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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쿵푸허슬 : 종교와 어긋난 미학

조회 수 1244 추천 수 0 2005.02.03 09:15:00
<쿵푸 허슬>은 제가 입대하기 며칠 전에 감명깊게 본 영화입니다. 이 글은 102보충대에서 잠이 안 올 때 하던 생각을, 신병교육대에서 끄적거린 글입니다. 친구들에게 편지로 보냈지만, 인터넷에 공개한 적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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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의 시대는 갔어!" 영화에 처음으로 등장한 주성치의 대사는 간명하다. '축구'라는 보편적인 코드를 십분 활용한 <소림축구>를 통해 헐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입성한 주성치는 - 심지어 <소림축구>의 개봉시기는 월드컵과 그리 멀지 않았다! -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쿵푸를 세계인에게 전수하고자 한다. 모두가 쿵푸의 달인이 된 <소림축구>의 결말은 주성치의 적나라한 소망충족이다. 그렇다면 그는 <쿵푸허슬>을 통해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을까?

대답은 긍정적이지는 않다. 그 원인을 간명히 정리한다면 '종교와 어긋난 미학'이라고 표현할 수 잇겠다.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쿵푸는 주성치의 종교다. 주성치의 모든 영화는 이소룡에게 바치는 오마쥬다. 그러나 주성치가 이소룡에게 이르는 길은 무엇이었는가? 바로 그의 코메디가 아닌가?

코메디는 주성치를 지금의 위치로 만든 존재조건이다. 더 쉽게 말한다면,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먼 배우이자 감독인 주성치는 오직 코메디를 통해서만 쿵푸를 추구할 수 있었다. 오늘날 몇몇 사람들이 주성치를 작가로 인정하게 된 것은 그가 이소룡을 모방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이소룡을 모방한 특정한 방식 때문이다. 그 방식, 그의 코메디는 주성치의 텍스트를 둘러싼 실재의 주름이다. 그리고 그는 그 주름을 너무나도 솔직하게 표현하는 이가 아니었던가?

<쿵푸허슬>에서 주성치는 이제 자신이 전통적인 무협물을 헐리우드 식으로 각색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 듯하다. 그러나 '주성치표 코메디'는 여전히 간간히 모습을 드러낸다. 짧게 말하자면 양자는 그다지 조화롭지 않았다. 코메디는 스토리와 별 상관이 없고, 스토리는 문법을 너무 충실하게 따르다 보니 캐릭터를 사장시킨다. 몇몇 빛나는 캐릭터를 죽여버린 건 놀랍게도 주성치 자신이다("주성치가 필요없었던 주성치 영화"라는 노정태의 평가는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앞으로도 주성치는 싫든 좋든 그의 종교와 미학을 일치시키며 나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교황의 자리를 노린다면 오우삼이나 타란티노 등보다 주성치가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 앞으로도 그의 성공을 보장하는 위치는 "교리를 웃음거리로 만들면서도 교리의 권위를 강화하는 주교"다. 그리고 이 모순된 역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성룡처럼 코메디물에 쿵푸가 섞여 있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다.

<희극지왕>에서 주성치는 타르코프스키와 연기를 웃음거리로 만들면서도 거기에 권위를 부여한다. <소림축구>를 보면 도대체 그가 헐리우드의 특수효과에 찬탄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것을 조롱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도성>의 저 유명한 '모두 정상으로 돌아온 후 혼자 슬로우 모션' 신은 또 어떠한가.

주성치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건 범작에 불과한 영화 <천왕지왕>의 한 장면이다. 이소룡을 떠올리게 하는 노란 옷을 입고 적들을 제압한 주성치가 그들을 밟고 선다. 핀치에 몰린 악당이 주성치의 발을 이빨로 문다. 주성치는 펄쩍 뛰며 고통스럽게 소리친다. "아뵤―!" 이것이 주성치가 그의 우상을 공대하는 방식인 것이다.

<쿵푸허슬>에서는 이런 식의 종교와 미학의 통합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주성치가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작 속에서 몇 개의 수작과 수많은 범작을 일관된 기조로 생산했던 그의 과거를 생각한다면, 다음 작품 역시 기대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성치의 다음 작품들을 평가하는 잣대도 '종교와 미학의 통합'에 있다. 이것에 성공해야만 주성치는 한 명의 작가로서 자리매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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