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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교육정책에 대하여

조회 수 964 추천 수 0 2005.01.12 15:19:00
진보누리와 폴리티즌에 실명으로 올린 글. 입대를 1월 18일에 했는데 정말 직전까지 열심히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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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육문제에 대한 불만은 대학입시제도에 집중되어 있다. 안병영 교육부총리를 사퇴하게 한 사건도 수능 부정 사건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와 대학의 문제는 단지 교육제도의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다. 많은 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성인이 된다. 그들은 노동자가 되거나, 대학생이란 이름의 예비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대학입시제도가 문제라면, 그것은 대학입시제도의 개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사회문제이며, 사회문제의 층위에서 사고되어야 한다.

대입문제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당론은 전교조의 것과 마찬가지로, 국공립대 대학 통폐합과 통폐합된 대학에 대한 무상교육이다. 이는 적어도 대입문제가 사회문제라는 것은 인식하고 있는 견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직선적 인과론에 근거해 문제의 원인을 지적하고 그 원인을 때려잡으려는 경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단순한 것이다. 이런 정책은 실행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적을지 몰라도, 불필요한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는 의도와는 상관없이 마땅히 던져져야 할 질문들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나는 민주노동당의 당론을 보완할 수 있는 몇 개의 질문들과 거기에 대한 간략한 답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대학의 목적

기본적으로는 "대학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던져져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학문을 하기 위해서거나, 중등교육 수준에서 제공하지 않는 직업훈련을 받기 위해서다. 둘 중 무엇이 우선인지는 말하지 말기로 하자. 그 자체가 엄청난 논쟁거리이거니와, 일단 두 가지가 모두 합당하다면 거기서 굳이 우선순위를 가려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대학의 목적이 위 두 가지라면 이 목적에 상관없는 이가 대학에 가는 것은 커다란 손실이다. 첫째로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등록금의 손실이 되고, 둘째로 사회적인 관점에서는 4년간의 젊은 노동력에 대한 손실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대학은 "어쨌든 가면 안 가는 것보다 좋은 것."으로 인식되어 있고, 때문에 대학에 가는 인구가 너무 많이 불어난다. 이러한 관념이 고실업시대의 현실과 충돌하다 보니 4년제 대학 졸업자가 다시 전문대에 입학하는 촌극도 벌어진다. 이것은 사회전체가 교육부분에 있어서 일종의 낭비지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어떤 이들은 기업의 입장에선 대졸자를 뽑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대졸자가 고졸출신보다 똑똑할 확률이 많기 때문이란다. 그건 맞는 말이다. 개인의 입장에서 대학을 가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 것만큼이나 맞는 말이다. 기업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은 반드시 대학을 가려고 노력한다. 내가 말하는 것은 모든 이가 이렇게 행동할 때에 발생하는 사회적 손실이다. 대학을 다닌 이가 더 똑똑한 것은 아마도 사회적 의사소통에 있어 고교생보다 더 유능하다는 것 때문일 게다. 하지만 '사회적 의사소통'을 배우는 데에 4년이란 시간이 모두 의미가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고졸이라도 1년 정도 근무하면 자연스럽게 최소한 그 회사에서 통용되는 사회적 의사소통은 배우게 된다. 이렇게 계산할 경우 각 주체는 모두 손해를 보는 것이다. 손해를 보면서도 남들이 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계속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대로 만약 대학을 다녀야 할 목적이 합당한 사람만 대학을 다닌다고 가정한다면, 개인이나 회사 모두 이익을 얻게 된다. 시간이나 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국가가 할 일은 잘못된 상황을 제도를 통해 보완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에게 문제점을 인식시키려면 먼저 시민사회의 차원에서 운동이 필요하다. 최근 각 기업의 입사지원서 상의 차별조항을 없애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민주노동당은 바로 이 운동이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일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운동은 대개 국가인권위원회, 여성부, 노동부, 법원에 대한 꾸준한 청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운동을 지원하면서 민주노동당은 특별한 직업교육이나 전공없이 가능한 업무에 대해선 고졸할당제를 추진하는 등의 정책을 계발해야 한다. 목적은 일단 필요없는 대학생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다. 그것이 공익에 부합하며, 교육정책의 여지를 넓혀준다.


대학의 분화

다음으로 해야할 일은 앞서 언급한 대학교의 두 가지 목적에 분리해서 대응하는 것이다. 물론 무상교육이라는 이념은 소중하다. 하지만 장래가 보장되는 로스쿨이나 의과대학에까지 전액 국고보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납득하기 힘들다. 물론 거기에도 계급문제가 있을 것이나, 그들은 장래성이 있기 때문에 학자금 대출을 받아 공부하기가 쉽다. 로스쿨이나 의과대학의 문제는 노동계급의 자녀가 다니기 힘들다는 것이 아니라, 입학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대학들에 대해 전액 국고보조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세수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당하다.

