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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알라딘에 올렸던 서평이다.


서양 윤리학사
로버트 L. 애링턴 지음, 김성호 옮김 / 서광사 / 2003년 8월
 

이 책은 발간되자마자 윤리학 입문 수업의 강의교재로 각광받았지만, 철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 (철학에 관심있는 생활인이나, 철학과 학부초년생들)에게도 좋은 책이 될 수 있다. 거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이 책은 몇몇 부분에서 대가들의 저서에 대한 훌륭한 요약본이다. 2장 플라톤과 3장 아리스토텔레스 부분은 사실상 <국가>와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요약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국가>가 무엇을 말하는지 인식하기 힘들었던 이들은 이 책을 보고 다시 <국가>를 읽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3장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대한 요약은 너무도 훌륭해서 아리스토텔레스에 꽤 관심이 있는 이가 아니라면 이 책을 읽고난 후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으라고 권해야 할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7장 스피노자 역시 그의 저서 <에티카>에 대한 충실한 요약인 것 같으나, 나의 경우 <에티카>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두번째로 이 책은 윤리학의 문제에서 사실상 철학사를 기술하면서, 철학이 특정한 사회의 문제와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보여줄 수 있다. 철학이론을 처음 접할 때 느끼는 어려움은 이 이론이 어떤 맥락으로 분과학문에 도움이 될지 잘 알 수 없다는 것인데, 이 책에서는 각 철학자의 이론이 윤리학에 어떻게 심투되는지가 드러나고 또 그것이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적절히 설명되고 있다.


서양윤리학사에서 가장 주의깊게 읽어야할 이들은 저자도 말했듯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일 것이다. 양 철학자의 윤리학은 가장 체계적이고 설득력 있는 윤리이론으로써 서양인들을 유혹해 왔다. 그외엔 두 사람과 비슷한 시대의 두 대가인 플라톤과 헤겔이 주의깊게 읽힐 필요가 있고, 현대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리주의를 주창한 벤담과 밀도 꼼꼼히 읽을 필요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아레테)이란 올바른 일에서 쾌감을 느끼는 상태"라고 말한다. 요새 말로 하면 욕망의 재배치를 주장한 셈이다. 그렇다면 올바른 일이란 뭘까? 무슨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그는 철저한 그리스인으로, 당대 그리스 시민사회에서 올바르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던 행동들이 왜 올바른지를 분석한다. 그의 윤리학은 결국 그의 형이상학에서 근거를 빌려온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래도 굳이 올바름을 정의하자면 인간의 모든 능력을 조화롭게 발휘할 수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는 어떤 이가 매우 사양이 높은 컴퓨터로 테트리스를 하고 있을 때는 "좀더 복잡한 게임도 해보지 그래?"라고 권고하게 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권면은 대충 그런 성격의 것이다. 저자의 마지막 말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신을 닮으려고 했던 윤리학으로도 읽힐 수 있고, 가장 인간다우려고 했던 윤리학으로도 읽힐 수 있다.


반면 칸트에게 윤리는 그 행위에 수반되는 쾌감과 아무 상관이 없다. 쾌감은 오히려 경계되어야 한다. 그는 처음으로 윤리이론을 내용이 아니라 형식에 의해 정의하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거기에서 저 유명한 정언명법이 나오게 되며, 그러한 윤리를 지키기 위해 인간의 자유가 논증되어야 한다. 그 논증은 일종의 인과관계가 뒤집힌 논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쉴러의 간략한 정리에 의하면 "너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너는 해야만 하니까!"라는 것이다. 그의 권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것보다 훨씬 확고하고, 개인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다. 그의 '자유'과 '주체' 개념은 독일관념론과 거기에 영향을 받은 수많은 사상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반드시 숙지하여야 한다.


이 책에 별세개 이상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니체 때문이다. 나는 체계를 평가하는 이의 입장에서 니체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저자의 니체에 대한 서술은 공리주의자들(벤담과 밀)에 대한 서술과 비교할 때 형평성이 어긋나 보인다. 철학자들은 종종 다른 철학자들을 싸잡아 비난하곤 한다. 그 비난이 정당하지 못할지라도,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그 비난이 의도하는 지향점과 내용이다. 그런데 저자는 벤담에 대해서는 그 점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니체에게는 그러지 않는다. 아무래도 저자가 미국학자이며, 형이상학에 취향이 있다 해도 영미실용주의의 전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현대윤리학에 관한 에링턴의 개설서도 번역하겠다는 역자의 다짐을 보았다. 훌륭한 책이 나오리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너무 기쁜 일이다.


Leo Kim

2007.02.15 01:46:22
*.129.227.29

안녕하세요,
이래저래 링크 파도를 타고 왔습니다. ^.^;
흥미있는 글들이 많군요.

윤리학도 moral philosophy라 해서 철학에 속하지요.
학자들의 사상에 따라서 그들이 말하는 선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 재밌군요.

원래 자기 주장만을 고집하다 보면 다른 대립대는 주장들은 아예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종종있죠. 그럴 땐 다시 철학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 좋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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