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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로봇3원칙, 정당3원칙, 정파3원칙

조회 수 1053 추천 수 0 2004.05.31 22:08:00

이건 이글루스 블로그와 진보누리에 동시에 올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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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아시모프의 SF에 나오는 로봇들은 어길 수 없는 ‘3원칙’을 두뇌 속에 담고 살아간다. 숱하게 패러디된 이 원칙의 내용을 기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로봇은 절대로 인간에게 위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둘째, (첫째 원칙을 어기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셋째, (첫째 둘째 원칙을 어기지 않는 한,) 로봇은 자신의 몸을 지켜야 한다.


우선순위가 뚜렷한 이 세가지 원칙에 따라 로봇은 판단을 내린다. 이 판단은 직관과는 달리 쉽지 않다. 가령 ‘인간에게 위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보자. 위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는, 거짓증언을 통해 인간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행위나, 언어폭력을 통해 인간의 심리에 타격을 가하는 행위까지 포함될 수 있다. 법정소송에서 로봇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어 강력하게 명령을 내린다면, 로봇은 자신이 가하려는 위해가 첫째 원칙에 ‘어느 정도나’ 저촉되는지에 대해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 문제를 주제로 한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 (추리)SF소설로 “거울상”이 기억난다.


인간의 명령 역시 인간의 절박함을 어느 정도 담고 있는지에 따라 판단을 달리 할 수밖에 없다. 가령 어린아이가 장난스럽게 “어이, 로봇, 수영해봐!”라고 말했는데, 로봇이 2원칙에 의해 수영을 하다가 파손되었다면, 그 로봇은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래서 명령의 절박함과 파손의 위험성을 상대적으로 고려하여 로봇은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 문제를 주제로 한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 SF소설로는 “탑돌이”가 있다.


인간들은 대개의 경우엔 추구하는 원칙들이 어긋나도 어떻게든 자기정당화를 하며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두뇌 속에 선험적으로 의무명제가 각인되어 있는 로봇들은 그럴 수가 없다. 자신의 판단으로는 도저히 식별해낼 수 없을 정도로 원칙이 날카롭게 충돌하면,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들은 패닉에 빠지며, 어떤 경우엔 두뇌가 파손되어 버리기도 한다. 그것은 인간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자살해 버리는 경우와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장발장을 놓아주고 자살해 버린 자베르가 느꼈을 비애는, 휴머니즘을 제하고 생각한다면 원칙의 충돌을 경험하는 로봇의 심경과 동일하리라.


인간들이 로봇처럼 살기를 바라는 것은 순결주의 내지는 변태 취향이겠지만, 인간들이 만든 제도나 단체의 경우엔 그처럼 엄격하게 원칙을 준수하도록 해야 마땅하다. 로봇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은 인간들이 만든 도구이며, 스스로 목적이 되지 못하며, 따라서 그 효용성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엔 폐기되어야 마땅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로봇3원칙을 패러디하여, 정당에 대해서도 3원칙을 만들어 볼 수 있겠다.


첫째, 로봇은 절대로 인간에게 위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 정당에 있어서 ‘절대로’ ‘위해를 끼쳐서는 안’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이 로봇을 만들었듯이, 정당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민중 내지는 인민이라고 대답할 분이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물 자체’처럼 근원적으로는 올바르지만 파악하기 힘든 것이다. 실제적으로 정당을 규제할 근거는 오히려 민주주의 헌정에서 찾는게 올바른 것 같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당은 독일의 국가사회주의당처럼 민주주의 헌정을 뒤짚을 권리가 없다. 말하자면 “정당은 민주주의 헌정에 절대로 위해를 끼쳐서는 안된다.” 이는 다른 모든 원칙을 압도하는 ‘1원칙’이다.


둘째, (첫째 원칙을 어기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 정당이 ‘복종’해야할 명령을 내리는 ‘인간’은 누구인가? 이번에도 “민중이요! 인민이요!” 대답하는 분이 있다면 나는 그분을 딱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로맨티스트는 언제 어디서나 존중받을 권리가 있으므로, 그분을 비판하지는 않겠다. 여하간 내 생각에 인간이 로봇을 도구로 삼듯 정당을 도구로 삼는 사람, 즉 정당을 도구로 삼아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는 사람은 그 정당의 이념에 동의하여 정당을 만들거나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1원칙을 어기지 않는 한) 정당은 당원(+지지자)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2원칙’이 성립된다.


