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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상무게임단에 관한 생각

조회 수 853 추천 수 0 2005.01.05 15:25:00
요환이 형 화이팅. 내가 좋아하는 정석님하도 공군 프로겜단으로 가게 되길....-_-;;;;

입대 직전, 진보누리와 PGR21에 실명으로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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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입대를 하는 입장에서 문화관광부에서 다른 스포츠의 상무와 비슷한 e-sports 게임단을 만들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분이 묘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문광부의 정책을 환영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대표적인 반대논거에 관련해서 몇자 적어보고자 한다.


많은 이들은 '국방의 의무'를 군복무의 이유로 상정하고, 이것을 거부하려면 다른 방식으로 국익이나 공익에 종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프로게이머는 국익이나 공익에 종사한다고 보기에 의문스러우므로, 상무 게임단의 존재는 불필요하다고 본다. 이 경우 이들이 국익이나 공익의 준거로 내세우는 것은 '국제대회'라고 불러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바둑의 이창호(이창호는 4주 군사훈련을 받은 후 '공익근무'였는데, 그의 '공익근무'의 임무는 한국기원에 출근해서 바둑을 두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었으므로, 사실상 면제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나 다른 스포츠 선수들은 국제대회에 나가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으므로 군면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박으로 먼저 가능한 것은 공익이란 그리 좁은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화관광부에서는 지하철에 이상한 내용의 공익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올드보이나 보아 등의 예를 들면서, 문화부문의 소비가 결국 세계시장에서 우리 문화를 인정받는 힘이 되며 나중에 더 큰 이윤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문화의 영역을 철저히 자본의 시각으로 분석한 것이긴 하나, 어쨌든 현상적으로는 맞는 얘기다.


e-sports는 내수산업이다. 내수산업의 경우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공익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동이 있고, 그로 인해 챙기는 급여가 있으며, 그 급여는 다시 새로운 내수를 창출한다. 반드시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야 공익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수산업은 그 자체로 경제에 도움을 주며, 또한 내수경쟁을 통해 품질이 향상된 제품은 세계시장에 쉽사리 진출하기도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e-sports는 내수산업이면서 또한 문화산업이기도 하다는 점인데, 그 의미는 만약 e-sports의 해외전파가 이루어질 경우 얻는 이득은 경제적 이득 이상이라는 것이다. 당장 팔아먹을 수 있는 것만 팔아먹으려는 얄팍한 책략은 문화산업은커녕 일반적인 제조업 산업에서도 통용되지 못한다. 따라서 e-sports 산업을 존치시킬 수 있는 여건개선은 국가가 마땅히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라 볼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e-sports의 존치에 병역문제가 결정적으로 작용하는가."라는 질문이며, 대답은 "그렇다.", 그것도 "다른 분야에 비해 특히 그렇다."다. 프로게이머의 가능연령은 10대 중반부터 20대 중반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e-sports가 몇 년간 지속되면서 수준이 높아지자, 데뷔하자마자 뛰어난 성적을 내는 괴물급 신인을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제 프로게이머는 게임에 타고났다는 소리를 듣는 청소년들이 밑바닥부터 실력을 쌓으면서 몇 년간 문을 두드려야 스타플레이어가 될까 말까한 직업이 되었다. 그리고 현재 e-sports 산업을 지탱하는 스타급 프로게이머들은 모두 병역문제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따라서 병역문제는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한 e-sports를 한번에 붕괴시킬 수도 있는 커다란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문화관광부의 결정은 산업의 이득을 공익으로 계산한 것이며, 이는 e-sports 산업의 이해와도 부합한다. 그리고 상무게임단을 활용한 병역기피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했듯 프로게이머는 매우 힘든 직업이며, 다른 스포츠의 경우를 볼 때, 200여명의 프로게이머 중에 상무게임단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경력을 인정받는 게이머는 많아봐야 20명을 넘지 못할 거라고 예상된다. 이는 그 조치가 얻을 이익을 고려한다면 경미한 손실이다.


공익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사태를 판별하는 법도 있다. 사실 나는 정치적으로는 이 관점을 지지할 것인데, 상무게임단을 '병역으로 인해 개인이 입는 손실에 대한 국가의 보상책'의 일환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국방의 의무'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군복무의 의무'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국방의 의무는 전 국민에게 적용되는 것이며, 결국엔 사업자가 사업을 해서 종업원을 유지시키는 것, 임신여성이 새로운 예비납세자를 만드는 것 등 우리 일상생활의 모든 행위가 체제를 지키는 국방의 의무에 포섭된다고 해석될 수 있다. 반면 군복무의 의무는 적령기의 남성에게 국한된 의무다. 이는 국가가 적정기간 동안 젊은 남성의 노동력을 무단으로 착취하면서 국방에 필요한 자원을 조달하는 행위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무단착취에도 보상이 필요하다. 가령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이 추진하는 것처럼 사병의 월급을 지속적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 일단 보상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임종인 의원은 독일과 대만 등 징병제가 유지되는 국가의 사례를 본따, 궁극적으로 징병제 남성의 월급은 또래 남성의 평균월급의 1/3에서 1/4 선인 30만원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것은 2년이라는 시간의 기회비용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단순화시켜보면 그 기간에 1천만원의 소득을 얻을 이와 3천만원의 소득을 얻을 이 사이엔 엄연히 2천만원의 기회비용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래도 그런 점은 어차피 두 사람은 제대를 한 후에도 연봉의 차이를 벌려나갈 것이므로, 분배정의의 관점에서 볼 때 국가가 차등보상까지 해야 할 논거는 못될 수 있다.


기회비용의 차이가 더 결정적인 경우는 일반직종에 비해 가능연령이 몇 년 안되기 때문에 2년의 손해가 다른 직종보다 훨씬 큰 경우다. 1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 정도까지가 가능연령인 일반적인 스포츠의 경우 이 상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2년의 군 생활이 직종에 대한 적응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경우도 기회비용의 차이가 결정적이다. 이 상황에 해당하는 것은 대개의 스포츠와 바둑이다. 스포츠의 경우 가령 군대와 가장 가까운 스포츠라고 인식되는 축구조차도 2년간 일반적인 군대생활을 하고 오면 개인기에서 복구할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된다고 하며, 바둑의 경우 2년의 공백이 기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쉽게 예상이 되는 바다.


e-sports는 두 가지 상황에 모두 해당하며, 또한 두 가지 상황에 가장 극단적으로 영향을 받는 분야라고도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 e-sports의 가능연령은 일반적인 스포츠보다도 짧아보이며, 2년간의 군대생활이 프로게이머의 기량에 미치는 악영향은 바둑에 비해 못하다고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이렇게 병역특례에 관한 상황들을 '병역으로 인해 개인이 입는 손실에 대한 국가의 보상책'의 하나로 간주한다면, 바둑이나 스포츠가 특혜를 받는 이유가 말끔히 설명이 되며 e-sports 역시 이 범주에 속하게 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방의 의무와 군복무의 의무에 대한 합리적인 조정이 필요하며 이것은 그 자체로 사회문제이지만, 형평성의 차원에서도 당장 아주 큰 피해를 입는 이들에게 먼저 제도적 혜택이 돌아간다는 것은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상무게임단이라고 해서 국가로부터 개인적인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지적되어야겠다. 다른 상무구단처럼, 프로게이머가 상무게임단에 소속된다면 2년 정도는 기업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연봉을 챙기지 않고 국가를 위해 뛰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e-sports 특유의 현상인 대회 상금의 문제는 앞으로 게이머와 국가의 합리적인 조정을 통해 적절한 분배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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