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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한겨레 청춘상담 앱 정혜신 인터뷰



요즘 내가 스스로 등장한 인터뷰 기사를 읽는 걸 쑥쓰러워해서 정독은 못했다. 그러나 이제 기사가 올라왔으니 당일 인터뷰에서 내가 했던 생각들을 간락하게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는 있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정혜신 박사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집단 상담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정혜신 박사가 참여정부 시절부터 국가 권력에 의한 고문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인터뷰 준비과정에서 노컷뉴스 인터뷰를 짠한 마음으로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중 큰 부분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대한 것이었다. 쌍용자동차 파업이 요즘 있었던 다른 '노사분규'와도 구분되는, 거의 '전쟁'에 비견되는 상황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당시 현장을 보지 못한 나같은 사람들이라도 <당신과 나의 전쟁>이란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DVD 구매는 여기) 그러니 해고노동자들의 상황을 이 정신의학의 용어로 설명하는데에 별다른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나는 한국 사회 자체가 PTSD의 정서를 이상한 방향으로 조직하여 정치화하는 사회가 아닌가 하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가령 한국전쟁이나 그 직후 절대적 가난의 경험을 집단적으로 공유한 세대의 정치의식은 어떠한가. 광주의 죽음을 세대 전체에 대한 명령으로 받아들였던 세대의 정치의식은 어떠한가.


물론 2차세계대전 이후의 유럽인들이나 베트남 전쟁 전후의 미국인들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하간 전쟁이나 죽음은 나쁘다는 식의 나이브한 결론이라도 공유할 수 있었다. 반면 우리에게 나쁜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죽음을 가져온 정치세력, '북한'이나 '미국'이라는 타자였다. 서구가 아우슈비츠를 통해 성찰한 것을 성찰할 기회가 우리에겐 없었다. 사회 구성원 전체가 PTSD라는 용어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PTSD의 증상들을 공유하고 그 정서를 토대로 정치의식을 구성해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국전쟁'과 '광주' 이래로 여러가지 죽음들이 있었지만, 오늘날의 청년세대는 공유할 만한 죽음의 기억은 가지지 못한 채 주변에서 여러 죽음을 대면한다. 


그런데 이런 착상은, 오히려 본인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쉽게 동의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일컬어 "이 사회는 병들었다."라는 식으로 곧잘 서술한다. 계속되는 고민은 이런 서술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좀비영화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고전 장르소설인 리처드 메드슨의 <나는 전설이다>의 말미를 보면, " '정상'은 다수를 위한 개념이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모두가 병들었다면 병든 것은 그 '모두'가 아니라 그들이 '병들었다' 고발하는 그 사람일 수 있다. 


"세상이 미쳤고 나는 정상이다."라는 발화가 무슨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일단 실천적 차원에서의 무능력을 문제삼을 수 있다. '미친 세상'이 그런 발화에 움직일 것 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 다음으로는 진실의 차원을 문제삼을 수 있다. 세상이 집단적으로 아프다는 사실이 내가 아프지 않다는 사실을 보증해 주지 못한다. 진보신당 당원으로 그 당의 당직자들을 상담하는 재능기부를 하던 어느 정신과 의사가, 후배에게 "거기 사람들 많이 아프더라."라고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미친 세상에 대해 내가 더 우위에 있다는 우월의식과 소수자로서 받는 핍박, 이 일이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무력감이 겹치면 아픈 것은 순식간이다.


내 경험을 토대로 말해보자면 직장인이나 운동권이나 정신건강에 질적인 차이는 없었던 것 같다. 직장인이라고 더 건전하지도 않았고, 운동권이라고 더 건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차이는 있었다. 직장인은 자본주의 사회가 '병든 사람'에게 베푸는 유일한 자비인 소비의 쾌락을 제한적으로나마 즐길 수 있다. 물론 지름신은 정신건강에 대해 임시방편에 불과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엔 임시방편 이상의 대책이 있지도 않다. 자본주의 사회는 소마(<멋진 신세계>에서 무상으로 공급되는 행복을 주는 약이다.)를 돈주고 사야 하기 때문에 다들 열심히 일하는 사회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마는 따로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돈주고 무언가를 산다는 행위 그 자체다. 이 쾌락으로부터 유리된 이들은 정신건강을 위한 다른 방책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방책이 '묘하게 뒤틀린 자의식'으로 귀결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사실 이는  운동권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자신이 자기 재능에 비해 많이 벌지 못하고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다할 수는 없었지만 진보신당 상근자에 관한 에피소드를 얘기했을 때, 정혜신 박사는 이해할 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상적인 패배감이 자존감을 좀먹기 십상인 그런 종류의 직업군을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만성정신분열증자 병동을 책임지는 의사나 중증 장애아를 돌보는 부모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십 년 전에 봤던 환자를 또 봐야 하는 그 의사나, 도저히 차도가 없는 아이에게 같은 종류의 돌봄과 교육을 담당해야 하는 부모들은, "도대체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이 일을 더 잘해냈을텐데."라는 생각에 쉽사리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사실 그런 사례를 듣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지점이 있었다. 그러면서 일개 당원에 블로거인 나도 "너희들이 능력이 없어서 2%인 거지."라는 덧글이 달리면 위의 두 가지 느낌에 쉽사리 빠져들게 되는데, 생업 자체가 운동인 사람들의 정신건강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분들에게 좀 더 사근사근하게 대해야 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치유하세요, 그래야 더 잘 투쟁합니다."라는 이번 인터뷰 기사의 제목은 그와 결부지어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고민은 거기서 끝은 아니었다. 정혜신 박사는 그런 사람들이 정신건강을 유지하려면, 이 지리멸렬한 혹은 패퇴하는 상황이 본인의 무능력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하고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끼리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고 했다. 물론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정신건강'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패퇴하는 상황이 내 탓이 아니라고 줄곧 자기암시를 한다면, 그것은 모종의 '정신승리'가 되어 상황에 대처하는 현실감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지는 않을까?