셋째, (첫째 둘째 원칙을 어기지 않는 한,) 로봇은 자신의 몸을 지켜야 한다.

-> 이는 “(1,2원칙을 어기지 않는 한) 정당은 자신의 존속과 성장을 의도해야 한다.”는 ‘3원칙’으로 쉽게 번역될 수 있다.


이 원칙들에 의거해서 현재의 정당들을 평가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가령 열린우리당/민주당 지지자들은 한나라당이 “과거 ‘1원칙’을 어긴 정당”, 따라서 “마땅히 사라졌어야 하는데 사라지지 않은 정당”이라는 이유로 비판한다. 그들의 비판은 올바른 구석이 있다. 그러므로 한나라당은 현존하는 정당 중에서 가장 비판받아 마땅한 정당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나라당이 순수하게 헌정위배 세력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현재에도 헌정 위배 세력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열린우리당의 한나라당 비판의 정합성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높지는 않다. 사실 그들의 비판은 현재의 동질성을 과거의 차이를 통해 극복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한편 열린우리당은 3원칙이 유난히 강한 정치세력으로 유명하다. 지난 대선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후보 단일화’는 명백하게 3원칙이 2원칙을 압도한 사례다. 그 후 민주당과 분당한 이후에도 열린우리당은 2원칙을 준수하기보다는, “당신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선 우리가 덩치가 커야 한다. 찍어라!”로 응수했고, 이를 통해 현재의 위치까지 오게 되었다.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은 민주노동당이 1원칙에 대한 확신이 없는 정당, 즉 극좌 혁명노선을 채택하는 정당이 아닐까하는 우려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노회찬 사무총장이 “한반도 영토조항 문제 빼고는 현행 헌법을 모두 준수한다.”라고 선언한 이상,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을 것 같다. 내 생각에도 한국의 문제는 헌법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을 '현실화‘하지 못하는 ’현실‘의 문제인 것 같다. 그리고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와 함께 가지 않을 때 존립하기 힘들다는 역사적 사례가 제시되었으니, 좌파들 역시 1원칙에 대한 감각을 확실히 세워야 할 것 같다.


민주노동당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2원칙을 3원칙에 대한 우월원칙으로써 잘 수호하고 있다. 당직 공직 분리안이 원안대로 통과한 것도 그 일환일 것이다. 가끔 (소위) ‘노빠’들은 “너희들의 노무현 비판은 잠재적인 지지층을 떨어뜨린다!”며 3원칙의 성장을 유도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포지션이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의 임무를 띤 이상, 설령 그것이 민주노동당의 득표에 손해가 간다 하더라도 수행하는 것이 올바르다. 반대 경우로 가령 국민연금 문제의 경우도 국민연금 제도에 올바른 취지가 있으며 운용에 문제가 있을 뿐이라는 주장이 합리적일 때, (이것이 사실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것은 순수하게 하나의 예시다.) 비록 그것이 민주노동당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지라도 원칙대로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민주노동당이 한국 사회에 존립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민주노동당의 경우는 ‘3원칙’에 대한 감각이 ‘너무’ 없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원내에도 진입한 이상 이 원칙은 우리가 우려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우리는 3원칙이 2원칙을 압도하는 일이 없는지에 대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봐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내부에 존재한다는 ‘정파’들도 같은 식으로 3원칙을 만들어 볼 수 있겠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 질 수 있는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민주노동당의 규율과 총괄적인 이념에 위배되지 말아야 한다.
둘째, (그것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파의 지지자들의 (이념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셋째, (그것들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파의 생장을 도모해야 한다.


이번 민주노동당 당직 선거 후보를 ‘세팅’했다는 정파들도 이 잣대들을 통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1원칙에 대해서는 민주노동당의 규율과 이념에 동의하는 정파만이 인정받을 수 있다는, 대원칙에 대해 모든 정파들이 합의해야 할 것이다. 2원칙 간의 갈등에 대해서는 상호간의 토론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각 정파는 1원칙과 2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3원칙은 원칙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민주노동당의 제 정파들은 당원들 앞에 제도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양성화된 정파들 간의 멋진 경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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