드시 친미 정권이 들어서야 했다. 그래서 독재정권 부셨다고 자랑하면서도 민주정권 수립을 돕지 않았다. 민주제도는 박정희 때와 마찬가지로 요식행위였고, 멍청하고 미국 말 잘 듣게 생긴 놈들이 과도정부를 구성했고, 그 과도정부를 미국은 공인한다고 말했다. 식료품 부족으로 사람들은 박정희 때보다도 못 살게 되었다. 박정희를 숭앙하는 과거 군인들과 외세를 혐오하는 민족주의자들이 미군을 향한 테러에 나섰고, 미국은 그 테러를 막겠다며 걸핏하면 전투기로 폭격하여 민간인을 죽였다. 사람들의 심장은 싸늘해져 갔고 무슨 일이든 벌일 수 있을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저 멀리 한국을 잘 모르던 이라크라는 나라가 있었다. 미국의 지원 하에 이란과 싸워야 하는, 그런 나라였다. 미국이 이라크에 파병을 요청했다. 이라크인들은 미국의 전쟁이 침략전쟁이며, 그 요구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라크인들은 말했다. - 그러나, 이란이 코앞에 있는데 우리는 미국을 거부할 수 없다고.

어떤 이라크인들은 말했다. - 비록, 미국이 나쁜 놈이지만 전쟁광에 인권을 수시로 유린했던 독재자 박정희를 추모하는 한국인들도 한심하다고.

어떤 이라크인들은 말했다. - 미국이 정권을 전복했을 때, 통금시간이 사라졌다고 환호하는 한국인들도 있었다고. 그러니까, 이 전쟁은 정당한 부분도 있다고.


그래서 이라크인들은 일차 파병에 동의했다. 그러나 의료부대를 중심으로 보내 한국인을 규휼하는 데에 힘썼다. 그래서 한국인들 역시 이라크인들은 미국의 강압에 어쩔 수 없이 파병한 것이라고, 이해를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피부색도 미국인과 구별되지 않은가.


그런데 어느날 이라크의 전투병이 온다고 했다. ‘재건’을 말하지만 별로 부셔지지도 않은 과거 휴전선 근방에 온다고 했다. 재건이 아니라 유사시 있을지 모르는 남북한 테러리스트들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는 미국이 수립하고 싶어하는 미국의 괴뢰정부의 치안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였다.


한국 테러리스트들은 생각했다. - 저 이라크인들은 불쌍해. 미국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그들을 구출해야 돼. 그들은 미국을 무서워하고 있어. 깡패 미국에게 얻어맞을까봐 겁나는 거야.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에게 명분을 주자. 파병하면 미국이 아니라 우리 한국의 애국자들에게 얻어맞을 것이라고 말해주자. 그래서, 그들이 미국에게 울쌍을 지으며 파병에 대해 도리질을 할 기회를 주자. 우리, 이라크인들에게 윤리적인 행위를 할 기회를 주자.


....그리하여 한 선량한 이라크인들에 대한 납치가 이루어졌다. 테러리스트들은 통보했다. -24시간 내에 철군하라. 그렇지 않으면 이 이라크인을 죽이겠다. 그 행동을 한국인 모두가 지지했던 것은 아니었다. 성철 큰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이 테러리스트들을 방문해 그러지 말라고 말렸다. 그런데 이라크에서는 여섯시간이 지나기 전에 “그래도 파병은 한다.”라는 응답이 날아왔다. 테러리스트들은 놀랐다. 전체 한국인들 또한 놀랐다. 그들이 보기에, 그것은 이라크가 미국의 위협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한국에 파병을 한다는 증거였다. 세상에 이럴 수가 없었다. 도대체 우리 한국과 이라크가 언제 원수를 졌단 말인가.


그래서 다수 한국인들의 바램과도 상충되게, 격앙된 테러리스트들은 선량한 이라크인을 죽여버렸다. 그들 중에는 박정희 숭배자도 있었지만 순수한 민족주의자도 있었다. 그리고 설령 그들 대다수가 독재자의 숭배자라고 한들, 거기에서 미국이 옳다는 결론이 나오지도 않았다. 이라크인들의 인식은 한국인들은 슬프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라크인들은 한국인들의 처지를 생각하려 들지 않았다. 처형소식을 들은 그들은, 분노하여 이라크의 정예부대를 보내 한국 테러리스트들을 쓸어버리겠다고 펄펄 뛰었다. 그 말을 들은 한국인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


김선일씨를 생각하자. 그의 죽음을 기억하자. 서른 세살의 청년, 부산 빈민가의 8남매 중의 독남으로 태어나, 그 흔한 누나들의 지원도 받지 못하고 혼자서 세상을 헤쳐나가야만 했던 청년. 그러나 독학으로 대학을 세 번 들어갈 만큼 낙천적이며 열심히 세상을 살았던 청년. 눈빛은 맑았고 정신은 고상하여 목사가 되기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청년. 가난했기 때문에, 서른 세살까지 인생을 살기 보다는 인생을 ‘준비’했던 청년. 그는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5만원 짜리 쪽방에 살았다고 한다. 나도 그런 방에 산 적이 있다. 그때는 꽤 행복한 시기였다. 나의 경우 30대 초반에 그런 방에 산다면 정말 불행해 할 것 같지만, 김선일씨는 무척 행복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토록 낙천적인 그라도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보지도 못하고 머나먼 이국에서 남의 잘못으로 죽어갈 때는, 초연할 수 없었으리라.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였다는 그의 억울함을 기억하자. 국가가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때, 가장 먼저 죽어가는 이들은 그처럼 나약하고 선량한 이들이다.


그가 무엇을 원할지를 생각해보자. 그 순수한 청년이 내질렀던 절규를 기억하자. “당신들의 목숨이 소중한 만큼 나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절규를 기억해 보자. 그 외침을 우리 내면에서 보편적으로 승화시켜 보자. 선량한 이라크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이 뻔한 파병에 반대해 보자. 이라크인들의 의사로 민주정권을 수립하고 나면, 그 정권의 치안을 위해 파병할 수 있다고,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말해보자. 부시를 한번 거스른다고 나라가 망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자. 우리의 마음 속에 과도하게 들어차 있는, 미국에 대한 공포를 떨쳐내어 보자. 그리하여, 선량한 김선일과 선량한 이라크인을 화해시켜 보자. 그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일이 아닐까? 한국군에게 이라크를 떠나 달라고 외쳤을 때, 그의 외침인 진심이었다. (...)


말로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이것이 전부일 것이다. 이제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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