이를테면 '아픈 소수자'가 아니라 '아프지 않은 소수자'의 능력 내지 무능력에 대한 것도 내 고민의 일부였던 거다. 아픈 다수들 사이에 정말로 아프지 않은 소수가 있다고 쳐보자. 이 가정은, 현실적인 의미를 지닐까? 만일 그 가정이 사실이라면, 그 소수의 생각이나 활동은 어떻게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가령 우리는 군대생활이 남자들에게 어떤 트라우마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예비역들에게 말을 걸기 위해서는 "군대에 가서 배우는 것은 살인기술 뿐"이라는 일갈보다는 그들의 억울한 심정에 대한 공감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런 공감이 일단은 있은 후에야, "군대가 쓸모없는 조직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거나 "군생활이 개인적으로 손해였지만 국가가 그것을 보전해주는 방식이 군가산점제와 같은 미흡하고 차별적인 정책이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가 지금까지 말했던 언어로) '병든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본인도 그 '병'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는, 적당히 '병들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성립한다. 이것은 특히 남들을 설득시켜 모종의 사회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적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중요한 문제다. 혼자 건강해져서 산에 들어가 살 수 있다면 "나는 건강하고 사회는 병들어 있다."는 말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혼자서 그렇게 되는 건 물론 불가능에 가깝지만 모종의 소규모 커뮤니티를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도 '너만 건강할 수 있는 그런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말하는 커뮤니티는 꽤나 많다. 우파적 자기계발담론에서든, 좌파적 대안공동체 담론에서든.)


그러나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우리가 '병'이라 부르는 것들을 '병'이라 부르는 것이 온당한지, 그것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커지게 된다. 답은 얻지 못했지만 질문들을 정돈해서 돌아온 인터뷰였다.  
 

====

P.S 이 글 다 쓰고 나니, 예전에 썼던 다른 글과 묘하게 겹치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아 링크한다.

2010/04/01 - [문화/생활] - ‘나는 다르다’고 믿는 자의식에 대해 

시만

2011.06.04 11:13:06
*.99.62.18

나의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
- 읽으면서 곳곳에서 뜨끔했습니다. (딱히 운동을 포함, 뭔가에 '투신'해본 기억은 없지만서도.)

이 글 읽다 보니 '역시 법륜 스님이 진리..?'라는 생각이;;ㅋㅋㅋ. 다른 것보다.. (넓은 의미에서?) 사회적인 운동을 활발히 하면서도 '너의 괴로움은 너한테서 온 거다'라는 설법을 동시에 하시는 분이란 게 매력. (빠는 아니니, 혹 동의 못하시는 분들이라도 까지는 말아주세요^)

놀이네트

2011.06.04 12:22:49
*.242.8.3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하는 작업과 관련해서 비슷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한국사회에서 어린이들이나 청소년 (요즘은 20대 까지) 공부하는 기계 이상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놀이라는 '과잉'을 통해 조금이라도 다른 가능성이나 옵션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데요. 몇 년을 작업해도 온라인에서 독백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출판할 곳 조차 구하지 못하면서 스스로 약간 병적인 상태를 자각하고 있어요.

좀 천천히 가도 오래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ㅎ

시닉스

2011.06.04 22:10:29
*.41.243.10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 세상이 나와 다투려 할 뿐이다. - 석가모니

시닉스

2011.06.05 13:07:40
*.234.128.223

"비밀글입니다."

:

하뉴녕

2011.06.05 13:49:08
*.171.89.97

이게 생활이 될 정도의 돈을 받으면 그에 걸맞는 직장인 윤리가 생기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이 하는 일을 정당화시켜야 하잖아요. -0-;; 그러다보니 그런 일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런 사람과 일을 할 때 어찌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쉬운 문제들이 아니죠 ㅎㅎㅎ

시닉스

2011.06.05 14:15:00
*.234.128.223

"비밀글입니다."

:

Q

2011.06.06 15:13:01
*.192.131.245

이글 좋네요.

이챠

2011.06.07 15:07:11
*.41.224.95

"비밀글입니다."

:

저기

2012.03.06 00:21:14
*.109.98.252

2010/04/01 - [문화/생활] - ‘나는 다르다’고 믿는 자의식에 대해 

이거 링크가 잘못됐는지 글이 안나와요! 꼭 보고싶어요! 확인해주세요!

이상한 모자

2012.03.06 01:05:10
*.172.183.203

우와

2012.03.06 01:36:49
*.225.151.166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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