유시민은 언젠가 "돈 되는 대학은 모두 (시장에) 팔아넘기고, 안 되는 대학은 국유화하고 매우 싼 학비를 받는 것이 대안"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내가 언급한 "두 가지 목적에 분리해서 대응하는 것"에 부합하기는 하나, 조금 단순하고 천박하다. 왜냐하면 '돈 안 되는 대학'과 '돈 되는 대학'을 가리는 기준은 단순히 학과의 이름에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경영대학을 생각해 보자. 아마 유시민의 입장에서 경영대학은 '돈 되는 대학'일 것이다. 그러나 경영대학에서도 고급 직업훈련을 받으려는 경우와, 경제학을 학문으로 연구하려는 경우가 분리될 것이다. 한국에선 후자가 없다시피 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만약 "학문으로 연구하는 이에겐 학비가 공짜다."는 원칙이 선다면, 직업훈련으로써의 경영/경제학이 아니라 학문의 대상으로써의 경영/경제학을 공부하려는 이들도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경영학의 경우 순수학문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는 조금 의문이 들긴 하는데, 일단 제껴두자.) 이공계의 경우도 특정한 분과학문들은 고급 직업훈련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물리학이나 화학의 경우는 거의 순수학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시민의 대안은 고민을 덜한, 성근 대안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학과가 같다고 하더라도, 학문을 위한 대학과 직업훈련을 위한 대학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자는 국가가 전액 학비 지원을 해주고 후자는 예비노동자들의 예상수익에 맞춰 적당한 학비를 책정하면 된다. 이렇게 말하면 가령 물리학이나 경제학 같은 분야에서, 학문을 위한 대학에서 싸게 공부하고 직장으로 쪼르르 달려가는 놈들을 어떻게 처리할 거냐는 의문이 들거다. 아무 문제없다. 그런 이들은 지금까지의 학비를 소급해서 국가에 반납하면 된다. 석사과정이든, 박사과정이든, 지금까지 보조받은 학비를 모두 뱉으면 된다. 직업훈련을 위한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들이 받을 수 있는 학자금 융자의 이율에 준해서 말이다. 그러면 만일 어떤 이가 학문을 하다가 도중에 진로를 바꾸더라도, 그는 처음부터 직업훈련을 받았던 것처럼 살 수 있다. 국가도 개인도 전혀 손해를 보지 않는다. 이를 위해선 국가의 학비 보조가 "(학문)대학이 공짜"라는 식이 아니라, "등록금이 얼마인데, 이를 국가가 장학금으로 전액 보조해준다."는 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역시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성격상 절대로 직업훈련을 위한 대학은 될 수 없는 대학들이 있다. 가령 인문대학처럼. 이런 대학은 (무엇 무엇을 포함할지 충분한 논의를 통해 결정되어야겠지만) 직업대학과의 분화없이 그 자체로 학비를 보조받는 것으로, 말하자면 원래부터 학비가 공짜라는 식으로 해도 될 것 같다. 직업교육으로써의 차원이 없는 학문을 공부하는 이는 어차피 소수일 테니, 국가가 그 정도는 보장해줘도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리는 사회에선 가령 인문학을 공부하고 취직을 원하는 이는 취업시장에서 사실상 고졸과 비슷하게 취급받을 테니 말이다.

여하간 이런 식의 기조를 두고 정책을 짜면, 논의과정은 복잡해지고 시행은 오래 걸리겠지만 국공립대학을 통폐합하고 등록금을 무료로 하는 것보다 훨씬 세금이 적게 든다. 그리고 제반상황을 개선했기 때문에 제도의 효과도 훨씬 더 클 것이다.


대학생 선발 

여기까지 오면 대학생 선발은 큰 문제가 안 된다고 볼 수 있다. 현행 교육제도에서 대학생을 선발하는 방법은 내신과 수능인데, 내신의 경우 고등학교의 거의 모든 시기를 성실하게 지내야 한다는 점에서 비인간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고, 수능의 경우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학들은 선발의 자율화, 즉 본고사의 부활을 외쳐왔다.

지금의 현실에서 대학의 선발이 자유화된다면 그것은 학벌사회의 심화를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대학생의 숫자가 줄고 대학의 두가지 성격이 분리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다르다. 대학은 선발의 문제에 있어서 상당한 자율권을 행사해도 별 상관이 없다.

특히 학문 분야의 대학은 "가르치는 이들이 스스로 제자를 뽑아라."는 기본적인 원칙에 충실해도 될 것 같다. 약간의 자격제한과 약간의 시험으로 5배수 가량의 학생을 뽑은 후 직접 면담하면서 '될성부른 떡잎'을 뽑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는 학자들에겐 매우 행복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가 후학을 기르기를 원하는 학자라면 말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학문 분야의 대학에 오는 학생 수가 지극히 적을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성립할 수 있는 제도다.

직업훈련분야 대학의 경우도 1) 고등학교 자격시험과 2) 내신등 서류전형, 3) 대학의 자율적인 추가시험을 통해 선발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국가가 어느 정도 개입하고 싶다면 1), 2), 3)의 비율의 한계를 공시하면 된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정책이란 기본적으로 기조와 현장경험의 조화를 통해 생산되어야 할 것이다. 나의 견해는 민주노동당의 간단한 견해를 좀더 복잡한 것으로 대체해 보려는 시도다. 그러나 이 역시도 개인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현장의 경험과 만나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글을 써야 했던 이유, 나 개인의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민주노동당의 많은 정책부문이 교육정책과 마찬가지로 단순화된 어구 이상의 것을 못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민주노동당이 동원할 수 있는 노동력의 한계일 테고 한동안은 이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니, 최소한 교육정책처럼 매우 중요하면서 또한 여러 사람이 개입할 수 있는 문제는 더 많은 이들이 갑론을박하며 올바른 기준을 세워나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것도 당원으로써 당에 기여하는 방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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