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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의원이 예의를 말하나?

조회 수 986 추천 수 0 2004.06.13 22:18:00
대통령 발언을 옹호한 (당시) 유시민 의원의 '아침편지'에 대한 반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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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의원께서 홈페이지 “아침편지”를 통해 내게 경제학을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다 읽고 나서도 나는 별로 배운 것이 없다. 내가 경제학을 잘 아는 것도 아닌데. 뭔가 이상한 소리만 잔뜩 들었을 뿐이다.


어떤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견해가 틀렸다고 말하는 건 좋습니다. 시각에 따라서 이해관계에 따라서, 우리는 같은 문제에 대해서 각자 다른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인식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비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비난입니다. 제가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향해 "그 사람들은 나와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사고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감정만 상할 뿐, 실질적인 대화를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견해가 틀렸다"는 좋은데,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나쁘다? 내 머리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전자는 비판, 후자는 비난? 유시민 의원 뭔가 말이 꼬이신 모양이다.


말이 꼬이실 수도 있는 거니까 그냥 네이버 뉴스에서 정리해준 대로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별하고, 그중 전자를 쓰도록 하자는 식으로 유의원의 취지를 이해해 보자.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건 진리에 대한 겸손과 상대방에 대한 예의의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사실 자신이 '옳다'라고 믿지 않으면서 남에게 논쟁을 거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자신의 옳음에 대한 믿음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다닌다면, 그건 무례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틀리다'보다는 '다르다'를 사용하는 것이 성숙한 인격을 나타내는 표징인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러나 맞는 건 맞는 거고 기본적으로 유시민 의원이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가정교사도 아닐텐데 남의 인격의 성숙까지 신경써준다는 건 호의로 그랬을 지라도 건방진 일이다. 인격의 성숙 문제는 사적인 것으로 가정에서, 교육현장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거론되는 것이 올바르다. 그 사람이 범죄행위에 준하는 행동을 하지 않은 이상 말이다. 유시민 의원은 대통령에게 "인식이 잘못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주 싸가지 없는 일인양 얘기하시는데, 그리고 본인은 민주노동당에게 그런 식으로 대한 적이 없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일단 후자가 의심스러울뿐더러 그런 식의 규율을 언어생활에서 지킨다면 우리의 언어는 몹시 팍팍해질 거다.


유시민 의원은 내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증오하는 이들의 '양심'에 대한 인식은 잘못되었다."라고 말한다면, "그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참인가?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양심에 대한 인식은 실제로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뭘까. 이 사례와 달리 유시민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인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논리를 옹호하면 되는 것이지 저렇게 쓸데없는 충고를 지껄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성숙한 인격은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도 지적할 필요가 있겠다. 나 역시 민주노동당쪽 사람들의 말이 세련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이유는 아직 한국 사회가 물리력의 레벨에서 많은 사회 문제가 결판나는 원시적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유시민 의원은 부안 주민들이 어떻게 얻어맞는지 동영상도 안 보셨나? 그런 폭력성을 한꺼풀만 덮어버리고 담론의 영역에서 ('말'로) 사회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있다면, 내가 먼저 앞장서서 우리 민주노동당 의원님들에게 "의원님, 기분나빠도 '틀리다'라고 하지 말고 '다르다'라고 하세요. 화술로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고 청중들에게 점수를 따세요. 그게 진짜 이기는 거에요."라고 충고드릴 것이다. 그런데 실상이 그렇지 않지 않은가?


