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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악마에게 영혼 팔기

조회 수 1768 추천 수 0 2005.08.17 01:46:00
카이만, 군인, 일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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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악마’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종류의 텍스트가 되었든) ‘대중성을 획득하자.’ 혹은 ‘대중의 취향에 맞추자.’는 기획자의 주장을 ‘악마에게 영혼팔기’로 비유해 보자. 이 비유가 설득력을 얻게 되는 이유는, 태어날 때부터 대중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혹은 그렇다고 주장하는- 이가 그런 주장을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 주장의 배경에는 창작자의 정체성(응?;;)과 시장의 논리가 방향이 전혀 다른 두 개의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니 그렇게 비유해도 무방하겠지.

먼저 가지게 되는 의문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우리들이 악마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악마는 뭘 원할까? 그는 어떤 것을 좋아하지? 여기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지 않고 악마에게 영혼을 팔려고 한다면 상도덕에 어긋난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쪽팔린 일로, ‘악마에게 팔려고 매물을 내놓았더니 악마가 안 사가더라~’라는 상황을 들고 싶다. 요새 악마는 위험이 될 만한 물건은 무조건 사서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고 보는 전국시대의 군주가 아니다. 그는 시장주의자다.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 당신은 그의 주목을 끌지 못할 것이다. 아니, 악마가 시장 그 자체다. 여기서 내가 느끼게 되는 점은 절대권력이 존재했던 시기에는 지식인(또는 예술가)이 영혼 팔아 부를 누리기도 훨씬 쉬웠다는 것이다. 한경태가 엄석대에게 하듯이 적당히 개기면서 “그래도 난 니 것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나도 모르지롱~” 정도 뉘앙스만 풍겨주면 악마는 돈 주고 영혼을 사가게 되어 있다. 그러면 영혼을 판 이는 심후한 자아성찰에 빠져들면서 가격을 다시 조정하면 된다. 그러나, 악마가 시장 그 자체가 되면서 우리는 악마의 욕망에 대해 언제나 의문을 느끼게 되었다. 악마에게 영혼팔기도 어려운 세상이 되었단 말이다.

이 점을 모르는 이들은 자신이 악마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기나 한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어떤 속류 대중주의자들의 경우엔, 그 자신감이 지나쳐서 도대체 그들이 대중을 존중하는 이들인지 대중을 ‘졸’로 보는 이들인지 구별할 수 없게 한다. 나는 대중성을 나쁘게 보지 말자는 강준만의 말을 존중해 왔다. 나는 대중적인 것도 하나의 재능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며, 그것 자체를 악으로 보거나 기피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성을 나쁘게 보지 말아야 하며, 오히려 그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한다는 강준만의 주장을 계승한 이들의 수준은 어떠했는가. 강준만을 존경하고 그 계승자를 자처하고픈 욕망에 넘치는 어느 필자는 그 ‘대중성’의 실례로 ‘조선일보 기자와 한겨레 기자의 사랑을 담은 연애소설’을 들었다. 안티조선 운동이 막 피어오르던 시점이었다. 그때 나는 고3인가 대학교 새내기인가 그랬는데도 그 글을 보다가 책상에 고개를 박고 구토할 뻔 했다.

그 필자가 연애소설을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대중성’을 말하는 이의 현실인식이 지극한 자기 판타지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기자와 한겨레 기자는 원수가 아니다. 그렇게 연애해 봤자, “로미오와 줄리엣” 안 나온다. 그들의 사이는 기자와 비-기자 사이의 거리보다 훨씬 가깝다.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국회의원과 일반인 사이의 거리보다 훨씬 가깝듯이 말이다. 통속적인 구도야 쓰는 이의 기량에 따라서 극복가능하다지만, 출발점이 저래서야 뭘 해 볼 수가 없다.

대중적인 이야기란 어떤 것일까? 그까지꺼 대충 A하고, B하고 C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거기엔 A, B, C의 요소가 들어가 있겠지. 하지만 그걸 집어넣는다고 모든 이야기가 히트치는 건 아니다. 그렇게 대충 히트작이 되려고 만들었다가 대략 쓰레기통으로 직행한 이야기들을 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 게다가 우리가 과연 악마의 욕망을 충족시킬 역량이 있는가도 문제가 된다. 나도 인트라넷에서 ‘허접한 소설’들을 보면 욕하지만 (그러면서도 보지만), 내가 허접함을 각오하고 쓰면 그리 쓸 수 있냐하면 그건 아니다. 몇 페이지 쓰는데 그들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며, 그나마 그렇게 길게 쓴다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건 또 별도의 재능이다. 그런 재능이 도대체 왜 존재하는지 목적론적으로 의문을 품는 것은 고상한 사람들의 자유겠지만. (나도 가끔 그런 의문을 품는다. 가령 내용도 없는 글이 무한정 길어질 때, ‘저 따위 재능이 존재한다니, 역시 이 세상은 목적론과 상관없는거야...’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영혼만 팔면 무조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나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겠다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충족시키고 싶어 하는 것이 악마인지, 그게 아니면 그 자신의 저열한 욕망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후자가 진실이라면, 차라리 후자임을 솔직히 인정하는 게 그 자신에게나 사회에게나 도움이 되리라. 주성치 영화가 하나의 취향으로 자리매김한 지난한 과정을 생각해 보라. 저열(?)하다고 대중이 다들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들을 보면, 대중성이라는 건 개별적인 텍스트 안에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의 일관된 시도를 포함한) 다양한 맥락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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