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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말아톤

조회 수 1047 추천 수 0 2005.07.29 16:39:00
카이만, 군인, 일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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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에서 제공한 프로젝터로 본 첫번째 영화. -_-;; 내가 훈련소에 있을때 개봉한 영화였던가? ssy가 보낸 편지에서는 평이 극찬까지는 아니어서 그닥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꽤 만족스러운 영화관람이었다.

그런데 장르가 전혀 다르건만 "태극기 휘날리며"가 연상되는 것이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을 간략히 언급한다면,

1) 민감한 소재를, (한쪽은 '한국전쟁', 다른 쪽은 '자폐아')
2) 매우 정석적인 방법으로 풀어낸다.
3) 그 결과 수용할 수 있는 관객층이 매우 넓어진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휴머니즘이나 가족주의는 기존의 반공 이데올로기의 입장과는 다르지만, 전쟁영화의 '정석'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것은 위험하면서도 위험하지 않다. 말아톤이 한명의 장애인과, 그 장애인을 억압하는 사회를 다루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장애인에 대해 부당한 얘기를 하지는 않지만, 그러면서도 누구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고 눈물만 짜낸다. 사실 이는 매우 힘든 테크닉인데, 많은 한국인들은 종종 사회운동을 하는 이들에게도 이런 '칼날 위의 균형'을 요구하기도 한다. 말아톤이야 관객만 많이 받으면 그만이니까 그게 가능하지만, '정치적 설득'이란 것이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는 좀 의문이다. 여하간 말아톤의 경우 그러한 대중성은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초원이 어머니의 고뇌와 갈등을 그려낸 부분은 '정석'을 넘어서 있는, 훌륭한 부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비판적인 거리를 취해본 적이 '거의' 없는 한국의 실정에서는 더욱 그렇다. 전반부의 "엄마는 자식이 좋아하는 걸 알거든요."와 조응하는 "애 속이요? 그걸 내가 알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같은 대사는 매우 잘 '기획'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것 역시 이 영화의 장점일 것이나, 결국 초원이는 마라톤을 좋아했다는 식의 해석이 가능한 결말은 역시 '진실을 너무 흉측하게 드러내지는 않는' 수준에 머문다. 하긴 이 영화의 결말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으니.

가끔은 그 '기획'이 영화에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다. 주연 배우 이미숙, 조승우를 제외한 다른 캐릭터들은 대체적으로 이마에 성격을 써붙이고 다니는 캐릭터로 보였고 생동감이 없었다. 가령 초원이 아빠 : 초원이 엄마와 초원이의 상상적인 관계에 염증을 느끼지만 이를 어찌 해결해야 할 지 모르는 무기력한 인물. 근본적으로는 선하다. 초원이 동생 : 엄마에게 소외되었다고 생각하여 반항적인 성격이 됨. 엄마에게 깨달음의 계기를 제공한다. 코치 :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이지만 그 후 술에 절어사는 위악적 인물. 초원이를 통해 다시 뛰는 즐거움을 깨닫고 친근감을 느끼며, 초원이 엄마와 신경질적으로 대립한다. 흠, 이정도면 '성격'이 아니라 '설정 자료집'인가? -_-;; 하지만 영화의 초점이 '엄마의 각성'에 맞춰져 있으니 나머지 캐릭터들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어 버리는 건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일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주연배우 조승우를 칭찬해야 할 듯. 바보처럼 보이면서도 언듯언듯 매력을 드러내는 그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의 설득력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많은 경우 우리가 장애인을 차별하는 (정서적인) 이유가 그러한 '매력의 결여'에서 나온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것은 이 영화를 성공시킨 '씁쓸한' 요인이다. 여하간 영화는 성공했고, 엔딩 크레딧엔 한국의 자폐아가 4만명이라고 뜨는데, 우리는 일상에서 자폐아를 천명에 한명 꼴로는 커녕 십만명에 한명 꼴로 보기도 힘드니 대한민국은 여전히 좋은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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