지난 총선을 생각해 보면 유시민 의원만큼 무례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민주노동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다르다'라고 말하든 '틀리다'라고 말하든 그것은 상대방을 대화의 상대편으로 (좀 쎈 말로 속칭 '적'일지라도) 놓는 것이다. 그런데 유시민 의원은 민주노동당 표는 죽은 표라며, 아예 민주노동당을 '객체'의 위치로 전락시켰다. 보수 주체 한나라당과 개혁 주체 열린우리당 싸움의 향방에 의해서 평가해야 하는 주변변수 취급하셨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취급하는 그 행위야말로, 설령 선거전략상 가슴에 품고 계실지라도 발설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유시민 의원 본인은 탄핵 이전도 아니고 탄핵 역풍을 타 승승장구하던 저 열린우리당이 의석 몇석 뺏겨 과반의 지위를 위협받을까봐 두려워 그런 무리수를 범하셨지 않은가. 지금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유시민 의원만큼 절박하지 않을까? 거기에 대고 '틀리다'와 '다르다'를 강의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예의에 관한 충고를 하셔야겠다면, 그 충고를 들어야 할 분은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무현 대통령이야말로 일개 국회의원(유시민이든, 노회찬이든)보다 훨씬 더 특정한 이념지향, 정책지향의 층위가 아니라 통합적인 입장에서 사고하셔야 하는 분이다. 그런 분이 자신이 소속된 정당을 포함한 몇몇 정당이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정책을 명확히 반대한다면서 하는 소리가, "소신에 어긋난다. 반시장적이다."란다. 이 얼마나 '무례'한가. '반시장적이다'와 '시장친화적이지 않다'의 차이는 '틀리다'와 '다르다'의 차이보다 적지는 않을 것이다. 유의원은 교묘하게 시장친화적인 정책과 그렇지 않은 정책을 언급하면서, "반시장적"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을 지우고 있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게다가 그 소신은 바로 두달전 중앙일보 인터뷰를 통해 부동산 원가공개를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으며, 지금도 "소신은 소신이지만 설득당할 수도 있다"는 그러한 소신이다. 대통령께옵서는 도대체 '소신'이란 말의 용법에 대해 제대로 알기나 하는 것인지?


여기까지 쓰니 유의원이 "여기 또 노무현이 상고나왔다고 무식하다고 하는 애 있어요오오오~"라고 쓸까봐 겁부터 덜컥 난다. 하필 내가 유의원과 동문인 서울대다. 그런데 나는 '상고 출신' 대통령 김대중에 관한 갖은 욕 중에서 "김대중이 무식하다."는 욕은 들어보지 못했다. 한나라당 지지자라도 그런 말은 잘 안 하더라. 만약 누군가가 별 맥락도 없이 노 대통령에게 '무식하다'고 했다면, 그에게서 학벌 콤플렉스를 추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어느 발언에 대해 무식하다고 말한 모든 경우를 학벌 콤플렉스로 몰아간다면, 그건 매우 부당한 일일 것이다. 나는 노회찬 의원이 학벌 자랑하는 거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의 노무현 비판이 가방끈 자랑이라면, 이번에 쓰신 아침편지는 유시민 의원의 해외유학 자랑인가? 유시민 의원이 경제학 지식을 가지고 조중동과 민주노동당에게  '무식'하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다른 이도 자기 지식을 가지고 남더러 '무식'하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한 거다.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시는 것은 좋은데 좀 제대로 된 예시를 가지고 드러낼 일이다.


유시민 의원 아침편지에 대한 감상문을 대략 맺어야겠다. 그래도 명색이 경제학 강의였는데, 경제학 얘기는 하나도 못 써서 죄송스럽다. 그러나 그건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유시민 의원의 글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가졌어야 했다.

1. 시장친화적인 정책이 더 좋다.
2. 부동산 원가공개는 시장친화적인 정책이 아니다. (혹은, 원가연동제가 더 시장친화적인 정책이다.)
3. 그러므로 원가공개를 반대한 노통은 옳다.


그런데 유의원의 글에는 1과 3은 있는데 2는 없다. 대신 괜히 임대차보호법 끌어들여 '슬쩍' 민주노동당 까대는 부분은 있다. 희한한 구조다. 내 상식으로는 도대체 가격을 제한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원가만 공개하라는 '원가공개'가 왜 시장친화적인 정책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일정률의 이윤만 남기라는 원가연동제가 훨씬 더 시장에 개입하는 정책일 텐데, 원가공개 대신 그 정책을 추진하려는 열린우리당이 '시장친화적'인 이유도 모르겠다. "시장=건설기업"인가? 하여간 이런 얘기는 경제를 잘 모르는 내가 함부로 할 얘기는 못 된다. 유의원 덕분에 안 그래도 공부하려던 경제학을 빨리 배우려 한다. 멘큐의 경제학 2판을 기다리고 있었더니, 안 되겠다. 1판을 빌려서라도 봐야지. 머리좋은 청년을 경제학의 길로 인도했다는 점에서는 유시민 의원의 편지가 공익적 효과가 있었다. 단, "대통령 욕할 시간에 공부 좀 합시다."는 부탁은 못 받아들이겠다. 욕하는데 시간 얼마 걸리지도 않으니까. 유시민 의원의 다음 편지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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