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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폴리티즌에 실명으로 보낸 글이다. '2004년 10대뉴스'라는 기획의 한 꼭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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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구려 역사왜곡/한윤형


2004년의 큰 화제 중 하나는 중국의 고구려 역사왜곡이었다. 마찰 가운데 중국 외무부는 홈페이지에서 한국의 고대사를 삭제하는 ‘파문’을 일으켰고, 결국 한중 양국은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지 말고 학문적으로 풀자는 잠정적인 결론을 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이대로 원만하게 해결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측의 의도와 한국측의 올바른 대응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왜 ‘동북공정’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고구려사를 자국사에 편입시키려고 했을까? 물질과 관념을 명쾌하게 구분하는 비교적 단순한 유물론의 관점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할 수 있으리라. “중국은 한반도 북부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기 위해 고구려사를 탐낸다.”

이것은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한국인들의 주관적인 희망과는 상관없이, 소위 ‘휴전협정’이라는 것은 북한 정권이 붕괴될 경우 한반도 북부의 통치권에 대해 대한민국에 우선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오히려 휴전협정의 당사자는 북한, 중국, 미국 등으로, 대한민국은 그들 중에 끼지도 못한다. 더군다나 북한 정권이 건재한다고 해도, 그 정권이 반드시 대한민국과 통합의 의지를 보이리라는 가정은 어디 있겠는가? 멍청한 수구우파들이 공공연히 “북한 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말하고 다닐 때, 그 ‘북한 정권’은 “남한보다는 중국에 붙는 게 훨씬 정권 유지에 쉽겠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멍청한 민족주의자들의 ‘민족감성’을 배반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은 ‘설명’ 이상의 의의를 갖지 못한다. 당장 “왜 중국은 한반도 북부를 원할까?”라는 질문에는 “정복의지 때문에!”라는 허무개그 수준의 답변이 나올 것이다. 또한 그 와중에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국방비를 늘려야지!”와 같은, 허무맹랑한 대답이 나올 것이다. 물론 속류 유물론자들의 생각대로 한국의 군사력이 중국보다 월등하다면 중국은 동북공정과 같은 짓거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현재의 우리에게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우리는 국가를 형성하고 유지 보존하기 위해서는 모택동이 사랑하는 총구보다는 훨씬 더 복잡한 기제가 필요함을 이해해야 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가 왜 같이 모여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좀 더 어려운 말로 하면 ‘통합 서사의 이데올로기’이다. 전후과정을 생략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동아시아에서 그것은 각국의 ‘국사’를 통해 구현되었다.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게 그것은 일본과 한국보다 훨씬 지난하고 복잡한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의 결론을 핵심적으로 요약하면, “화하족도 동이족도, (그외 현재 중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들도) 모두 중화(中華)다.”가 된다. 이러한 결론은 먼저 내부적으로 중국의 역사를 재서술하기 시작했다. 남송의 영웅 악비는 더 이상 ‘민족의 영웅’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와 대립한 금(金)의 여진족들도, 이제는 중화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부 서술의 결과는 중국의 외부에도 영향을 미쳤다. 왜냐하면 중국이라는 국가의 영역 안에는 몽골인, 여진족, 조선족 등이 있기 때문이며, 그들이 중화의 일원이라면, 중화의 일원인 그들의 역사조차도 중화의 역사의 일부가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이 악비를 내전(內戰)의 장군으로 강등시킨 것과, 원나라■고구려■타타르족의 역사를 중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동일한 이념에 대한 다른 현상일 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현세 중국인의 선조의 역사는 모두 중국의 것이다.”라는 이데올로기의 허위성을 검증하는 것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너무 많은 것을 정당화시키기 때문에 중국에게도 한순간의 안락함을 제공할지언정 궁극적으로는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다. 최근 중국에서는 신라인이 초(楚)나라 사람의 후예라는 논문이 나왔다고 하는데, 그 학자가 신라 역사까지 먹어보려고 그런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만일 한국이 중국식으로 역사를 쓴다면 이 경우 초의 역사는 한국사가 된다. 왜냐하면 “현세 한국인의 선조의 역사는 모두 한국의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논법은 사실 한국의 재야사학자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중국학자의 논문에 대한 요약을 보고 ‘묘족’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어릴 때 본 한국의 재야사학자의 주장과 어찌나 같은지 놀랐다.) 중원에 거주하다가 쫓겨나간 사람이 국민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주변국가들은 욕심 많은 어린이들이 팬케이크를 뜯어먹듯이 ‘중국 역사 뜯어먹기’ 경쟁에 참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는 방법은 역사 속의 국가와 현재의 국가에 일 대일 대응관계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흔쾌히 인정하는 것이다. 가령 중국의 여진족과 조선족에게 고구려와 발해는 ‘선조들의 역사’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러하다. 이 경우 유일한 해결책은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도, 한국사의 일부로도 언급하되, “X국만의 역사이다.”라는 주장은 하지 않는 것이다. 이 경우 중국의 문제는 “고구려사는 중국의 역사이다.”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고구려사는 한국의 역사가 아니다.”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대응도 “고구려사는 한국만의 역사다.”라고 하기보다는, 국사 서술의 다각화를 추구하는 쪽이 더 좋다.

