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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호의를 거절하는 것

조회 수 1880 추천 수 0 2005.08.10 13:58:00
카이만, 군인, 일병이었음.

어떤 분이 이 글 밑에다가 "거절할 권리...저도 갖고 있을까요?"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런 의문을 품는다는 것 자체가 그런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런 덧글에 대한 적절한(?) 응답은 북두신권류의 "너는 이미 죽어 있다."는 대사일 테지만, 차마 그렇게 대꾸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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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를 거절할 권리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은 그 사람이 '인격체'로 존중받고 있는 지를 판단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권리는 인간 이하의 것들도 누릴 수 있다. 노예제 사회에서 어떤 귀족들은 길을 지나가다가 주인으로부터 얻어맞는 노예를 보았을 때 눈살을 찌푸리며 그것을 저지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때 그 귀족이 느꼈을 감정은 주인에게 질질 끌려가는 마소를 보았을 때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그것만으로 그가 그 노예를 인격체로 대우했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 노예가 그 귀족의 호의를 거절했을 때, 자존심은 당신만이 아니라 나 역시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선언했을 때,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귀족은 그 노예를 진정으로 자신과 동등한 주체로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다.

어릴 적에 지겹도록 보았던 '부부싸움' 중에서 인상깊은 한 장면. 남편과 아내는 싸웠고, 모종의 폭행도 있었다. 이런 것을 싸움이라 불러야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어린 나는 그저 '싸움'이라고만 칭했으니 정명(正名)을 하지 못한 셈이다. 하여간 싸움이 끝나는 국면, 각자 다른 방에서 비비고 있던 시기에 남편은 나를 시켜서 아내에게 사과를 배달했다. 두세끼를 안 먹고 - 아내는 싸움을 할 때면 언제나 굶었다. 자기학대만이 힘이 약한 그 사람이 벌일 수 있는 유일한 시위였다. - 몇 대 맞기까지 한 아내가 그 사과를 받아먹을 기력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사과는 도로 돌려보내졌다. 중간에 낀 아이는 그럴 때는 참으로 난처한 지경으로, 접시에 그대로 놓인 사과를 들고 남편에게 돌아와서 엄마가 안 먹더라며 어물어물댔다. 그러자 발끈하며 아내가 있는 방으로 달려가는 남편. "먹어! 왜 안먹어!"라고 소리치며 사과를 억지로 입에 넣어주던 그 모습은 폭력에 만성화되어 있는 나에게도, '세상에서 가장 끔직한 장면'으로 비쳐졌다. 더 그로테스크했던 것은 그로 인해 싸움이 끝나버렸다는 것. '이렇게 살면 되는 거지 뭐.' 였던가, 하여간 그 비슷한 대사를 지껄이며 그 방을 퇴장하는 남편을 보며 아이는 '당신, 정말로 세상 편하게 사는 짐승이군.'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쯤되면 나뿐 아니라 다른 많은 이들에게도 웬만한 물리적 폭력보다 더 억압적인 폭력으로 비춰질테지만, 다른 것도 있다. 한 여자가 자신의 아이에게 사과를 준다. 하필 또 사과다. 아이는 먹기 싫다고 말한다. 진짜로 먹기가 싫었는지 아니면 엄마가 주니까 더 먹기 싫었는지 거기까진 기억이 안난다. 그러자 여자는 상처를 받고 부엌 어딘가에 가서 눈물을 흘린다. 이것도 아이에게는 폭력이다. 그런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겐 호의를 거절할 자유가 없구나.'라고 인식할 아이가 그리 많지는 않을게다. (불행하게도, 나는 그런 종류의 아이였다.) 물론 여자에게는 아이에게 그렇게 집착하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 그녀 역시 어떤 것에 대한 피해자일 것이며, 그 처지는 불쌍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그 아이에게 '억압'이라는 사태의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아이는 엄마를 어떻게 다루어야 될지 모른다. 특히 이 여자가 아까 그 아내와 동일인물이라면, 아빠를 말리지 못한 아이의 죄책감은 아이를 질식시킬 것이다. 자신의 주체성을 유지하면서, 엄마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길도 있기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현명한 길은 무척이나 어렵기에, 대부분의 아이는 마마보이가 되거나 불효자가 된다.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던 나는 그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후자를 택했다. 아니, 택하고 있다.