사료의 차원에서 중국의 핵심적인 주장은 1) 고구려 유민의 대다수가 중국에 왔다. 는 것과 2) 고구려는 당나라의 지방정권이었다. 는 것이다. 1)은 국사의 다각화를 고려할 때에는 그다지 반박할 필요가 없는 명제일 것이다. 일견 객관적으로 보이는 저 주장은 결국 “현세  중국인의 선조의 역사는 모두 중국의 것이다.”라는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구려 유민에 대한 중국측의 주장은 매우 자의적인 것이니 한국학계의 적절한 반박이 필요하다.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를 반박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고구려사를 온당하게 평가하는 이가 없음이 먼저 지적되어야 한다. 고구려는 본질적으로 제국이었고, 다민족국가이다. 카르타고 사람들이 로마에 편입되었으므로, 카르타고의 역사는 로마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카르타고가 로마의 지방정권이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전혀 다른 얘기다.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나라다. 왜냐하면 그때엔 ‘중국’이란 나라가 없었고, 중국대륙의 명멸하는 왕조들 몇 개의 역사를 합쳐야 고구려가 존속했던 시간에 버금갈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권이 몇 번이고 교체되어도 존속되는 지방정권’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면, 중국의 주장도 간신히 논의의 맥락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러가지 지점을 고려해 볼 때 중국의 역사서술에 대한 대응은 1) 그 서술의 유물론적 목적을 짚거나, 2) 세세한 사료를 논박하는 수준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여기에는 그것들을 포괄하는 이데올로기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탈민족주의나 탈국사주의의 시각도 그 자체로 의의를 지니지만, 중국과의 역사공방을 해결하는 방책인 것은 아니다. 일단은 “어디까지가 (우리의) 국사인가?”라는 질문이 이해당사자들을 사로잡고 있으며, 이에 대한 해결책은 임시방편이라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민족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탈국사주의가 다른 나라와 싸울 때 ‘우리 민족의 무기를 무장해제 시키는’ 악의 사상인 것은 아니다. 탈국사주의는 동아시아 역사전쟁에 대한 장기적인 해결책으로써 (혹은 그 하나로써) 충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앞서 언급한 ‘국사의 다각화’라는 것도 탈국사주의자들의 문제의식과 비슷한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외교의 측면에서는 “정치적으로 풀지 말고 학문적으로 풀자.”는 양국의 합의가 일단 옳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외교적 압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외교 분쟁이 될 경우 한국측에 중국측보다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더 많은 것도 아니다. 한국측은 학술적인 대응을 하되, 중국의 의도와 입장을 헤아려 지엽적인 사료문제에 얽매이지 말고 중국의 역사서술 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언급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도 중국측이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면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몽골, 터키 등과 공동대응을 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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