최근 몇 가지 사건에 대한 여러 사람의 여러 가지 반응을 보면, '호의를 거절하는 것'을 주체성의 척도로 받아들일 사람이 우리나라엔 많지도 않을 것이며, 설명해봤자 납득할 이도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느끼며 좌절하게 된다. 한국인들은 감정의 '시장주의자'다. 그들은 끝없이 감정을 유통시킬 것을 주장하며, 짱박혀 있는 이들까지 그 시장에 끌어들이려 한다. 거기서 쾌락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정말로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불쌍하다.

다행히, 나는 그 감정의 유통시장에서 어느 정도는 쾌락을 느끼는 편이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고르러 다니긴 했고, 군대에서는 다시 고를 수 없는 처지로 굴러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 시장의 룰을 대충은 알고 있기에 적응은 할 수 있다. 설령 '좀 이상한 놈'으로 인지될 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는 놈'으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일 소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거기서 전혀 쾌락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호의(?)를 거절하면서 자신의 주체성을 증명하기를 원하나, 그 시도는 언제나 '너 때문에 상처입었다.'고 주장하는 타자의 냉랭한 시선에 산산이 부서진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안쓰러움만으론 설명이 안된다.

한편 끝없는 감정의 유통은 그 시장에 참여하는 이들의 불평등함을 지워버리지만, 그것 역시 '호의를 거절하는' 행위에 의해선 극명히 드러난다. 말하자면 그 시장에선 호의를 거절할 권리가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뚜렷이 구분된다. 마음이 통했다고 사바사바한다고 해서 두 사람이 같은 레벨인 것이 아니다. 많은 경우 그 관계엔 사바사바를 그만둘 수 있는 놈과 그럴 수 없는 놈이 있다. 그러한 '유통'을 '소통'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 거기에 나의 괴로움이 있다. 물론 나는 술먹고 사바사바를 좀 좋아하는 축이라 겉으로 보기엔 내가 친구들이랑 하는 거나 일반적인 한국인들이 하는 거나 별반 구별이 안가지만 말이다.

당신의 호의는 내게도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가치를 지닌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 '호의'는 당신 혼자만의 것으로 붕 떠버릴 수 밖에. 이것은 내게 있어서는 상식 수준의 공리에 가까운 것인데, 이 놈의 나라에선 나의 호의를 네가 몰라줬다고 고발하는 담론이 설득력 랭킹 1위를 차지한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당신의 호의에 관심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게 '거절할 권리'만 준다면, 나는 '거절' 후에 당신의 호의를 내게 맞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니, 제발 나에게 거절할 권리를 주길.

p.s. 매우 '범상한' 일이고, 그래서 더 헛웃음이 나오지만, 갈굼 한번 '쎄게' 먹을 때마다 글 한편이 뚝딱이다. ^^;; 글감을 줘서 고마운 사랑스런 내 고참들. ㅋㅋ

lust

2007.07.06 19:43:49
*.126.102.232

군대가서 갈굼당할 때 쓴 글인가 보네요 ㅋㅋ
본문중 어느 부분이 저와 참 비슷해서 매우 공감이 갑니다'~'

로망롤랑

2007.07.09 13:40:48
*.143.52.8

상당히 글 재밌게 쓰시네요,
잘 쓰신다구요,,
재밌게 읽고, 링크 걸어 놓겠습니다.
제 호의에 관심이 없으신가요?
,,
마지막 부분은 이해가 잘 안가네요,,

"나는 당신의 호의엔 관심이 없다,내게는 거절할 권리와 자유가 있으니 내 자유대로, 거절을 한 후에,당신의 호의를 나에게 맞출 방법을 찾도록 할 것이다, 이것이 당신에게 제공하는 최소한의 내 호의다, 이런 나의 호의를 거절할 권리도 당신에게 있다, 제발 나에겐 거절할 권리가 있으니, 이를 알아달라,"

제가 이해하는 방법인데, 어떤가요?

하뉴녕

2007.07.09 15:22:38
*.176.49.134

네, 적절합니다. 좀더 단순하게 말하면 그저 "내게 거절할 권리가 있다는 것만 인정해 준다면, 나 역시 당신의 호의를 조심스럽게 대우할 수 있다."가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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